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올바른 시각

[주례토론회] 체제전환기 주변부 국가 정치경제적 변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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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세계 지배 전략과 러시아 국가 이익의 충돌

지난 2013년 11월 유럽 연합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협정을 선택한 야누코비치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혈진압, 그리고 대통령의 도주에 이르기까지 3달 가까이 이어졌다. 이후 주민투표의 형식을 빌은 러시아의 직간접적 개입 하에서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의 러시아로의 합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 후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에 의한 대 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 착수로 인해 서구와 러시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가운데, 러시아의 지원 하에서 하리코프, 루간스크, 도네츠크 주 등 동남부 지역 곳곳에서 러시아계를 중심으로 하는 친러시아 민병대의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 저항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정부군 간의 전투가 이어져 왔다. 지난 2014년 민스크 협정 이후 전투 상황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동부의 많은 지역들은 반독립 상태로 남아 있으며, 최근 다시 전투가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후 2014년 5월 대선이 치러졌고, 그 결과 재산 순위 7위의 재벌인 무소속의 포로셴코가 54.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4년 소위 ‘오렌지 혁명’ 이후 집권한 유셴코 정권 하에서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친 서방 노선을 견지해 온 그는 야누코비치 정권 하에서도 경제개발 및 통상 장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시위 과정 중에서 재벌들 중 유일하게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한 바 있었다. 그 후 2014년 10월의 총선을 앞두고 합종연횡이 일어나 클리츠코의 ‘우다르’와 포로셴코의 ‘연대’ 당이 합쳐진 ‘포로셴코 블록’과 야쩨뉵 총리와 투르치노프 국회의장이 티모셴코가 이끌던 ‘조국당’에서 탈당해 만든 ‘인민전선’이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하였고 이들은 이후 연립정부를 성립시켰다. 그 외에도 친 러시아적인 ‘지역당’ 주도의 ‘야당 블록’을 제외하면 5% 벽을 넘은 정당들은 거의 모두 다 친서방/반러시아적 성향을 갖는 ‘신생’ 정당들이었으며, 반면 친 러시아 정당인 ‘공산당’과 ‘스바보다’와 ‘우파 섹터’와 같은 극우민족주의 정당들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물론 이 모든 정치 과정은 러시아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지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보도와 학문적 분석 작업이 이어져 온 바 있다. 동남부와 북서부, 친서구파와 친러시아파, 미국 및 서구와 러시아와의 대립 등등.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사태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크림 병합과 동부에서의 충돌 등을 중심으로 한 보도 및 설명은 문제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한 주권 국가의 영토 일부를 분리시켜 합병한 러시아의 전격적인 크림 반도 합병은 폭거임이 분명하지만, 크림 합병과 이어지는 무력 충돌 자체에 가려져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동남부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의 독립 및 러시아로의 합병을 요구하는 무장 투쟁이 이어지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금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동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재편 전략의 구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중동과 중남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거의 세계의 비중심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들은 이러한 구도 하에서 파악하지 않을 경우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커다란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체제 붕괴 자체는 물론, 2000년대 중반의 소위 아래로부터의 민중 혁명,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색깔혁명’ 역시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확보와 지정학적 패권 장악을 위한 미국과 서구의 전략적 포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은 세계체제의 비중심부 지역을 저임금 노동력 공급지, 유해 산업 이전지, 그리고 저렴한 자원 공급지로 남아 있게 하려는 미국 등 서구 국가들에게 있어서 저지해야 할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자적 민족 국가를 제대로 형성해 본 역사가 거의 없었던 우크라이나는 말 그대로 근대에 들어서 만들어진 국가이다(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족과 러시아 민족 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마치 옛 유고 연방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처럼 지금의 동부 지방은 러시아에, 그리고 서부 지방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복속되어 온 탓에 양 지역의 문화적 차이는 극도로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련 시대를 거치면서 한층 더 큰 규모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은 거의 철광과 석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동남부 산업 지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이는 한층 더 이 지역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이 서부와 다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종교 역시 양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차이를 더 크게 하는 요인이었고, 동부 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잘 구사하게 되는 등 언어적 요소는 양 지역 간의 차이를 확연하게 만들어 준 상징이기도 했다. 그 동안 서구와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오던 우크라이나 내 이러한 구분선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서구와 러시아의 국가 이익의 충돌선이 되고 말았다.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 강요와 지정학적 패권 확장, 그리고 러시아의 대응

