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탁한 시선

[INTERNATIONAL2]

[출처: 이란 프레스티비]

은유로서의 질병관리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표현을 제시한 바 있다.1 질병에 관한 용어와 담론이 질병 자체만이 아닌 별개의 어떤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에이즈에 결부된 ‘역병’이라는 은유는 에이즈를 도덕적 타락에 대한 천벌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질병은 그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외부 세계는 이란에서의 코로나 확산과 정부의 대응을 그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 사태는 코로나와는 무관한 어떤 다른 것의 표현이었다. 그들이 케케묵은 해석의 레퍼토리로 꺼내든 것은 정권과 국민 간의 소통 부재, 거짓말만 하는 무책임한 정권, 그 배경에 있는 시대착오적인 신정체제 등이다. 이런 식으로 코로나가 아닌 이란 체제가 문제이며, 코로나에 대한 대응은 곧 이란 체제에 대한 응징으로 둔갑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어려움에 처한 이란인들은 잊힌다. 자신들은 바이러스를 단순히 외부에서 오는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중국이나 이란의 경우 자체의 해묵은 문제가 체화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초점은 질병과 고통에서 체제와 사회, 문화, 종교 등으로 옮겨진다. 고통에 대한 연민의 자리에 냉혹한 질책이 들어선다.

이란 코로나에 관한 관심과 담론

코로나 확산 초기, 이란에 대한 외부세계의 관심은 중국이나 이탈리아 등과는 다소 달랐다. 이란 정권의 문제, 즉 초기대응의 실패와 은폐 의혹, 고위급 인사들의 감염으로 인한 대응의 어려움, 그리고 보다 우호적인 입장에서 분석한 미국의 제재로 인한 대응의 어려움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기에 시아파의 순례 문화와 같은 종교적 요인이 전염병 확산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이란 정부가 보인 문제점으로는 초기에 환자 발생 사실을 숨겨 대응이 늦어졌고, 주민들에게 예방수칙들을 홍보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이 제기됐다. 그리고 초기 확산의 진원지던 시아파 제2의 성지 곰 지역의 순례를 막지 않아 이란의 다른 지방과 인접 국가로 확산하는 결과를 낳은 점 등도 지적됐다. 무엇보다 감염자와 사망자 수치에 대한 논란이 컸는데, 실제 피해 규모가 정부 발표보다 몇 배 더 많다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3월 12일에는 곰 인근에서 매장을 위한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지는 위성사진이 언론에 게재됐고, 사람들은 이를 이 지역의 희생자가 공식 발표보다 많다는 증거로 간주했다. 이러한 비판은 적어도 이란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프레임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자체적인 조사 결과 이란 정부 발표에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핵개발 의혹이 감염자 규모 축소 의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의혹을 늘린 데에는 고위층의 신종 코로나 감염 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란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 다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경우는 없다. 3월 중순에 이미 2명의 부통령과 다수의 장관, 국회의원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24명의 의원 등이 감염됐다. 이 중 2명의 의원, 2명의 전직 고위 외교관, 그리고 하메네이의 자문위원 1명 등이 사망했다. 몇 주 동안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은 중국과의 유사성도 관심을 끌었다. 마치 양국이 주된 감염 지역이 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게다가 중국과 이란은 최근 여러 면에서 긴한 관계를 맺은 나라가 아닌가?

초기에는 이란이 지리적으로 동유럽, 남아시아, 중동으로 이어지는 교류의 중심이자, 종교적으로 시아파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주변 여러 지역으로 바이러스가 확산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이 나왔다. 또 상당수 인접 국가들이 전쟁으로 전염병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란이 위험한 나라이며, 중동에 계절노동자들이 많고,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해있고, 의료체계가 부실하다는 등 여러 면에서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또는 순례 전통이나 집단기도 문화 등 이슬람의 특성이 전염병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은 많은 요인 중 한 부분일 뿐이다. 특별히 이란, 중동, 이슬람이 전염병과 친화성이 있다고 말할 근거는 희박한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란 정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나타난 보편적 문제라는 점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3월 21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공식 통계(2만 5000명)의 11배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가 이란 체제와 현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아직은 크지 않다. 2월 21일에 열린 총선 1차 투표에서도 반미 성향이 강한 보수파가 압승을 거두는 등 체제 붕괴의 조짐은 찾기 어려웠다. 체제에 위협이 되는 것은 그보다는 미국과의 갈등일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분쟁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최근 코로나 사태 와중에 양국이 주고받은 무력시위는 미국-이란의 갈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경제제재 속에서의 코로나 대응

