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의 반역자’, 한국의 루즈벨트는 누가 될 것인가?

[99%의 경제] 문재인의 금융연합과 대선 그리고 뉴딜


‘뉴딜’은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FDR) 대통령이 내놓은 일련의 경제사회 정책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비상경제회의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에 ‘한국판 뉴딜’ 기획단 설치를 지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기침체 등 대공황에 대응하는 국가 주도 사업이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으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루즈벨트 시대에 뉴딜은 경제적 성과가 없었다. 실업률은 1930년대 내내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재선 이후에는 경제성장률도 곤두박질쳐 1938년에 –6.1%까지 추락했다. 이때 투자증가율은 –31.2%였다. 만약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이때 시작된 경기침체는 1929년 대공황에 이어 더 깊은 침체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반면 뉴딜의 정치적 성과는 대성공이었다. 2차 뉴딜 이후 1936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루즈벨트는 역대 선거인단 획득 수 2위를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의회 선거에서는 상원 96명 중 76명, 하원 435명 중 334명으로 민주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해 이후 30년 장기집권의 토대를 형성했다. 루즈벨트의 뉴딜 신화는 이처럼 경제적 성공이 아닌 정치적 성공이었고, 뉴딜연합을 통해 민주당의 재편과 공화당의 고립 그리고 정치적 승리를 연결해 갈 수 있었다.

뉴딜연합이 아니라 금융연합

그렇다면 문재인의 뉴딜연합은 어떨까? 여권에서는 2017년 대선 승리와 2020년 총선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압승이 뉴딜연합을 통한 정당 재편과 같은 사례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또한 박근혜 탄핵 촛불운동으로 형성된 ‘촛불연합’의 연속으로서 자신들의 정책에 대중적 동의와 지지가 확보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른바 ‘촛불연합’과 뉴딜연합은 성격과 방향에서 명백히 다르다. 또한 2020년 총선은 코로나19 초기에 치러져 이것으로 뉴딜연합과 같은 정치적 구성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연합’, 즉 경제부흥정책을 매개로 한 여러 계급과 계층의 정치적 연합은 거의 형성되지 못했다. 다른 무엇보다 루즈벨트의 뉴딜연합은 노동자와의 연대 연합인데, 시대적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기존 지지 세력 이외에 어떤 세력과도 가시적으로 연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째,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드러나듯 정의당, 녹색당 심지어 시민사회진영 등의 진보 세력과도 연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독보적 지지율에 대한 착각과 오만 때문이다. 이 지지율은 정부를 지지한다기보다 이를 대체할 대안 세력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다.

둘째, 현재 계급적·정치적으로 진출하는 여성 및 환경운동 등과도 연대하지 않았다. 현란한 구호를 내걸었던 여성 정책은 고위 공무원의 여성 임원 비율이 다소 높아진 것 말고는 바꿔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자체장들의 성폭력 사건이 이어졌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2차 가해에 나서면서 스스로 여성들을 저버렸다. 또 환경 부문에서는 ‘그린뉴딜’이라는 이름만 차용했을 뿐, ‘정의로운 전환’과는 거리가 먼 굴뚝 대기업의 전환 비용만 지원해주는 ‘부정의로운 전환’을 내세웠다.

셋째, 정부 지지자들은 저항 세력 죽이기에만 골몰했다. 뉴딜연합도 노동자의 파업과 농민의 저항 시위가 이어지면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과 결합하게 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은 정부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정권 죽이기로 인식했고 노동자, 여성, 빈민의 생존권적 요구조차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짓밟으려 했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정부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정부가 친노동, 친여성, 친환경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투쟁을 자제했다. 제대로 된 문제 제기나 저항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문제나 사회적 주체 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가시적으로는 정치연합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암묵적인 연합을 형성하기도 했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과 K-뉴딜 계획은 금융시장을 구제·부양하고 재벌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산업 및 에너지) 전환 비용을 국가가 조달하는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뉴딜연합은 노동자-여성-환경-소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연합이 아닌, 금융자산가-채권자-대주주-건물주-재벌과 연합한 ‘금융연합’의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연합이 암묵적이고 묵시적이다 보니 이들도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의 뉴딜연합

