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항소심 판결, 기업만 위하는 법 아닌가요?

[기고] 삼성은 투병하고, 죽어간 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한혜경의 엄마 김시녀입니다.

우리 혜경이는 삼성기흥공장 LCD에서 약 6년 간 근무하면서 뇌종양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삼성에서 일하기 전 우리 혜경이는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주야 맞교대, 하루 10시간이 넘는 작업시간에 건강했던 아이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그러다, 입사한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생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시력도 안 좋아지고, 갈수록 말라가는 아이를 보며, ‘일이 힘들어 그러는가’ 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병일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건강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됐는지. 집안에는 단 한 명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혜경이가 일하던 환경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는지.

혜경이가 아프고 나서야, 혜경이 동료들도 이렇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서야, 일을 하다 얻은 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혜경이는 6년 동안 납땜 업무를 했습니다. 화학약품 때문에 늘 지독한 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혜경이에게 납이 얼마나 유해한지, 화학약품 사용의 문제점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2005년 10월, 쓰러진 후 혜경이가 뇌종양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벌써 근 10년 투병중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혜경이는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합니다. 앞도 잘 보이지 않아 현재는 장애 1급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하루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건강하던 내 딸 혜경이. 예쁜 옷 한 벌, 좋은 곳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채 20대를 꼬박 투병으로 보냈습니다. 내 딸의 인생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저는 우리 혜경이 병이 직업병이라 생각해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혜경이가 취급했던 납의 노출정도가 약하다고, 개인질병이라며 불승인을 받았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행정소송을 했습니다. 법도 몰랐던 우리였습니다. 법원의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법정 다툼은 피 말리고, 기운 빠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삼성은 보조참관인으로 들어와 변호사 2~3명이 항상 재판에 참석했습니다.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한 것이지,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재판 과정 내내 함께 했습니다. 혜경이는 1차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우리는 또 고등법원에 항소를 했습니다. 6년 동안 납과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얻은 직업병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고등법원에서는 단 1번의 공판만을 진행한 채 지난 8월 22일 선고를 내렸습니다. 물론 패소였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너무도 기가 막히고, 억울합니다. 재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던 혜경이에게 차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혜경이는 패소로 재판이 끝났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혜경이가 일했던 기흥공장에 대한 제대로 된 역학조사 한번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일하던 노동자보고 직업병이라는 것을 입증하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혜경이가 일할 때 아무도 아이에게 화학물질의 유해성, 납땜의 유해성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사용하던 화학물질도 몰랐습니다. 아픈 사람이 왜 아픈지를 입증하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업체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고, 유해화학물질, 방사선 등을 사용합니다. 노동자들이 사용한 화학물질을 공개하라고 하면, 삼성에서는 영업 비밀이라고만 합니다. 이렇게 기업만 위하는 법이 있으니,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에 걸리면 치료도 못 받고, 옆에서 간병하는 가족들도 흩어집니다. 혜경이의 투병과정과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법은 가진 것 없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모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합니다. 혜경이는 말합니다. 나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에 다니고 싶다고요.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고, 늘 치료비 걱정을 하는 혜경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무너집니다. 그나마 21일 백혈병 항소심에서 유미와 숙영씨가 산재인정 판결을 받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패소한 3명과 우리를 생각하면 속이 상하긴 합니다. 하지만 법이 인정 안해도, 우리는 직업병이라는 걸 확신합니다. 160명이 넘는 사람이 아프다고 하는데, 다 삼성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업무 연관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삼성이 직업병을 인정하고, 투병하고, 죽어간 모든 사람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건강했던 내 딸 혜경이. 우리 혜경이의 억울함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혜경이 같은 병으로 또 다른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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