문화대혁명의 실체와 조반의 진상을 재현하다

[새책] 민주 수업 (조정로, 연광석 역, 나름북스, 2015)

조정로(차오정루, 曹征路)는 한국의 독서 시장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중국에서는 제법 지명도 있는 작가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의 작품 가운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만한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로의 작품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최근 독서 시장의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정로는 거의 정통파에 가까운 리얼리스트이고, 그가 써 낸 작품들은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소설 시장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민주 수업》저자 조정로(차오정루, 曹征路). [출처: 나름북스]
조정로는 1949년 9월, 그러니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직전 상해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 상해의 문화대혁명을 겪고, 지식 청년 운동에 가담해 농촌으로 하방을 가기도 했으며, 해방군에 입대해 군 생활을 한 적도, 공장 노동자와 기관 간부로 일한 경험도 있다. 문화대혁명 기간이었던 71년에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79년에는 안휘성의 작은 도시에서 작가협회 주석을 역임한 바도 있지만,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80년대가 다 지나서부터였다. 전업 작가가 된 후에는 안휘성 예술연구소에 재직하다 93년에 심천대학 사범대 중문과 교수로 부임하여 정년이 될 때까지 교수 겸 작가로 활동했다. 어쨌든 처음 작품을 발표한 것부터 따지면 비교적 일찍 문단 생활을 시작한 셈이지만, 조정로의 작품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오십 대 중반이던 2004년, 단편소설 <그곳(那兒)>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그곳>은 발표와 동시에 중국 문단과 학계에서 격렬한 논쟁과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인데, 이는 《민주 수업》의 창작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그곳>은 이른바 ‘저층 문학底層文學’의 시작이자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저층’이라는 용어가 중국어 표현을 그대로 한국어로 읽은 것이어서 어색할 수 있지만, 맥락에 맞는 번역어를 한국어에서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관계로 일단 용어의 본의를 살리기 위해 중국식 표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저층’ 개념은 1996년에 현 상해대학 교수인 채상(차이샹, 蔡翔)이 <저층(底層)>이라는 글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중국의 각종 매체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확실히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사회의 주요한 고민 한 자락이 담겨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에도 사회주의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제도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와 법률이 어찌되었든 간에 어떤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면, 궁극적으로 그 나라가 노동자의 나라, 노동자가 주인인 나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그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다양한 쟁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지만, 관점의 차이나 견해의 분기와 상관없이 1990년대 이후 중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하락했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 개방 이전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핵심인 ‘무산계급’은 비록 무산계급이었을망정 하층계급은 아니었다. 그 사회에서는,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무산계급이라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빈민’, ‘하층계급’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와 (노동자인 것 같기도, 노동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한) 농민공이 대거 출현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의 주도 계급이었던 ‘무산계급’이 실제로는 사회적 생산과정과 분배 구조에서 철저히 소외된 하층계급, 즉 빈민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90년대 중국 도시에 출현한 이 새로운 사회적 존재들에 대해 이들이 처한 역사적 조건을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의 주인, 혹은 사회주의 사회의 주도 계급이라는 관념으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는 ‘무산계급’, ‘노동자(工人)’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기가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저층’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고유한 사회적 맥락과 유용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것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식되어 있던 노동자들의 실제 사회적 지위와 그들의 현실을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게 된 일종의 새로운 인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조정로의 <그곳>이 이 ‘저층’ 개념을 구체적인 문학적 형상으로 빚어낸 첫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보다 이 작품이 1990년대 중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소재적이고 감상적 방식으로만 다루던 여타 작품과 다르게 ‘저층’ 노동자들의 현실 인식과 저항을 그들의 시각을 통해 성공적으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국영기업 매각과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직 사태, 이에 대한 실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의식 변화 과정, 그리고 그 저항이 불가항력적인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 전체를, 싸움을 주도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한 노동조합 간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평단의 특별한 주목 대상이 되었다. 다양한 아류 모방작이 쏟아져 나왔고, 평단은 일순간 이 작품의 성과와 한계를 논쟁하며 달아올랐다. 이 논쟁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좌익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논의까지 등장했으며, 이 작품으로 인해 환기된 중국 노동 현실의 엄혹함은 중국 신좌파 지식인들의 중국 사회 분석에 일정한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곳> 이후로 단편 <네온사인(霓虹)>(2006), <진상(真相)>(2006), <콩알 선거 사건(豆選事件)>(2010)1) 등과 장편 《창망한 대지에 묻노니(問蒼茫)》(2009) 등 일련의 문제작을 쏟아내면서 조정로의 관심과 사고 맥락이 중국 사회(그리고 중국 혁명)의 나아갈 길에 대한 질문으로 심화되고, 그 질문이 결국 오늘날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 문제(곤혹)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나아가는 방향으로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2) 문화대혁명 시기 조반의 경험과 기억을 다룬 《민주 수업》은 바로 이와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곳>부터 《창망한 대지에 묻노니(問蒼茫)》까지 이어진 그의 주요 작품들이 대부분 개혁 개방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중국 당대의 사회문제를 다룬 것과 달리 《민주 수업》에서는 현재적 사회문제의 의미와 연원을 문화대혁명 시기의 사건들로 거슬러 올라가며 되묻고 있는데, 이 부분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민주 수업》은 중국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전면 부정한 뒤에 창작된 문학작품 가운데 장편소설로서는 유일하게 문화대혁명의 실제적 전개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우선 그 가치가 인정된다.