그러나 더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무엇보다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 강요가 이러한 갈등의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도에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체제전환국가들에게 경제개방과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요구했다. 즉 가격과 무역, 자본시장 등의 자유화, 외환 시장 개방, 관세인하, 기업과 토지 등의 사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 예산 감축, 각종 보조금 철폐, 복지 등 국가 예산 축소 등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정책이 이들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강요되었다.

특히 2004년 미국과 서구의 적극적인 지원 하 발생한 소위 ‘오렌지 혁명’ 이후 수립된 친 서구 정권이었던 유셴코 정부는 러시아로의 의존 정책으로부터 탈피한 대신 EU로의 개방과 접근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했는데,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개혁과 경제개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2008년에는 이러한 정책의 한 목표였던 WTO 가입까지 이루어냈지만, 곧바로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라 외환 유출, 환율 폭력, 그리고 은행의 대량 예금 인출 사태 등이 일어나 구 소련권 국가들 중에서는 최초로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가스 중단 사태 등도 우크라이나 경제 침체의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였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유셴코 정권의 국영기업의 사유화 과정에서의 외국인 투자자로의 개방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격화였다. 2004-2005년에만 해도 무려 2000 여 개의 각종 국영기업들이 국제입찰을 통해 사유화되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의 경우에는 서구 등 외국인 자본가들이 구매하였다. 이러한 조치와 더불어 정부는 유통, 금융, 건설 등 서비스 산업에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시장을 대대적으로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로의 FDI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특히 금융산업으로의 투자로 인해 외국 자본의 우크라이나 은행 인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금융시장 개방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 한 이후에도 IMF와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는 국가 자산과 예산 지출은 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사유화를 추진했는데,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국제금융자본과 집권 엘리트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IMF 자신과 올리가르히 등을 집중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등 경제 부담과 고통을 서민들에게 강제할 계획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아들이 브리스아 홀딩스라는 우크라이나 천연 가스 회사의 임원이 된 일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들 중 중요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구의 경제적 신자유주의적 공세 외에도 이러한 유라시아 지역에서의 패권을 확장하고 러시아의 부상을 억누르기 위한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의 정치군사적 압박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소련 해체 직후부터 오늘까지 ‘자유, 민주, 인권’의 이름으로 5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퍼부었다. 유럽 국가들과 각종 국제기구들 역시 마찬가지로 소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촉진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하에서 경쟁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은 친 서구적 자유주의 성향의 소위 ‘민주, 인권’을 추구하는 소위 민주주의 촉진 ‘NGO’ 조직과 운동을 지원함과 동시에 반러시아를 추구하는 국수주의적 극우민족주의 혹은 네오 파시스트 정당과 조직들, 운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게다가 러시아의 지정학적인 영향력 재구축은 특히 미국에게 있어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구소련의 반체제파나 분리독립주의 세력을 지원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한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자, 미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여전한 구 소련 국가들 내 반러시아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신생 국가들의 소위 ‘민주주의 세력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한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에서의 미국과 서구에 의한 친서구적 민족주의 운동 지원 정책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오렌지 혁명’이었던 것이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을 비롯한 소위 ‘색깔 혁명’을 후원했던 미국은 동시에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해 있는 흑해 바로 맞은 편 루마니아 항구 도시 코스탄차에 미국 해군의 최대 거점을 구축했으며, 인근 코가르니세아누 공항을 군사화하고, MD 기지화한 데베세르 공군기지를 건설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불가리아에도 미 공군의 