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인의 연금전문가 분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기고] 재정 안정화 패러다임에 빠진 연금전문가 18인 권고문에 대한 반론

우리는 박근혜 정권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실직으로 자살하고, 안전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노동조합 간부였다는 이유로 살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신음하고 있고, 노인들은 빈곤에서 허덕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고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가에 분노하며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3년을 넘긴 박근혜 정권의 실체이자, 무능한 보수정권의 자신들만을 위한 정치의 결과이다. 이러한 정권 아래에서 과연 ‘사회적 대타협’이란 가능한 것인가? 또한 민주주의가 너무도 많이 후퇴된 현재의 조건에서 어떻게 공적연금 강화가 노동자 서민의 이해를 반영하지 않고 실현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나?

지난 5월 2일 여야는 공무원연금은 개악하고 국민연금은 50%로 상향하겠다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대해 공무원연금 가입자인 민주노총 소속 공무원과 교사들은 일방적인 개악으로 규정했고,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런 국면에서 청와대와 복지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수준이 낮고, 국민연금 상향은 함께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민연금 보장성과 재정을 직결시켜 또다시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국민연금 상향 위해서도 공무원연금 하향 막아야

이 합의에 대해 일부에서는 전공노, 교총, 공노총 단체의 대표가 서명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로 환영하기도 했지만, 전공노의 경우 민주노조의 근간을 흔드는 직권조인을 함으로써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 상황을 해당 조직의 문제로만 돌리면서, 공무원들의 양보를 전제로 국민연금이 강화됐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이 평가는 공적연금 운동의 기본인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또한 노동자와 시민들이 지난해부터 조직하고 운동해왔던 공적연금 강화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합의에 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공적연금 강화의 기본 원리는 노후빈곤을 해소하고 예방하기 위해 적정 수준으로 공적연금을 상향하는 것으로, 결코 공무원연금 개악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공무원연금이 개악된다면 그나마 노후에 독립적으로 생을 누릴 수 있는 공적연금의 수준이 낮아지기 때문에 국민연금 상향을 위해서도 공무원연금 하향은 막아야 했다. 또한 공무원연금 개악의 논리와 국민연금 상향의 논리 모두가 재정논리에 짓눌리면서 모두가 개악 일방의 역사를 보였다. 이에 진보적인 공적연금 강화 운동에서는 재정논리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의제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5월 2일 이후 공무원연금은 마치 타결된 것처럼 치부되었고, 모든 관심의 집중은 국민연금 상향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 논의조차도 재정논리로 집중되면서, 합의 당사자들의 주장대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전제로 국민연금 상향을 실현할 수 있다는 약속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 패키지였는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다면 원점에서 근본적인 성찰과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5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악 안 합의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 국민연금 상향 조항을 어떻게 손볼까를 두고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소위 연금전문가 18인이 “공적연금 논란에 대한 연금전문가 권고문”을 지난 26일 제출했다. 이들은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공무원연금 개혁 등에 관련해 현 연금논란에 대해 4가지 권고를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권고안 네 가지 모두가 내용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울뿐더러 무엇보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두 명의 ‘연금행동’ 정책위원들의 판단에 우려가 앞선다.

  참세상 자료사진

노후소득 정적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재정논리만

권고안을 보면 첫째,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공무원연금개정법안은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존중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에서 공무원연금개정법안의 개악 수준에 대한 평가는 청와대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통해 직접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해 미흡하다는 평가는 재정논리의 관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평가로 노후소득의 적정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합의가 아닌 야합으로 규정한 주체(당사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는 연금정치의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둘째, ‘향후 국회에 설치될 사회적 기구는 노후소득보장을 논의하면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의 제도개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공적연금 구조에 퇴직연금을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그동안 재정 안정화 주의자들은 퇴직연금의 보장성을 내세워 국민연금 상향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우려하면서 국민연금 상향을 꺼려왔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퇴직연금 강화방안의 기조 하에서 이러한 접근은 공적연금 강화의 방향보다는 사적연금 시장 강화를 위한 포석의 가능성이 크다.

셋째, ‘현재의 국민연금제도가 적절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한다. 적절한 노후소득보장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향후 설치될 사회적 논의기구에서는 적정부담-적정급여의 원칙에 따라 명목소득 대체율 50%를 포함해 종합적인 정책적 대안을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에서 ‘적정부담-적정급여’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워 수익자부담원칙, 즉 가입자의 재정책임 원칙을 강조했다. 이미 건강보험에서도 비슷한 프레임이 작동했다. 그러나 건강보험에서 확인된 것은 보험료는 꾸준히 올랐지만, 보장성은 결코 보험료율만큼 증가하지 않았고, 누적흑자가 계속 적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문제는 미래 연금기금의 적립금 규모나 소진 시기의 지연이 아니라 제도의 지속성을 위한 긴급한 사회적 투자가 시급하다는 점이다. 곧 500조를 달성할 국민연금기금이 있지만 노인빈곤을 위해 한 푼도 투자하지 못하고, 청년들의 삶을 위해 전혀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료율 인상보다 중요한 것은 출산율 제고와 안정된 고용이다. 합계출산율이 2 이상 오르고, 고용이 안정된다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더라도 충분한 보험료 수입이 확보된다. 그러나 적정부담을 전면에 내세워 결국 국민연금에 대한 계층적 이해를 분열시킬 것이고 또다시 국민연금의 제도적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넷째, ‘최근 공적연금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 학계의 다양한 주장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도에 의해 악용될 경우 국민의 연금불신이 더욱 깊어질 수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하고 책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치권, 정부, 학계가 그간 연금불신을 조장해왔던 주요 세력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없이 주체 없는 정치적 의도는 무엇에 대한 경고이고,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연금불신이 깊어진 것은 제도의 전문성과 복잡함에 기인한 전문가 독식이 낳은 결과이다. 국민이 자신의 노후와 밀접한 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공적인 노력은 거의 없었고, 주기적인 개혁 기간에 쏟아져 나온 연금 정보는 결국 가입자와 국민을 대변하기보다는 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판단된 결과들이었다. 이에 노동자와 시민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연대운동단체인 ‘연금행동’에서는 가입자의 대표성 제고와 연금정치의 민주화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18인의 연금전문가들은 아마 최초로 만들어진 국민연금 상향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제도화하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기구가 노동자의 이해를 배제하고, 또다시 가입자와 국민 중심성이 아닌 전문가 중심으로 구조화되고, 재정 안정화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사회적 기구가 될 수 있을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운동 주체가 형성된 지금, 연금정치의 민주주의는 주체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존의 연금개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성찰과 방향에 대해 한정된 주체가 아닌 열린 사회에서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할 때 대안적인 방안이 도출될 것이다. 살아 숨 쉬며 성장하고 있는 연금운동과 민중의 연금정치를 낡은 패러다임에 가두지 말길 당부한다. 또한 이름만 ‘사회적 기구’인 구조에서 결코 사회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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