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성 네티즌들의
연대를 꿈꾸며
by
시타
무슨 거창하게
'연대' 씩이나 꿈꾸느냐고는 말하지 말아 달라. 뭔가 멋지구리한 연대를 꿈꾸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애들 편을 들거나 혹은 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쯧쯧... 그러게 뭐하러
싸웠니?' 하며 냉정히 돌아서는 여자친구들로 인해
황망해졌던 경험은 나 또한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말이야 바른 소리지, 이런 경험 몇 번 하고
나면, 대체 이 세상에 내 편은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법도 하다.
그 심정, 이해하고 말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 네티즌들의 연대라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라. 우선은 인터넷이라는 게 엄청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어떤
영역이 확장되고 사람
들의 생활이 그것에 밀접히 연관되어 간다는 것은,
곧 그 영역에서 역시 권력싸움이 격심해져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의 승자가 지니는 힘이
점점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 초에 있었던 군가산제 논쟁(? 그게 과연 논쟁이었나?
그건 테러였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심
지어, 정부의 정책을 바꿨다. 욕설과 테러, 폭력적
공간 점령과 인해전술로 사이버 공간에서 힘을
과시하던 남자애들을 본받자는 건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힘 과시를
통해 뭔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결과 여성들은 뭔가를 잃었다. 사이버공간이 개별화된 아이디(ID)
들의 밀실
놀이터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사이버공간은
현실공간과 겹쳐진다. 그리고 영향을 준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서의 여성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인터넷이 중요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심각한 얘기가 되겠지만,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여성들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첫번째 이유보다는 더
잠재적이지만 또한 더 절박한 이유이다. 가령 당신
은,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강사가 여자임을
확인하고, 또는 수강생 대다수가 여자임을 확인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 선생에게 또는 남자 수강생들 앞에서는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과 지식 없음에 대해 떳떳해지기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또는, 여성과 관련
된 어떤 주제를 놓고 짜증나는 논쟁을 벌이고 있거나
게시판에서 남성들로부터 공격당할 때,
낯모르는 여성이 바람처럼 나타나 편들어주는 바람에
용기백배했던 경험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많다. 피임은 생각도 안하는 못? 남자친구때문에
임신일까 아닐까 초조해 할 때 여성전용
익명게시판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고,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었을 때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게시판에 서명하고서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이 소중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러나, 남성네티즌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은
점점 강해진다. 내가
사이버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 - 그것이 사이버 공간에의
진입 그 자체이든,
여러 가지의 정보이든, 새로운 만남이든, 친밀한 커뮤니티의
형성이든 간에 - 은 여성들에게 더 많이
있다는 생각 말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들, 경제적으로
제한된 조건에 있는 여성들이 사이버공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필요성을 역설하고 여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상시적
온라인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네티즌들이 필요한
지식을 얻고 유사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여성들의 사이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논쟁이 벌어졌을
때 가당찮은 논리는 자근자근 밟아주고 폭력
적 욕설로 인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는 것은
여성들이다. 자신이 "여성" 네티즌이라는
것,
그리고 상대방도 "여성"네티즌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우리의 연대는 출발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선배 여성들의 싸움의 결과이다.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우리가 만나는 다른 여성 네티즌들과
무언가를 나누도록 하자. 온라인에 진입하지 못하
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자. 사이버 성폭력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자. 여성전용공간의 확보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과 같은 편에 서자. 그리하여, 여성
네티즌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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