해외 최대의 기지들 중 하나가 될 베즈메르 공군기지 확장 공사가 현재 진행 중인데, 이러한 위협은 결국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킨 후 러시아 흑해함대를 철수시키려는 데에 목적을 둔 행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한 최근 미국은 2018년까지 루마니아 뿐 아니라, 폴란드에 요격 미사일을 배치해 MD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는데, 특히 폴란드에는 독자적 MD시스템 구축을 도와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편 EU는 지난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비롯 몰도바, 조지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옛 소련권 국가들을 EU 영향권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는데, 최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이들 국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지아를 필두로 EU 에너지 공동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러시아 국가로 남아 있었던 세르비아조차 코소보 독립에 대해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까지 하면서 EU 가입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NATO 가입시도는 러시아에게 있어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양의 셰일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자국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 온 러시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여 우크라이나는 로열 더치 셸과 셰일 가스 공동 개발에 합의한 바 있다. 국가 총수입의 6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가스 판매 감소는 곧 러시아 정치 개혁을 촉발시켜 지배 엘리트들의 지배 구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서구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러시아의 적극적인 영향력 회복 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카자흐스탄과 벨로루시 등과 함께 옛 소련권 국가들을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두고자, EU와 유사한 ‘유라시아 연합’이라는 경제 공동체를 추진 중인데, 2015년에 발족을 계획하고 있는 이 구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으로의 접근 정책은 러시아의 원대한 구상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는 친러시아 정부로 하여금 유럽 연합이 아닌 유라시아 연합 가입을 강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시기인 2013년 12월 15일에 미국 극우파의 거두인 존 메케인 의원을 비롯한 미국 의원단이 직접 시위대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고, 미 국무부 차관과 주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 간의 정국에 개입하는 노골적인 대화가 폭로되었으며, 에스토니아 관료의 미국의 대규모 자금 지원 자백, 미국의 용병 회사가 동부에서의 작전에 개입했다는 등의 보도가 이어지는 데에서 보듯, 미국과 서구의 직간접적인 개입은 이번 사태의 한 당사자인 미국과 서구의 음모론으로 파악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의 정보 당국을 인용한 독일의 신문은 CIA와 FBI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국제금융기구와 미국 등 서구 국가들에 의한 적극적인 개방정책과 구조조정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현재 문제 발생의 근본적 원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부했다고 해서 체제전환국가들을 포함한 비중심부 국가들에서의 비시장적, 국가독점적 보호주의 정책으로의 선회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친 서구 정권의 수장인 유셴코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가 경제의 파탄 및 서구 자본의 간섭으로 나타나면서 야누코비치로의 정권 교체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기존의 친서구적이고 신자유주의적 개방정책 대신 친러시아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10, 2011년도 연속으로 연 4%의 성장률을 보이는 듯 했지만, 이러한 성장의 결정적인 이유는 가스 가격 동결 및 가스 통과 수수료 등 러시아로부터의 적극적인 직간접적 지원에 있었다. 말하자면, 야누코비치 정부 치하에서도 경제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으며, 이번 사태의 발발 직전까지도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204억 달러에서 최근 178억 달러로 감소한 반면, 총외채 730억 달러 중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상환해야 하는 외채는 400 억 달러에 달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소수의 가신들에게 경제 권력이 집중되면서 지배 동맹의 일원인 기존의 특권 올리가르히들의 반발이 동서 지역 간 올리가르히들의 균열을 가져 왔고, 대중 운동이 권위주의 국가에서 조직화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원인이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강조되어져야 할 것은 바로 심각한 경제 위기 속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동과서, 친유럽과 친러시아를 막론한 민중의 불만이 저항의 토대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2004년의 소위 ‘오렌지 혁명’ 시기와는 달리,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조직적 방어 움직임이 수도에서는 물론, 그의 정치적 지지기반이었던 동부에서조차 크지 않았다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체제전환기 국가에서의 저항 이데올로기와 저항 세력 문제

