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과 함께 끝에서 당당하게 웃자

[불법사장 찾아 3만리](8) 순회투쟁 8일차

3월 25일(수) 출근선전전과 기자회견을 위해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로 향했다. 고용노동부 앞에 도착해보니 이미 경찰이 진을 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불과 6명의 순회투쟁단을 환영하기 위해 참 많은 경찰이 동원되었다. 정부청사 건물 안에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공무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해고자가 “에고 저 아이들이 자라면 모두 비정규직이 될텐데...”라며 혀를 찬다.

8시 출근 선전전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청사 경비 아저씨가 슬쩍 말을 걸어온다. “우리도 예전에 민주노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깨졌다. 요즘은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노조 얘기만 나오면 못살게 군다” 정부기관 산하 노동자들의 조합결성을 이렇게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산하 정부기관에서 비정규직은 작년에 비해 늘었지만, 무기계약직 전환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인턴들의 정규직 채용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엉터리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불법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바로 잡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최근 3년 동안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노동자의 숫자는 고작 1만 명에 불과하다. 국내 10대 재벌이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수만 43만 명에 달하고, 300인 이상 사업장이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87만 5천명이다. 불법파견, 사람장사의 몸통인 재벌 대기업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겨우 깃털에 불과한 중소영세사업장 중 몇 곳만을 단속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오전 10시 민주노총 충남본부와 공동으로 고용노동부 앞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 시정조치에 적극 나서라”, “불법 하청업체를 폐쇄하라” 우리의 외침이 얼마나 저들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에는 더 많은 대오와 이곳에 오리라 다짐하며 삼성전자서비스 아산센터로 향했다.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재호 분회장과 조합원들이 선전전에 기꺼이 함께해주셨다.


순회투쟁단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2시 30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지난 2월 26일 대법원은 아산공장에서 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모두 불법파견으로 판결한 바 있다. 패소자 3명의 경우도 불법파견이지만 단지 근로기간이 2년을 경과하지 않아 패소했을 뿐이다. 최근 5년 사이 현대차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만 세 번째다. 하지만 현대차 사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사측은 아산공장 판결 역시 ‘개별판결’에 불과하다고 앵무새처럼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승소자 4명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사안이라고 주장하며 현대차지부 단체협약 36조에 따른 원직복직등과 관련한 노사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더니 사측은 최근 ‘고용이행안내문’이라는 것을 내용증명으로 보내왔다. 그런데 고용이행안내문의 제목을 신규채용공고로 살짝 바꾸면 나머지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다. 법원 판결과 단체협약은 모르겠고 무조건 회사의 채용절차(서류제출, 교육, 신체검사, 배치)에 응하라는 것이다. 대법판결이 나도 회사의 채용절차에 따르라는 것은 결국 현재 소송중인 조합원들에게 소송을 포기하고 신규채용에 응시하라는 무언의 압박과 다름없다.


이날도 출근투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회사 인사팀이 내용증명을 들고 찾아왔다. 승소자인 나와 김기식 동지는 “노동조합과 얘기하라”며 인사팀을 돌려보냈다. 현대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단지 승소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의 결과물이다. 나하나 정규직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대차에서 불법노동을 완전히 추방하고 나아가서 비정규직을 철폐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퇴근길에 신규채용에 합격한 몇몇 조합원이 눈에 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정규직 작업복과 명찰을 달았지만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선전전 대오를 외면하고 지나쳤다. “동지들과 함께 끝에서 당당하게 웃자”던 정식이의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당진 현대제철에 도착했다. 당진공장은 2013년 아르곤가스 질식으로 5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한데 이어 이후에도 끊임없이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흡혈귀 같은 공장이다. 사망사고가 계속 이어지자 정몽구가 산재를 없앨 5천억 원을 투입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돈은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설비를 확충하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장 전체로 감시와 통제만을 강화했다. 산재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욱 교묘하게 은폐되었을 뿐이다.

오후 5시 반부터 B,C 지구 정문 앞에서 퇴근하는 정규직,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간부들과 함께 선전물을 배포하고 피켓팅을 진행했다. 몇 몇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생한다”고 인사를 건넨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2012년 말 결성되어 현재 조합원 수가 900명을 넘어섰다. 정규직 노동자수는 4천여 명, 비정규직은 2,3차를 포함하면 1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 졌을 때 사측은 “얼마 못가서 무너진다”고 악선동을 했지만 지난 2년 여 동안 끈질기게 투쟁을 전개하면서 최근 눈에 띄게 조직화가 확대되었다.



지회 이환태 정책부장은 “올해도 여전히 조직확대가 과제이지만 지금 조직한 조합원들, 간부들의 의식과 역량을 강화하고 현장투쟁을 확대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현재도 여러 업체에서 현안투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청업체가 재계약으로 바뀔 때마다 퇴직금 산정에서 상여금의 일부를 떼어먹는 등 바지사장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장투쟁 이유도 참 각양각색이다. 지난해 여름 2차 업체인 장비운송사만 혹서기 빙과류를 지급하지 않아서 조합원들의 항의로 이를 쟁취한 일화도 들려주었다. 현대차 비정규직도 처음부터 정규직화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각 업체별로 장갑지급을 요구하는 등 다양한 현장투쟁이 더욱 큰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문득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떠오른다. 죽음의 공장, 절망의 공장이 아니라 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살맛나는 일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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