그러나 다른 문학작품(영화를 포함하여)에서 상당히 치밀하게 은폐, 왜곡된 문화대혁명과 조반의 ‘진상’을 재현했다는 점보다 더 주목하고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이 작품이 문화대혁명의 역사를 ‘현재’ 중국 사회의 문제 및 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작품은 문화대혁명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회고담을 늘어놓거나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차원의 정치적으로 안전한 접근로를 경유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작품 곳곳에서 문화대혁명 시기 조반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조반자들의 문제의식은, 비록 개혁 개방 이후의 주류 역사 서사에 의해 은폐되고 잊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 수면 아래에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중국 사회의 현재적인 정치적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작중 인물들의 발화를 통해 문득문득 환기된다. 조정로가 상당 기간 공들여 구상하고 손질한 이 작품을 정년퇴직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직후에 발표한 것도, 그리고 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에서 발간하지 못하고 대만에서 발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작품이 지닌 농후한 ‘현재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현재성’은 이 작품이 지닌 ‘이질성’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개혁 개방 이후 창작된 사회주의 시기에 대한 주류적 재현 서사들과 구분된다. 흔히 개혁 개방 이후 중국 문학의 주류이자 신성新聲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상흔傷痕 문학’과 ‘반사反思 문학’, 그리고 ‘선봉先鋒 문학’ 류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한 재현 방식은 철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문혁이 종료된 1976년 이후 ‘신시기新時期’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한국의 독자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작가들, 예를 들면 노신화(루신화, 盧新華), 장현량(장셴량, 張賢亮), 염련과(옌롄커, 閻連科), 대후영(다이허우잉, 戴厚英), 여화(위화, 余華) 등의 소설(<상흔>, 《남자의 반은 여자》, 《사람아, 아 사람아》, 《인생》, 《형제》 등)은 물론이거니와 장예모(장이머우, 張藝謀)나 진개가(천카이거, 陳凱歌)의 영화(<인생>, <패왕별희>, 그리고 최근 개봉한 <5일의 마중> 등) 역시 개혁 개방 이전 시기에 대한 모든 서사와 묘사가 그 시절과 개혁 개방 이후의 차별성과 단절성을 부각시키는 ‘신시기’의 문법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민주 수업》은 작품 구상의 과정과 동기 자체가 두 시기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문제의 동질성과 연속성을 드러냄으로써 혁명의 기억과 역사를 현재의 시간 속으로 다시금 호출하는 데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도 이 신시기 서사의 문법을 상당 부분 위배한다. 따라서 《민주 수업》은 개혁 개방 이후의 주류 작품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몇 가지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첫째, 문화대혁명 시기 조반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내면과 조반의 동기, 그리고 조반의 과정과 그 결과 등이 비교적 상세히 그려지고 있다. 상흔 문학 류의 주류 서사 속에서 ‘조반’은 대개 문혁 초기 보수파 홍위병들의 난동과 동일한 것처럼 얼버무려져 있으며, 나아가 ‘조반’의 실체와 흔적 자체가 철저히 지워져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필자는 다른 지면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조반의 소실’이라 칭한 바 있다. 한국의 독자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인생》, 《형제》, <패왕별희> 등의 작품 속에서 문화대혁명은 비이성적인 홍위병들의 난동과 지식인에 대한 탄압으로 치환되어 묘사될 뿐, 조반의 과정이나 내용은 아예 그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작품들의 경우보다 더 아쉬운 것은 《사람아, 아 사람아》와 같이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의 경우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상당한 수준의 미학적, 사상적 성취를 보여 주는 작품이며, 그렇기에 한국 독자로부터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역시 ‘조반’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작가의 실제 경험에 근거한 자전적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 속 투영물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쑨웨, 孫悅)은 작가인 대후영이 상해 조반파의 핵심 조직에서 활동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시종일관 철저한 보수파였던 것으로 그려진다. 