현실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거나 심지어는 모종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주장들이 있지만, 공산당 지배 하 지금의 시장체제, 자본주의체제와는 전혀 다른 체제를 경험했던 현지인에게 있어서 과거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명백히 현재 시장체제와는 전혀 다른 비시장적 체제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 체제를 무엇으로 칭하든 간에, 그러한 비시장적 체제는 1990년대 초 정치적으로는 말 할 것도 없지만, 부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을 선고받았다. 비시장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공식적으로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체제 전환은 반공산주의/자유주의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매우 민족주의적인 것이었다.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소련 체제는 사실상 ‘러시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온 러시아 외의 신생 독립 국가의 민족들에게 소련 체제의 해체는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 뿐 아니라 소련 치하에서 박탈당했던 주권 쟁취와 민족 국가 수립이라는 민족주의적 과제의 실현을 의미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현실 사회주의의 대안은 곧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믿음 속에서 볼 때, 사회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와 정체성의 파괴를 의미했고, 소련은 곧 러시아를 의미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소련에 반대하는 것이란 자유주의와 동시에 민족주의적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많은 신생 민족 국가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강요하는 서구라는 또 다른 외세의 개입이라는 문제와 크게 대립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극우파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대립될 수도 있는 적극적 유럽화를 추구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은 모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재편입으로 인한 종속적 지위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설사 유럽자본주의의 주변부가 되더라도 서구의 일원이 되는 것이 러시아로의 종속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곧 유럽으로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 개방을 의미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저항세력에는 반러시아 극우 민족주의 세력에서 아나키스트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친서구적 신자유주의 세력까지 함께 하는 기현상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시위대 내에는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극우파시스트와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유대인 조직이 같이 행동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저항 세력에는 서구의 지원을 받는 시민사회단체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일반 시민들,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들, 인권활동가, 반인종주의/반파시스트 사회운동가들, 양심적 언론인, 작가들과 같은 매우 모순적인 집단들이 함께 하고 있다. 게다가 서구와 이해를 같이 하는 올리가르히들도 이들을 후원한다. 중요한 건 반대편인 친 러시아 세력 쪽에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쪽 진영보다 더 민주주의적, 좌파적인 조직은 거의 없었다는 비극적인 현실이다.

한편, 진보 좌파적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 저항 세력, 이제는 집권세력이 된 집단의 실체에 대한 논란일 것이다. 동남부와 서부 간의 대립, 동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친러시아 정권에 대한 친유럽적 세력의 저항 구도에 미국/유럽과 러시아의 직간접적 지원 등으로 인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매우 곤란을 겪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노골적인 저항세력 지지와 더불어 시위를 폭력적으로 만든 ‘스바보다(자유)’, ‘우파 센터’ 등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대두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좌파들은 미국과 유럽의 노골적인 저항세력 지지와 더불어 폭력 시위를 주도한 ‘스바보다(자유)’, 오데사에서 친러시아 민병대가 점령한 건물에 방화하여 40 여 명을 살해한 ‘우파 센터’ 등 극우민족주의 세력의 대두로 인해 이들의 저항을 ‘제국주의가 지원한 극우 파시스트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친서구/자유주의/민족주의 세력들 중에는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친나찌 극우 민족주의자인 반데라를 비롯한 과거의 친나찌 인사들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민족적 영웅으로 복권시키는 등 분명 극우세력들의 발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토의 일부를 떼어 대는 등 러시아의 실질적인 위협 행위 속에서조차 우크라이나 극우 정치 세력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크지 않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반러시아 정서에 민족주의적 요소가 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를 과장하여 중심부 유럽에서의 일반적인 극우민족주의와 유사한 현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은 지구 곳곳에서 항시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민중의 저항이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동남부 러시아계 주민들은 핍박받는 소수민족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 스스로도 말하듯이 민족 차별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파시스트들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러시아인들에 대한 탄압이 예상되기 때문에 봉기한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계를 탄압하는 파시스트 정권이 아니라면 이들 주장의 근거는 매우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동남부의 독립 무장 투쟁은 노동자 계급 전쟁이나 러시아계 소수민족들의 민족 자결권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직간접적인 지원과 이들의 자금으로 가난한 농민들과 빈민들, 그리고 폭력배들까지도 우크라이나 극우집단과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의해 동원되고 있다는 러시아의 보도가 좌파 매체들에 의해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 쪽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계 민병대에도 노동자나 서민들 뿐 아니라, 러시아의 적극적 지원 아래 체첸 전 참전자, 러시아 극우민족주의 조직들, 조직폭력배들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추악한 동원 전략에는 주목하지 않고, 동남부의 노동자계급의 민병대가 서부의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인 것처럼 해석하는 일부 좌파들의 주장은 현실과 유리된 주장이다.

