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들의 국민투표, 공개 개표의 날

[기고] 11월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

국민투표실행본부

지난 9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완화'에 대한 야합이 이루어지고, 이후 정기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근로자파견법, 기간제근로자법 등 5개 노동법안에 대한 개악을 시도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입법 발의가 예고되면서 긴급하게 '을'들의 국민투표를 준비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노총만 참여한 사상 초유의 노사정 야합을 17년 만의 노사 대타협으로 포장하고, 100억에 가까운 홍보비용을 들여 '노동개악'을 밀어붙였다. 청년실업을 무기로 장년노동자들의 임금을 '임금피크제'라는 명목으로 강탈하고, '저성과자'라는 빌미로 자유로운 해고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전문직종과 제조업 전반에 파견직을 확대하고,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평생비정규직' 시대를 열겠다는 안이었다.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성과임금제를 도입하고 각종 근로 조건을 사측이 맘대로 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 20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부의 전수조사 한 번과 노사정위 전문위원이라는 몇 명의 의견만을 토대로 하겠다고 했다. 노동부의 전수조사조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내부적으로 파기된 상태다. 정부로부터 고용된 '전문위원'들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박근혜 씨와 이 정부에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위임한 것일까. 언제 한국노총에게 우리들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헌납한 적이 있는 것일까. 며칠 전에는 들러리로 '고용'된 한국노총마저도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 포함된 기간제법 등 정부 여당의 개악안 당장 폐기 △공공·금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시도 즉각 중지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정부의 지침 강행 방침 포기를 요구하며 노사정위를 탈퇴할 수도 있음을 밝혔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은 연내 정기국회 내 노동개악 완수를 부르짖고,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 일반해고·취업규칙 관련 정부 가이드라인 연내 시행 계획까지를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여야 8:8 동수인 국회 환경노동위 통과를 위해 환노위 의원 1인 추가를 비밀스럽게 진행하다 탄로나기도 했다.

어떻게 이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총 총파업과 10만 민중총궐기와 함께 모든 '을'들의 국민투표 사업이 제안되었다. 국민투표 정도의 사회적 물음이 필요한 사항이라는 제기였다.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진행되는 노동개악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불복종운동, 저항행동이었다. 정부의 기만적인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선 노동자 시민들의 거리선전전이었고, 진실에 대한 폭로전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일상적인 실천이었다. 상징적으로 18대 대통령선거 전국 투표소 수에 버금가는 1만개의 국민투표소를 설치하자는 직접민주주의 운동이었다.

그런 국민투표 운동의 공개 개표를 내일, 11월 28일(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청계광장 옆 파이낸셜 빌딩 앞에서 연다. 그간 진행된 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막판 개악을 서두르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국회에 대한 더 큰 저항을 결의하는 자리다.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에도 한국사회는 몇 번이나 좌초의 순간들을 맞아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법 쿠데타에 이어 역사쿠데타라는 급변침으로 한국사회호 전체를 좌초시키려고 했다. 우리들의 몸과 정신, 어제와 오늘 모두를 식민화하려는 총체적인 공세였다. 자신들 말로는 국민과 사회, 역사에 대한 '전쟁' 선포였다. 우리는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과 노동법 개악저지 국민투표소에 이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서명을 함께 받아야 했다. 농민들은 그 옆에 '개사료값보다 못한 쌀값'임에도 추가 쌀 시장 개방에 나서는 정부에 규탄하는 푯말을 세워야 했다. 철거민들 노점상들은 가중되는 생존권 탄압에 저항하는 현장에 이 투표소를 세워야 했다. 교사들은 전교조 법외노조화 반대 서명을 함께 받아야 했고, 공공부문에서는 임금피크제와 성과임금제 도입 반대 투표소 옆에 '을'들의 국민투표소를 놓아야 하기도 했다.

그 모든 사회적 분노와 의견들이 지난 11월 14일 광우병 촛불 이후 최대인 13만 명의 민중총궐기 현장으로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권은 그런 모든 노동자, 농민, 빈민, 서민, 시민, 청년학생들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평화적인 집회를 사전부터 '불법'으로 매도하고 위헌판결이 난 차벽과 물대포와 불법채증 등으로 막아섰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진압이 있었고 백남기 농민께서 현재까지 마지막 기적만을 바라며 사경을 헤매고 계시다. 백배 사죄해도 부족할 정부가 도리어 공안탄압을 자행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평화로운 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을 'IS'에 비유하며 공포정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는 다시 긴급하게 살인진압에 대한 대통령과 공권력의 책임을 묻는 국민 서명에 나서야 했다. 애초 1차 총궐기 후 국민투표 운동을 더 전국화, 전면화하기로 했던 계획은 이런 당면한 정세와 필요들에 따라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반사회적 쿠데타, 수구보수 독재의 부활, 민중생존권의 파탄, 그 중심에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이자 근간인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파괴, 재벌과 자본가들만의 천국을 위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이라는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기에 노동법 개악에 맞선 전선을 지켜내는 것이 한편 중요하다는 마음들로, 11월 28일 예정대로 <'을'들의 국민투표> 공개 개표의 날을 진행하기로 했다. 어떤 공안탄압, 공포정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좌초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세월호를 바로 세우겠다는 결의를 다시 모아내는 자리다. 이 자리에 그간 노동법 개악에 맞서 국민투표 운동을 함께해 온 많은 이들이 함께해 주길 바라본다. 당일 오후 5시부터는 살인진압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고,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시민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릴 예정이다. 2시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넷에서 진행하는 길거리 특강도 있다. 11월 28일이 노동법쿠데타, 역사쿠데타, 공권력 살인정권에 맞서는 우리 모두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날씨가 추우니 모두 얼굴을 가릴 ‘복면’이라도 쓰고 나오시길 권장해본다.

  개표가 끝난 투표함들로 만들어질 상징물 스케치
[출처: 이윤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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