물론 작품 속에는 또 다른 조반파 인물(쉬헝중, 許恒忠)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인물은 혁명 의지나 사상적인 성찰 능력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인간적 내면조차 성숙하지 못한 허약하고 기회주의적인 인물로만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을 통해 조반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내면과 사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며, 나아가 문화대혁명의 실제 전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독자들이라면 ‘조반’을 지식인과 문화인에 대한 홍위병의 비이성적이고 반문화적인 폭력과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본격적인 조반 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1966년 여름과 가을에, 이른바 ‘혈통론’을 내세우며 주로 당 외부의 교사와 지식인, 과거 사회에서 지주나 부르주아였던 사람들의 가택을 수색하고, 그 가족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문화재와 사찰 등을 파괴하며 거리를 휩쓸던 ‘노홍위병’들의 운동은 실질적으로는 조반 운동과 명확한 대척점에 서 있는 운동이었다. 초기 홍위병들의 ‘난동’이 다소 수그러든 1966년 가을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는 ‘조반 운동’은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17년만에 당 간부와 인민대중 사이에서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권력관계의 불균형과 모순을 해소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고자 했던,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당과 인민, 간부와 대중 사이의 권력적 불균형이라는 문제는 문화대혁명도 개혁 개방도 해결해 내지 못한 역사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철저히 ‘현재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 및 발전 방향, 즉 혁명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작품이 기존의 문화대혁명 서사 작품들의 서사 관행과 다르게 가장 열렬한 조반파 리더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과 동기, 그들의 사상과 정신적 내면세계에 주목하고 그들의 지난한 투쟁과 박투의 과정 전체를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조밀하게 추적하고 재현하는 데에 성공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새로운 민주의 위기에 직면한 중국 사회가 아프게 반추하고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과 경험의 과정, 즉 ‘민주 수업’의 소중한 출발점이 아니겠냐는 작가의 역사적 물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하방된 지식 청년들과 농촌 간부 및 농민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관한 서사물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하방 지식 청년들의 회고록이다. 국내에는 그리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하방의 경험을 일종의 무용담처럼 후술하는 것이 1980~1990년대에 크게 유행한 바 있다. 이런 작품들을 보통 ‘지청 서사’, 혹은 ‘지청 소설’로 분류하곤 하는데, 이 지청 서사에도 역시 보편화된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는, 하방되기 이전 이들이 도시에서 홍위병으로 활동하던 초기 문혁 과정, 조반과 무장투쟁 시기의 이야기는 거의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아주 축약하거나 낭만화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청 서사 가운데 하나이면서 국내에 소개된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한 노귀(라오구이, 老鬼)의 《혈색황혼(血色黃昏)》3)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정확히 하방을 가기 위해 북경역에서 기차를 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둘째는, 하방 생활 과정에서 일관되게 지식 청년들이 약자, 피해자로 그려져 있으며, 마침내 고난을 이겨 내고 도시로 복귀하는 영웅서사의 유형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서사 유형 속에서는 종종 ‘하방 지식 청년-현지 농민(유목민), 혹은 현지 간부’의 관계가 일방적인 ‘피해-가해’의 관계인 것처럼, 하방된 지역에서 지식 청년들이 약세弱勢 집단인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민주 수업》에서는 하방 지식 청년에 대한 현지 농민과 간부들의 반응이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하방된 지식 청년들에게 보이기 위해 갑자기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혁명적 의례’들을 고안해 내거나 심지어 비판 투쟁 대회까지도 지식 청년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연출’하는 상황 묘사 등은 소설의 스토리 전개 전체를 두고 보자면 비록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농촌에서 하방 지식 청년들이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집단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반적인 지청 서사들 속에서 농민과 그들의 시각이 철저히 무시되거나 혹은 타자화되어 있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묘사들은 언뜻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문화대혁명 시기의 실천과 사고에 대해 전면적인 역사적 반성이 수행되고 있다. 1980년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반사 문학’이라 불리는 작품이 대거 출현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조반과 탈권, 그리고 무장투쟁과 해방군에 의한 진압 과정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반사 문학에 의해 수행된 반성은 문화대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실천에 대한 반성을 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결여가 자발적인 것이었다면 충실하고 진실된 역사에 대한 반성에 미치지 못한 것이겠지만, 만일 그러한 결여가 일종의 금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미학적 반성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서사와 