동남부에는 공업이 발달해 있고, 서부에는 농업이 발달해 있으니 이러한 계급 분포와 구조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순수히 ‘계급’만 따지자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서부의 노동자 계급은 동남부 노동자 계급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있으며, 공업이 발달하지 못 한 서부 지역의 농민들의 상황은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반대로 동남부의 노동자 민병대는 동남부의 러시아계 지배계급, 자본가들과 함께 그들의 후원 하에 분리 독립 혹은 러시아와의 병합을 위해 전쟁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좌파’ 세력의 정체성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중심이었던 러시아에서조차 공산당은 ‘좌파’의 이름을 한 지배 집단의 상징일 뿐이었다. 체제 전환 이후에도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오랜 지배 정당의 역할에 더 익숙한 공산당 등 현실 사회주의 좌파 후신 세력들은 서구를 비롯한 사회주의권 바깥에서 발달한 (신)좌파적 의제들에는 물론 자유주의적 의제에조차 익숙하지 못 하다. 세계화 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이 러시아를 비롯한 중심부 외 지역에서 가하고 있는 불공평하고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지만, 자국의 안팎에서 자국에 의해 행해지는 유사하거나 더 잔혹한 행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공산당은 그 어느 정당보다도 노동대중과 서민의 이익을 수호한다는 강령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들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러시아 애국주의/민족주의/반유대주의적 정당으로 완벽하게 변신했으며, 개혁의 수혜를 얻지 못한 상당수 지방의 경우에는 노동대중이 아닌 지역 정치, 경제 엘리트, 반범죄적 인사들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구에서는 우파보다는 (신)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 여성, 반핵, 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의 체제전환기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의제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좌파적 정당과 시민 사회 운동의 사상적 동질성은 많지 않지만, 반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극좌파와 극우파, 신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의 연대도 이루어진다. 정치 외의 문제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만큼 권위주의적 정권의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하는 이들 국가들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도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연대를 방해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이 보다는 그에 선행하는 상기한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이러한 상황을 낳았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 수 백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일들이 압축적,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더하여 자본주의의 경험도 없고, 자유주의적 가치가 제대로 실험되지도 못한 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시장 경제로 회귀하면서 여전히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적 가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단계에 있는 이들 체제전환 국가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우크라이나서도 마찬가지로 공산당은 '좌파'적 당이라기보다는 ‘친 러시아적인 당’ 혹은 ‘러시아화된 우크라이나인들의 당’, 혹은 아예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당’으로 간주되어 왔다.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도모하던 당시에 '좌파'란 지배자 러시아를 의미했으며, 저항 세력은 말 그대로 ‘러시아적인 것’과 ‘현실 사회주의적인 것’에 반대되는 거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좌파'는 양 민족을 막론하고 그 어떤 진보적 의미도 갖지 못 한 채, 그저 ‘새로운 시장체제를 제대로 선도할 수 없는 무능하고 억압적인 옛 지배층’을 의미할 뿐이었다. 과거 ‘좌파’라는 이름으로 지배했던 기간 동안에 이론과는 달리, 실제로는 자유주의 단계에서 쟁취한 성과조차 파괴되었던 이 땅에서 이제 오히려 진보적인 의제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절묘하게도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와 시장경제'를 지원한다는 서구의 이익과 맞아떨어졌거나 혹은 그 명목 하에 체제를 붕괴시켰고, 약화된 공산당에 이어 러시아의 앞잡이로서 러시아와 구 엘리트들(현재는 동부 지역 산업 올리가르히)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권 세력에 맞서는 세력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서구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적인 세력이자 서구식 시장경제 개혁을 추구하며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지키는 세력으로 칭송되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이러한 세력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의 힘을 이용하여 소위 ‘색깔혁명’을 일으켜 집권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들이 추구하던 정책은 서구의 이익을 확보해 주는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 국가와 민족의 애국주의적, 민족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친러시아 정당인 공산당이 아닌, 다양한 우크라이나 좌파 세력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 당시 양분되었던 좌파 조직들이었지만, 극우세력을 포함한 민족주의의 광풍은 분명 좌파들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여러 이유들로 인해 현재 이들은 현 상황에서 사태를 주도하거나 견제할 주요한 세력이 되지 못 하고 있다.

