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선, 조코 위도도는 민중의 희망인가?

[기고] “위도도, 지배계급엔 차선, 민중에겐 차악”

지난 9일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선이 끝났고 이제 결과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선거 결과 발표에 따라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정세를 먼저 논하고 수하르토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의 두 번째 민선 대통령의 시대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우선, 선거결과 발표에 따라 예상되는 정세를 살펴보자. 인도네시아 선거 표본조사는 각 지역별 조사를 통한 투표박스를 만들어 그 결과를 중앙에 모아 취합하는 방식으로 실제 선거와 거의 유사하게 진행된다. 수하르토 퇴진 이후 선거 결과 예측에 정확도를 보였던 대부분의 공신력 있는 여론 조사기관은 아래와 같이 조코 위도도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조코 위도도는 수하르토의 전 사위였던 프라보오 수비안토를 약 4%로 앞서고 있다.

[출처: asiapacific.anu.edu.au/newmandala]

이에 따르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7월 20일 개표 시작 후 10월 20일에는 조코 위도도가 취임을 할 것이다. 그러나 프라보오 수비안토 측에서도 아래와 같은 여론 기관들의 조사를 근거로 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여론기관들은 편파적인 여론조사로 악명이 높은 곳들이다. LSN의 경우 2009년 선거시 수비안토의 정당인 그린드라가 15%의 표를 얻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 그린드라가 획득한 표는 4.5%였다. Puskaptis도 여론조작으로 2013년 성난 군중들로부터 도망쳐야 했고 JSI는 2013년 64%의 인도네시아인들이 프라보오를 지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여론 조사를 낸 곳이다. IRC는 모든 후보자들의 투표자들을 모은 후 다시 이들에게 위도도와 수비안토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만 답을 받는 여론조사 방법으로 수비안토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너무나도 편파적인 여론조사기관들을 대부분이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수비안토는 이들 여론 조사 기관의 결과를 근거로 실제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법정소송에 갈 수도 있다. 수비안토에게는 선거전략가 롭 알린(Rob Allyn)이 있다. 그는 작년에 개봉한 ‘자바 히트(Java Heat)’란 영화와 흥행에 성공한 인도네시아 현지 영화 ‘blood of eagles’ 등을 만든 영화인으로 우리에게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영화는 그의 부업이다. 그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과 여론 조사 조작의 대가로 멕시코 선거에서 이미 악명을 떨쳤다. 수비안토 측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재선거 등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정 소송에 간다면 몇 군데 정도는 행정상의 미숙함으로 인한 오류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비안토의 지지 기반들이 법정 소송과 재선거 요구에 따른 분쟁 등에 의해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수비안토는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자신들의 지분을 새 정권에 요구할 것이다.

두 번째 민선 대통령의 시대를 생각해보자. 우선 수하르토 퇴진 이후의 인도네시아의 대통령들을 한번 다시 훑어보자.


수카르노의 꿈은 인도 간디의 꿈과 같았다. 간디가 종교도 언어도 다양했지만 영국의 식민지라는 공통점을 가진 500여 개 지역을 하나의 인도로 묶는 새로운 민족국가를 만들기 원했던 것처럼 수카르노도 네덜란드와 영국의 구식민지를 모두 묶어 하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말레이 연방설립이 제안될 때 수카르노는 단호하게 비동맹운동의 수장답게 저항의 깃발을 올렸지만 말레이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영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대신에 새로이 이권을 가지려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하르토에 의해 그는 물러나야 했고 신문도 책도 TV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금지된 곳에서 5년간 갇혀 살다가 죽었다. 그러나 그의 공헌은 분명하게 있다. 현재 2백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에 2억3천만 명의 300여 종족이 700여개 쓰는 언어를 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신자를 가진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초석을 닦은 지도자이고 유색인종 최초의 국제회의였던 비동맹 운동의 상징인 반둥회의를 조직한 것은 그의 공헌이다.

수하르토는 정권을 잡기 위해서 1965-67년 사이에 100만 명을 학살을 했고, 그의 집권기간 중 100만 명을 투옥시켰다. 세계은행과 유엔은 그가 횡령한 금액을 150-350억 달러로 추정했지만 그는 1999년 법정에 섰을 때 4억4천만 달러의 횡령 혐의만을 받았다. 그는 퇴진 후 병원으로 숨어들어가서 10년을 보내다 죽었다. 사망할 무렵 현재 대통령인 유도요도는 사실상 그를 사면했고 수하르토가 죽었을 때 일주일간의 조기게양을 실시했다. 세상에 이보다 행복한 독재자가 있겠는가? 죽을 때 총을 맞지도 감옥에 가지도, 추방을 당하거나 재산도 몰수당하지도 않았다. 죽었을 때는 같은 군인 출신인 현직 대통령이 조기게양까지 명령하는 국가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수하르토의 인생에서 아마도 분한 것은 딱 하나, 늙어서 죽을 때까지 권력을 못 누린 것뿐일 것이다.

수하르토 이후 군인이 아닌 대통령은 이슬람을 대변하는 구스 두르와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였다. 한 명은 청렴한 이슬람 성직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정치적 유산으로서 아버지의 애국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지배계급들과 철저하게 타협하여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입안해갔다. 그리고 이제는 인도네시아 민중 누구도 이슬람이나 수카르노의 딸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목재사업자로 성공한 후 자카르타 시장으로서 서민적 지지를 얻은 조코 위도도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유숩 칼라의 손을 잡게 했다. 유숩 칼라는 유도요노 대통령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수하르토의 정당인 골카르당 당수를 지낸 거물이다. 조코 위도도 주변으로 수하르토부터 현직 대통령까지의 모든 관련 정치세력이 다 붙어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정치를 가져올 수 있을까?