이렇게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이란의 코로나 사태와 대응은 실제 어떤 양상을 띠었으며 특이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첫 확진자는 2월 19일 곰에서 발생했고, 3월 2일 그 숫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3월 7일 확진자 수가 5823명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최악의 상황이 예견됐다. 이후 일일 1000명 정도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며 10% 이하의 증가세가 유지됐다. 환자 증가율도 높고, 사망률도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며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돌던 유행 초기에는 바이러스 변이로 피해가 더 심각한 것 아니냐는 추정도 있었다. 그만큼 당시 상황은 심각했고 특히 곰 지역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시아파 성지가 폐쇄되고, 순례객의 방문을 막기 위해 호텔 등 숙박시설의 업중단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슬람 사원들도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문을 닫았고 금요예배도 열리지 않았다. 혁명수비대가 방역을 주도하고 30만 명의 민병대 대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의심환자들을 찾아냈다. 1,000여 개의 고정 또는 이동 진료소가 설치됐고, 군인들은 의료진을 보조하는 업무를 수행했으며 마스크나 장갑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란은 테헤란의 3만 개를 포함해 11만 개 정도의 병상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는 이동 병상을 설치했다.

거리와 대중교통은 한산해졌고, 직장에서는 동료 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주민들은 모든 여행이나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러 달라는 정부의 호소에 응했다. 초중등학교와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극장 등 문화시설도 문을 닫았다. 그 대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물 소비량과 인터넷 사용량이 늘었다. 오랜 제재나 전쟁으로 위기에 익숙한 이란인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사재기 열풍이나 정부 지시에 대한 반발이 심하지 않다고 전해졌다.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대부분의 이란인도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의 제재로 다른 국가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코로나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유엔 및 유엔 회원국들의 집단적, 개별적 대응조치를 말한다. 특히 미국의 제재는 그 범위가 넓고 강도도 심해 이란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물론 의료기기 및 의약품은 인도적 물품에 속해 제재 품목에서 제외되지만, 업체들이 이란과의 거래를 꺼리고 금융제재로 물품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찾기 어려워 실제 교역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란의 의료시설은 중동에서 최고 수준이며 선진국 수준에 가깝다고 평가되지만 최근 복원된 미국의 제재로 코로나 관련 의료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은 3월 2일에야 세계보건기구(WHO) 등으로부터 의료 및 위생용품, 검사 장비를 지원받았다. 특히 환자가 갑자기 많이 발생한 지역의 병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은 유엔과 세계 각국에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의료품과 구호물품 공급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불법적인 대이란 제재 철회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국제사회를 향한 호소에 일부 국가나 단체들이 의약품 등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2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50억 달러를 국제통화기금(IMF)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란이 IMF에 긴급자금을 요청한 것은 1962년 이후 58년 만이었다. 이란 정부와 이란인들이 미국의 제재가 낳은 비극에 국제사회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방 조치를 위한 패키지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이란 사람들 [출처: 이란 프레스티비]

질병을 질병으로 보자

바이러스는 국적이나 국경을 모른다. 특정 국가의 고유한 문제를 내세우기에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무차별적인 양상을 보인다. 바이러스는 민주주의 수준과 같은 고전적인 서방세계의 잣대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회나 체제가 전염병에 더 강한 면역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현재로선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다. 이란 정부의 전염병 대응방식에 대한 서방세계의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연원을 가지는 것이다. 전염병의 원산지로 인식돼 온 아시아에 대한 거부감만큼이나, 아시아 각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서구인들의 평가 역시 매우 부정적이었다. 전염병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나 통치자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로 인식됐다.3 전통적으로 전염병은 왕이나 백성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신의 징벌로 해석되곤 했지만, 이제는 지배적인 국가와 협력하지 않은 권위주의 체제의 결과라는 시각으로 부활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에 감염된 한 이란 청소년의 사연이 보도된 바 있다.4 그는 가족과 의료진 중 누구도 자신이 감염된 것을 탓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감염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주변 확진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무능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나라가 비참해지는 것을 바라는 정치인이나 정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이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난에서 정치가 아닌 인간을 보자. 코로나 사태는 방역의 과제와 함께 모든 인간과 사회가 바이러스 앞에서 동등하다는 인류애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세계는 팬데믹의 상황에서도 자국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특정 국가를 비난하는 경쟁적인 사고를 보인다. 희생자가 많은 국가들은 예외 없이 단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세계적으로 확산된 전염병들은 사회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코로나 역시 기존의 사회와 문화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다른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수정을 요하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쓰던 상투적인 잣대보다 새로운 세계인식의 도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는 듯하다.

1. 수전 손택, 2002,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 이후.
2. 〈타스님 통신〉, 2020년 3월 14일자.
3. 〈오픈에디션 저널〉, 2020년 3월 19일 검색.
4. 〈한국일보〉, 2020년 3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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