라이나 정세에 대한 올바른 분석과 판단, 전망을 위한 기본 전제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국가’와 ‘민족’,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거부감으로 인해 비서구/비중심부 지역 국가들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격변들에 대해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해석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한국의 좌파들도 서구 중심적 시각과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중심부/비서구 지역들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대해 매우 단선적이고, 일면적인 사변적 분석만을 고집하다 보니, 가령 좌파적 성향의 조직들이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거나 저항 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적이거나 종교에 기반해 있거나 심지어 특정 지배 엘리트를 지지하는 양태로 나타나는 이들 지역에서의 외형상 극도로 모순적인 상황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좌파적 대안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지역들에서 좌파 성향을 갖지 않은 반외세,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세력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반동적인 이슬람근본주의나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경우도 종종 목도하고 있다. 반제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이들의 이념은 좌파적인 것과 거리가 먼 경우도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바로 미국과 유럽을 등에 업은 소위 민주화 세력들의 반독재 저항에 대한 해석이다.

비서구/비중심부 지역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이 이러할진대, (신)자유주의자들이 좌파들보다 급진적인 의제를 내세워 개혁을 주도하고, 시장주의자들/서구화주의자들이 민주화 운동 혹은 저항 운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등 소위 옛 사회주의 진영 혹은 체제전환국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한층 더 어려움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정당 중심의 서구 정치학 논리에 빠져 선출되지 않은 관료 등에 의한 과두 지배 세력의 지배를 간과하고, 시장 체제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시장체제를 건드리지 못 하는 모든 운동을 신자유주의의 잣대로 설명하려는 비과학적인 경향이 만연해 있기도 하다.