조코 위도도는 개인으로서는 훌륭할지 모르나 기성 정치체제 속에 완전히 들어와서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많은 언론들은 그를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로 거론한다. 아! 그는 인도네시아의 오바마가 될 수도 있다. 오바마는 당선 후 금융위기가 오자 국가재정으로 파산 직전의 기업가들을 회생시켰고 가혹한 긴축재정을 펼쳤다. 조코 위도도가 오바마 같은 이미지로 당선된 후 오바마처럼 행동할 지도 모른다. 유도요도 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가혹한 긴축재정과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통한 것이었다. 위도도는 당선 이후에라도 현재의 재무장관인 무하마드 차팁 바스리를 갈지 않겠다고 했다. 유도요도 대통령 시기와 경제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위도도와 수비안토의 집권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수비안토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거나 불복하더라도 무리하지 않게 적당하게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위도도와 수비안토의 지지기반은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는 측면에서 수비안토 또한 자신의 지지기반이 싫어할 일을 과도하게 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위도도의 정치적 자산은 과거에 속해있지 않다. 그가 과거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은 그가 목수의 아들로 수하르토 시기의 인물들에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카르타 시장 선거에서 슬로건으로 신자유주의 구호인 ‘세계 표준(world standard)’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되면 군인이었던 정치인 수하르토가 엄청난 횡령을 하는 경제에서 이제 글로벌하게 인도네시아 자본가들이 수하르토 같은 정치가들의 개입 없이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경제로 바뀔지 모른다. 인도네시아의 중산층의 희망은 관료의 개입 없이 돈을 마음대로 벌어보는 것이었기에 이를 간파해낸 위도도는 중산층을 그의 가장 두꺼운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수비안토를 지지하기 위해 나온 선거용 뮤직비디오, ‘깨어나라 인도네시아(Indones ia Bangkit)’의 캡처장면. 나치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인도네시아의 ‘일베 아이돌’이 들고 있는 가루다 상은 수비안토의 정당인 그린드라당의 상징이다. 퀸(Queen)의 ‘We will rock you’를 무단으로 사용하였고 퀸의 브라이언 메이는 이에 대해 엄청나게 불쾌해했다.

수비안토는 지금은 이혼을 했지만 수하르토의 사위였고 실제로 사람들을 감금하고 죽인 군인이었다. 그는 선거 유세 중 “인도네시아는 아직 민주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란 소리를 공공연히 했다. 수하르토 시기 그가 한 체포와 형 집행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인도네시아 전체를 생각했다는 ‘민족주의’적 답변을 했다.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으로 위도도가 중국인이라고 흑색선전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1965년 대학살 시기에 공산주의자와 중국인은 거의 동의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수하르토의 정치적 후계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의 노련한 지배계급이 위도도를 택한 것은 수하르토를 몰아내고 수하르토 이후 여전히 양극화로 고통받는 민중들을 무마시키기 위해서이다. 위도도는 지배계급에게는 더 이상 수하르토 식의 노골적인 수탈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차선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는 위도도는 그들을 대변할 민중후보가 없는 가운데 택할 수밖에 없었던 차악이다. 민중들은 이렇게나마 최초의 서민 출신 대통령 위도도를 통해서 그가 자카르타 시장 시기에 보여주었던 ‘의료보험’등의 몇몇 진보적인 정책들이 인도네시아 전체로 퍼지고 더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위도도와 수비안토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총칼을 언제라도 들이대는 ‘파시스트’의 집권이냐 권위 타파를 주장하지만 양극화를 본격화시키는 비정규직 법안을 만들 ‘신자유주의자’의 집권이냐 정도의 차이라고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지배계급이 위도도라는 차선을 택하게 만든 것은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저항 때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위도도 집권 시기에 인도네시아 민중들은 그동안의 저항을 이어나가 그들이 지지했던 위도도를 압박해가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역행하는 이들도 등장할 것이다.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위도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기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하는 세계화’를 하면 된다고 부추기는 ‘박쥐’ 같은 자들이 위도도 집권 시기에 대거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박쥐들과 싸우지 않고 이들을 민주인사 혹은 비판적 지식인으로 대접하게 되면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향후 박쥐들이 말하는 “그대로 있어라. 우리가 해결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수작에 의해서 운동이 정체되면 인도네시아는 과거로 회귀할 것이다. 수하르토 시절의 모든 과거의 인물들이 돌아와서 공공연히 독재자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교과서를 내고 국비로 독재자에 대한 기념사업을 하고 수백 명을 학살하고도 이를 교통사고 따위로 비교하는 발언을 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약한 나라는 권위를 거부하는 소탈한 성격의 훌륭한 인격자 한 명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약하다. 수하르토 시절이 좋았다는 글이 적힌 티셔츠가 팔리고 있고 학살자들은 지역 곳곳에서 민중들과 같이 살면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위해서 조슈아 오펜하이머(Joshua Oppenheimer)의 2012년 다큐멘터리 ‘살인연기(The Act of Killing)’를 볼 것을 권한다.

  ‘The Act of Killing’ 캡처. 철사줄로 목이 졸려 죽은 이가 학살자에게 감사 메달을 걸어주고 자신을 죽여서 천국에 보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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