기억의 공백이 문혁 서사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둘 중 어느 경우이든 ‘반사 문학’에 의해 수행된 문화대혁명 시기의 실천과 경험들에 대한 반성이 전면적인 반성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의 역사적 실천에 대한 반성의 시야와 폭, 그리고 깊이는 기존의 문혁 서사 작품들이 결여한 부분의 회고와 반성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분명히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반의 과정과 내면적 동기에 대한 일기 형식의 세세한 묘사 자체도 역사적 반성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말년의 여주인공의 회한 섞인 회고로 진행되는 조반과 지청 운동의 역사적 한계 지적은 문화대혁명과 조반 운동에 대한 그 어떤 격렬한 부정과 폄하보다도 훨씬 깊은 현재적 울림을 전해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이야말로 ‘반사 문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전면적 반성을 수행한 최초의 작품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기존의 대중적 서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와 문제점으로 인해 항간에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홍위병 운동이 문화대혁명의 유일한 운동이었다거나, 홍위병이 문화대혁명 운동의 유일한 주체였고, 홍위병 운동은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홍위병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대오를 갖춘 정치적으로도 단일한 성격을 지닌 정권의 하수인 집단이었다는 등의 오해가 의외로 널리 퍼져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수준의 오해들은 이 작품을 꼼꼼히 따라 읽는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이 작품이 한국의 독서 시장에서 발휘할 미덕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혹시나 조반과 탈권, 무장투쟁의 과정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묘사가 아쉬운 독자라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호남성 조반파 노동자의 회고록인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그린비, 2008)을 함께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소설이 아닌 회고록이기 때문에 《민주 수업》과는 서사 방식과 초점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 지역의 문화대혁명이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과 흐름 전체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해 내고 있으며, 특히 《민주 수업》과 마찬가지로 조반의 동기와 과정, 그것의 정치적 결과들을 세세히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국 내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은 홍콩에서 출간되었다) 국외에서 출간되었다는 점 역시 같다.

소설 작품 한 편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사실 정확히 계측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작품이 미칠 사회적 영향을 예측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중국 문학계의 작품들에 비해 파격적이고 이질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과장하거나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다만,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에 대한 작가적 인식과 반성의 폭과 깊이, 즉 작품 자체의 문학적, 미학적, 사상적 성취라는 차원에서만 이야기하자면, 확실히 이 작품은 표현 그대로 ‘획기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이 지닌 이질성에 대해 중국과 한국의 독자들이 보여줄 반응과 토론, 그리고 ‘《민주 수업》 이후’ 중국 문학계와 사상계에서 일어날 반응과 변화가 이 작품 자체 못지않게 궁금하고 기대되는 이유다.

* 주
1) ‘콩알’ 선거는 중국 혁명 과정에서 출현했으며, 식자층이 많지 않던 상황에서 창안된 직접 민주 선거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2) 이와 관련하여 볼 때, 《창망한 대지에 묻노니(問蒼茫)》 역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에서 시작된 저층 서사가 이 작품에 이르러 중국의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으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면 관계상 세세한 설명은 어렵겠지만, 일단 작품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이 제목은 1925년 모택동이 체포령을 피해 급히 고향을 떠나면서 쓴 <심원춘·장사(沁園春·長沙)>라는 사詞 작품 가운데 한 구절인 “問蒼茫大地,誰主沉浮?”로부터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는 젊은 시절의 모택동이 중국 혁명의 나아갈 길에 대해 소회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위 구절을 의역하자면 ‘창망한 대지에 묻노니, 너의 흥망과 성쇠를 주재하는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정로가 2000년대 중국의 노동 현실과 노사간 모순을 파헤친 소설에 이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3) 작품은 국내에서는 동일한 번역(박재연 역)이 《불타는 영혼》, 《시린호트에 지다》라는 제목으로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된 바 있다.

  《민주 수업》조정로, 연광석 역, 나름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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