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고도화가 아니라 노동친화적 산업단지 정책을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정책 비판

[편집자주] 다른 세상을 향해 한발 내딛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내일을 지속적으로 전망하고 밝혀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정규직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 내일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비추어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정부와 자본의 불안정 노동 전략을 분석하고, 노동권 쟁취를 위한 전략을 밝힘으로써 불안정 노동으로 가득한 현실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를 위한 정책을 여기에 싣습니다.

작년 12월 9일, 국내의 노후화된 산업단지들을 재개발 재구조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명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특별법’(노후거점산업단지 활력증진 및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간 산업단지의 개발 공급 관리 재개발을 규율하는 여러 개의 법을 통합하여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통합적으로 재개발 정비하려는 목적으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특별법의 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전국의 많은 산업단지에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라는 명칭으로 재개발과 재구조화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 50주년을 맞이했던 서울의 구로공단(현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지 벌써 50여 년이 지남에 따라 그간 산업화를 주도했던 주요 산업단지들이 노후화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재개발 혹은 재구조화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는 구조고도화는 산업단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산업단지 정책이 형성되고 추진되는 과정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산업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중첩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정책에는 이상의 전통적인 세력들과 더불어 새로운 세력, 즉 건설 및 임대자본, 유통자본의 이해가 결합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지역에 걸맞는 새로운 특화산업단지를 발전시키려는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이 도심 재개발의 연장선에서 지역 산업단지를 사고하는 지자체의 정책과 결합하고, 여기에 산업자본뿐만 아니라 재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건설 및 임대자본의 이해, 산업 생산보다는 유통 수익을 추구하는 상업 및 유통자본의 이해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산업단지 정책이 형성,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구조고도화가 진행될수록 산업단지의 주요 기능인 산업활동이 활성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위축되고, 유통과 부동산, 임대와 지대수익 추구활동이 보다 활발해지는 공간으로 산업단지가 변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구조고도화 사업의 진행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정책의 모태가 된 것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진행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첨단화, 재구조화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에 걸쳐 진행된 첨단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식산업센터(아파트형 공장)를 대규모로 건설하여 IT, 벤처산업, 각종 서비스업을 유치했으며, 대규모 패션디자인 타운을 조성했다. 그 결과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전통적 굴뚝산업 중심에서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제조업 생산 중심의 공간에서 고층건물과 쇼핑몰을 중심으로 하는 번화한 도심 공간, 상업화된 소비 공간으로 변모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는 2009년부터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발표하고, 4개 구조고도화 시범단지를 선정하게 된다. 반월시화, 인천 남동, 구미, 익산 등 4개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복합비즈니스센터, 호텔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주유소를 비롯한 각종 편익시설, 가로환경 정비 등 총 30여 건의 시범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민간자본 5,900여억 원을 포함하여 총 9,300억 원(2014년 6월 기준) 가량의 사업비가 투여됐다. 이들 시범사업이 일단락될 즈음인 2013년 9월에는 전국 최대 25개 산업단지에 대한 리모델링 계획이 수립됐다. 또한 그해 11월에는 정부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인천 주안부평, 창원, 군산, 대불, 서울디지털 산업단지를 구조고도화 사업 확산단지로 지정하여 구조고도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고도화 사업의 내용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서는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산업단지 입주업종의 고부가가치화, 기업지원서비스의 강화, 산업집적기반시설 산업기반시설 및 산업단지의 공공시설의 유지, 보수, 개량 및 확충을 통하여 기업체 등의 유치를 촉진하고, 입주기업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 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구조고도화의 주요 내용은 크게 보면 산업단지 입주업체들의 역량과 경쟁력을 강화, 고수익화를 유도하는 것과 기업활동 지원을 위한 서비스 및 기반시설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실제 그러한 목적은 실현되고 있을까? 구조고도화가 실제로 그러한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입주기업의 역량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산업집적시설의 건립이다. 유사업종의 집적을 통해 혁신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단지 내 미활용 부지를 재개발하여 집적화 단지를 조성하거나 지식산업센터를 건설하여 유사업종을 한 곳으로 이전 집적시키려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금형 IT융복합 전자의료기기 집적화 단지를 조성하여 약60개 업체의 입주를 유치한 구미 산업단지, 장기간 방치된 폐기물 처리부지를 활용하여 전기전자업종 중심의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한 인천 남동산업단지, 환경업종이전집단화를 위해 도금 및 PCB업종 공동폐수처리시설을 건설한 반월시화산업단지의 사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구조고도화 사업의 추진 주체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구조고도화 사업의 성과로 가장 많이 홍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사업종의 집적화 사업은 지역 내 혁신 클러스터를 형성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즉, 지역별(산업단지별)로 전략산업을 선정한 후 해당 산업의 업체들을 한 곳에 집적시킴으로써 지역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지역 혁신역량을 구축하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려는 시도로 적극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클러스터가 실제 지역 혁신을 가져오는지 그 메카니즘에 대한 실증적 증거가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유사업종의 집적만으로 클러스터와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구조고도화 사업의 모태가 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지식산업센터를 대규모로 건설하여 벤처 IT 업종의 집적을 달성했지만, 그것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7년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공단별 산학연 협력활동에 대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조사대상기업의 83%가 산학연 협력경험이 없다고 응답해 실제 단지내부와 주변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 간 교류와 협력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많은 첨단업체가 지식산업센터에 단지 모여만 있을 뿐 내부적인 네트워크 형성은 매우 약한 실정이라는 지적도 많이 제기된 바 있다.