민중의 저항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파탄 그 자체만으로 혹은 외세의 지원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심각한 경제 위기 속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저항의 근본 이유였고 시작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었지만, 이에 저항하고자 하는 친 러시아 우크라이나인들의 운동은 거의 없었다. 단지 러시아가 개입한 이후부터 친 러시아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러시아계의 무장 반란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또한 미국과 서구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무리 심각한 파국을 가져 왔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못 한 채 중심부 지역 국가들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국가들은 안타깝게도 쉽게 대안을 찾지 못 하고 그 틀 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들 국가 대부분이 반민주적인 권위주의 혹은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부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며, 따라서 민중 대다수가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차라리 서구가 제시하는 모델이 차라리 낫다는 판단 하에서 미국과 서구의 지배 하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경우도 많다. 마찬가지로 러시아로의 재종속 정책이 서구가 주도하는 체제의 (반)주변부의 편입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이 되지 못 할 때,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 민중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우리는 비록 서구의 지원을 노골적으로 받거나 신자유주의, 극우 민족주의적 이념이나 근본주의적 종교, 그리고 특정 지배 엘리트를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중의 저항이 일어나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반동적 사상들이 저항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는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좌파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단 현실 사회주의를 겪기 전의 좌파적 대안과 겪은 후의 대안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며, 기존의 교조적, 사변적인 지지와 비판 논리로부터 탈피하여 비중심부 혹은 체제전환 국가들에서의 변동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과 향후 전망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통제 전략은 아주 명확하다. 구 소련 지역 국가 곳곳에서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곳이 즐비하다. 아제르바이잔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몰도바 내 트랜스드니스에스트리아 공화국, 조지아 내 압하지야 공화국과 남 오세티야 공화국처럼 몇몇 국가 내에는 러시아계 혹은 친 러시아 소수민족 등을 내세운 무장 세력들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 내전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들 공화국들은 국제적인 승인을 받지 못 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지원 아래 유지하고 있는데, 러시아를 이들 공화국들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이탈하려는 일부 구 소련 국가들을 통제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전략을 이 지역에서도 그래도 적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분쟁국가화함으로써 유럽 연합으로의 가입 조건을 갖추지 못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전략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구의 경제제재로 인한 러시아 경제의 심각한 위기이다. 러시아와 서구는 서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쪽은 러시아이다. 제재 조치와는 별도로 현재 석유 가격은 배럴 당 80 달러 중반으로 하락하였는데,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많은 상품들이 상점 진열대에서 사라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루블화 가치마저 하락해 환율은 달러 당 40 루블대로 치솟았다. 대형 투자은행들과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 등은 서구의 경제제재, 투자 하락 등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장기 불황 국면에 접어들었고, 오는 2016년 즈음부터는 러시아 주요 기업들이 채무 상환을 하지 못 해 신용위기에 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4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무려 740 억 달러의 자금이 러시아를 빠져 나갔다.

지난 7월 러시아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한 3차 제재에 착수하자 국영석유기업인 로스네프찌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정부에 약 42조 원에 달하는 금액의 긴급 구제 금융을 요청하기도 했다. 러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스베르방크와 대외무역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은행들의 미국과 유럽 자본시장으로의 접근이 봉쇄됨으로써 은행 부문에 대한 타격도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유럽으로부터의 석유 시추를 위한 첨단 기술 제공이 금지되면서 야심하게 추진해 왔던 북극해 석유가스 개발 프로젝트도 중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새로 합병한 크림 반도의 경제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여전히 서구와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의 상황도 점차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많은 지역이 다시 정부군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의 주권이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최근 이슬람 국가(IS)라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돌발 사태로 인해 이슬람 근본주의로부터의 위협이라는 상황에 맞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다시 일시적인 협력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경제 제재가 약화될 조짐은 없으며,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다.

서구와 러시아 간의 대립은 아시아에서 정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경제 제재 등으로 인한 단기적인 에너지 수출 차질 문제를 넘어 유럽의 에너지 자립화 및 다변화 정책, 그리고 미국을 필두로 한 셰일 가스의 본격적 시장 진출 등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적극적으로 아시아에서 출구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5월 21일 10년간을 끌어왔던 러시아와 중국 간의 천연가스 공급 협상이 급격하게 타결되었다. 중국 소비량의 23%, 러시아 가즈프롬 수출량의 16%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스 공급 협상이 타결된 것은 서구에 대항하는 러-중 동맹의 강화를 과시한 것일 뿐 아니라, 러시아 대외 정책의 불가피한 전환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나마 미국의 압박을 받은 일본이 대 러시아 제재에 나선 반면,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한국으로도 에너지는 물론 유라시아 대륙 루트 지원을 앞세운 러시아의 접근이 강화될 것이다.

물론 미-일 동맹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지배 엘리트의 대미 종속성으로 인해 중-미, 러-미 간의 갈등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독자적 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극소수 엘리트들의 집행 영역이었던 외교 정책 영역에도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사전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과 그에 대항하는 국가의 대응 속에서 순식간에 강대국들 간의 힘의 논리에 의해 주권이 침해되고 영토 일부가 할양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러한 전략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격변에 대해 진보 좌파 진영의 올바른 판단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국가의 운명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정치인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관료들의 손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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