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우정의 사진전

[기고] 기륭농성 348일, 새로운 행진을 준비하며

기륭투쟁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갑니다. 2005년 7월 5일. 문자해고, 잡담해고로 능멸당한 우리도 사람이라고 선언하던 날입니다. 그날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 설렙니다. 하지만 설렘은 곧 분노로 바뀝니다. 기륭이 비정규직 대부분을 해고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절차에 죽을 수 없어 절박한 마음으로 생산라인을 잡고 앉아 공장점거 파업농성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 8월 24일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기륭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투쟁입니다.

노동부, 검찰도 회사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인정했지만, 법과 정부는 우리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우리의 선택은 점거파업농성, 삭발, 단식, 고공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이었습니다. 구속, 손배, 벌금만 쌓여가는 저들의 외면에도 투쟁하는 우리가 옳다고 응원해 준 시민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의 연대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고, 1895일 만에 합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합의마저 우롱당한 우리는 또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60~70년대나 들어봄직한 회사의 ‘야반도주’, 그 현장을 지키며 철야농성을 하면서 싸운 지 어느새 다시 350여 일이 다 되어 갑니다. 참담합니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우리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5년 비슷한 시기에 투쟁을 시작해 공동투쟁을 하면서 끈끈한 인연을 맺은 코오롱, 스타케미칼(구 한국합섬) 동지들이 있습니다. 정리해고 10년. 이제는 끝장내자며 단식을 하고 있는 코오롱 최일배 동지와 의리를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 회사 파산에 맞서 공장을 재가동하고 고용을 보장하라며 투쟁했던 (구)한국합섬 동지들은 기륭과 비슷한 시기에 합의하고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1년 6개월 만에 또다시 공장폐업과 분할매각에 맞서 공장 굴뚝농성, 길거리 노숙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서럽게도 처지와 조건이 다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쌍용차,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5년, 8년 목숨 걸고 싸웠는데 정리해고가 합당하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립니다. 너무 허탈하기도 하고, 분노가 치솟기도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이 물음 앞에 함께 싸워 왔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기륭은 거의 유령회사가 되어 있습니다. 돌아갈 일터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고통의 뿌리, 차별과 설움의 원흉인 정리해고, 비정규직, 파견법이 그대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될 때까지 기륭투쟁은 끝날 수 없습니다. 이런 결의를 다지기 위해 함께 싸워 왔던 동지들과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12월 10일부터 20일까지 지난 10년을 되짚어 보는 사진전을 엽니다. 사진전은 그 모든 삶의 현장, 투쟁 현장에 함께 했던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모임> 벗들이 함께 열어 주셨습니다. 투쟁 당사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함께 그분들이 기록해 준 지난 10년 노동자민중 투쟁의 세월을 함께 돌아봤으면 합니다. 사진전에는 한진중공업, 쌍용차, 유성 등 전국의 투쟁사업장, 함께 힘을 모았던 모든 희망버스까지 장면 하나 하나에 우리의 투혼, 우리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전을 끝으로 기륭전자는 새로운 투쟁을 준비합니다. 많이 지쳤고 힘도 들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려고 합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가 우리의 유일한 요구입니다. 개개의 요구를 넘어 차별의 뿌리를 겨누는 새로운 투쟁에 다시 한번 단결과 연대의 손, 잡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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