산업활동과는 거리가 먼 구조고도화 정책

이렇게 집적을 통한 혁신역량 확보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은 주로 부동산 개발과 건설사업을 통한 단기적 경기부양정책의 일환이 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막연한 지역혁신체계, 첨단화, 신성장동력 육성 등의 미명 하에서 실제로는 산업단지 내 건설사업과 도심재개발 사업이 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산업단지 내 부지를 활용하여 지식산업센터, 비즈니스센터, 호텔과 오피스텔을 비롯한 각종 고층건물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는 구조고도화 사업으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업들이다. 지식산업센터는 전술한 바 있는 산업집적을 위한 대표적인 시설이다. 그러나 실제 지식산업센터에서 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지식산업센터가 대규모로 건설되어 있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보면 산업활동과 무관한 업체들이 입주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지식산업센터의 내부공간들이 원활히 분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주업종제한을 비롯한 각종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면서 산업활동과 무관한 업체들의 입주경향은 강화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지식산업센터는 산업집적시설로서의 위상보다는 산업단지 내 새로운 부동산 개발사업, 민간주도로 진행되는 산업단지 내의 아파트 건설사업으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지식산업센터 외에도 산업단지 입주기업 지원서비스 기능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기존 부지를 재개발하여 종합비즈니스센터, 호텔, 오피스텔 등 다양한 고층건물을 건설하는 사업들이 구조고도화의 주요 사업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건설사업과 부동산 개발 위주의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은 21세기의 ‘신개발주의’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신개발주의란, 겉으로는 보전과 환경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개발을 더 부추기는 현상을 지칭한다. 개발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으로 ‘환경보호’, ‘지속가능한 개발’, ‘녹색 성장’, ‘삶의 질 향상’ 등을 내걸고 ‘협치’(governance)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진행되는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의 경우 겉으로는 노후단지의 재생, 재구조화, 구조고도화, 첨단화, 지역혁신, 노동생활의 질 향상 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토지개발, 부동산 개발을 더 부추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산업단지 구조고도화에 참여하는 이해관계 연합이 형성되고 있다. 즉, 중앙정부, 한국산업단지공단, 지자체, 산업자본, 건설 및 임대자본, 유통자본, 지주 등의 이해관계가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에 결합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은 공공보다는 민간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산업역량 강화보다는 개발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조고도화가 아니라 산업기능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고도화 사업은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설/건물을 건설하는 사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의 논리보다는 토목 건설과 부동산, 재개발, 자본조달을 위한 투자펀드와 금융투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그에 따라 산업단지에서 생산을 통한 수익보다는 비생산적 지대수익을 추구하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 구조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산업단지의 산업적 역량은 향상되기보다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개발과 임대사업이 증가하면서 지가가 상승하여 신흥업체들의 산업단지 입주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산업단지 내 영세업체, 임차업체가 증가한 가운데 이들의 존재조건이 주변화, 한계화되면서 산업활동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들이 산업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과정에서 그러한 사업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입주업체, 중소영세업체들의 산업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은 미비한 상황이다. 산업단지의 재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노후화된 기존 산업단지 시설 개선 대책은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있다. 중소 영세업체들이 밀집한 산업단지에 일상화되어 있는 불안정 고용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대책은 실질적으로 부재하다. 나아가 노후화된 산업단지에서 제기되고 있는 위험/안전문제에 대한 개선대책 또한 실질적으로 부재한 상황이다. 이렇게 간과되고 있는 열악한 산업환경에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산업기능 활성화 정책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

노동친화적 산업단지정책의 모색

이렇게 산업역량이 하락하는 가운데 현재 다수의 산업기업들은 노동력에 대한 압착(squeeze)을 통해 산업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0여 년에 걸쳐 첨단화 사업이 진행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우 직업소개소나 인력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대규모로 존재하고 있으며,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법정최저임금에 근접한 수준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첨단화에 따른 기업 영세화가 진행되면서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디지털산업단지보다 먼저 직업소개소, 인력파견업체가 대규모로 난립해있던 반월시화산업단지의 경우 구조고도화 사업이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니 인력파견의 관행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최근 들어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생활의 질 향상(QWL 밸리) 사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 지원 정책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QWL의 명목 하에 실제 진행되는 노동자 지원 사업은 거의 대부분 어린이집과 보육시설 설치로 집중되고 있다. 그 외의 노동자 복지시설, 노동자 지원 사업은 실질적으로 거의 부재한 상태이다.

현재 산업단지정책은 주로 혁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혁신의 효과는 미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 혁신이 이루어져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고용, 노동조건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혁신에만 초점을 맞춘 산업단지정책에서 벗어나 고용정책, 복지정책과 같은 보다 넓은 맥락에서 산업단지정책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적 산업단지정책이 요청된다. 산업단지의 중요한 주체이지만 지금까지 배체되어 온 노동이 산업단지의 미래구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철식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