루즈벨트는 임기 둘째 날인 1933년 3월 5일, 은행 일시 폐쇄와 금융거래 중단 조치를 시행했고, 곧이어 긴급은행법을 제정했다. 한 달 뒤에는 금본위제도를 중단하고 최초로 증권업을 규제하는 ‘연방증권법’과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한 ‘제2차 글래스-스티걸법’을 시행했다. 금융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금융질서를 새롭게 짠 것이었다. 농업을 지원하고 산업 및 고용을 증진하기 위한 법률도 제정했다. 취임 후 100일 동안 진행된 이 모든 일을 ‘1차 뉴딜’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여전히 실업률은 치솟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경제적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1934년부터 노동자들은 대규모 파업으로 항의하고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1935년 사회보장법을 시작으로 뉴딜연합을 형성하는 정책 및 입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은행법, 전력지주회사법, 와그너 법으로도 불리는 노동3권을 보장한 연방노동관계법과 ‘부자 증세’와 같은 세제개혁도 추진했다. 연간 5만 달러 이상의 개인소득에 누진율을 적용하고 500만 달러를 초과하는 고소득에는 75%의 세율을 적용했다.

이처럼 루즈벨트가 뉴딜연합을 형성할 수 있었던 개혁 입법의 기초는 ①금융통제 정책 ②농업 농민 보호 정책 ③국가 주도 산업부흥 및 반독점 ④복지와 노동권 보장 정책이었다. 이를 통해 과거 보수-남부-백인-기독교가 주축이었던 민주당은 리버럴(자유주의)-노조(노동자)와 농민-도시 서민-흑인-소수민족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자유주의 연합, 뉴딜연합을 형성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금융연합을 형성했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으로 GDP의 13.6%에 달하는 260조 원 이상을 시중에 공급했다. 그중 금융시장 부양에 135조 이상을 쏟아부었는데, 대기업 관련 지원금이 3분의 2에 달했다. 이와 별도로 대기업 구조조정 자금 지원을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 원도 운용했다. 실물피해지원금도 대부분 건물주의 임대료 감면과 수출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게다가 국가투자와 수요 진작을 위한 K-뉴딜은 수소경제,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사업 등 대부분 재벌이 독점시장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치중해 있다. 반면, 정부는 일반 국민과 영세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등 코로나로 경제적 피해를 본 계층에는 쥐꼬리만 한 지원을 했다. 전체 국민과 피해계층 지원으로 쓴 1차~4차 긴급재난지원금 규모는 고작 44.8조 원 수준이다.

이처럼 금융시장 안정, 대기업 지원, 건물주 및 불로 소득자 지원, 저금리, 양적 완화로 넘쳐난 자금은 (부족한) 소비지출을 넘어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몰렸다. 반면, 노동자들의 고용 위기는 지속했고 자영업자들은 파산하거나 1인 자영업으로 전환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반도체, 전자 업종 등 일부 수출 대기업들은 코로나 특수를 누렸고 비대면, 플랫폼 대기업들은 시장의 외부효과로 독점적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자산시장은 실물경제와 완전히 괴리돼 폭발적 성장을 하면서 돈을 쓸어 담았다. 코로나19 이전보다 거래량도 획기적으로 늘었고 자산시장의 수익률은 최고점을 찍었다. 그중 한국의 주식시장 상승률은 세계 1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자산시장은 회복을 넘어 폭발적 성장을 했기 때문에 자산가들의 자산 가격 상승은 어마어마했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와 불평등 지수도 상승 국면을 맞았다. 한국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순자산 지니계수가 2017년 0.584에서 2020년 0.602로 높아졌고 순자산 상위 10% 가구의 점유율도 41.8%에서 43.7%로 높아졌다. 이 조사는 2020년 3월 말 기준으로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이뤄진 결과다. 2020년 말 기준으로 다시 조사하면 자산 불평등 비중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날 것이다.

법·제도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연합’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정부·여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ILO의 권고와 국제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노동기본권이 개악됐다.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에도 노동유연화 확대와 노동기본권 개악으로 노동자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공정경제 3법 개정은 소수 주주권을 미약하게나마 일부 확대했지만, 주로 재벌 지배구조를 합리화·안정화하려는 조치로 구성했다. 취약한 지배구조에 안정성을 더하고, 대주주의 이사회 지배력과 사익편취 수단을 계속 유지·확대하도록 한 것에 불과했다. 정부 타협적 태도와 재계의 집요한 로비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빠져나갈 수많은 구멍이 만들어져 ‘재해기업 보호법’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후반기, 토건족과 삼성에 장악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둘러싸고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유동성 증대로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자 어설프게 수요억제 정책을 펴 부동산 가격 폭등이 반복됐고, 급기야 신도시 개발이라는 공급 대책으로 급선회하며 (공공개발이든 민간개발이든) 개발중심의 부동산 대책을 추진했다. 집값이 오르니 전·월세 값도 덩달아 뛰었고 무주택, 저소득 가구의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루즈벨트보다 후버

정책의 성격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와 루즈벨트 정부의 대응 기조는 상반돼 있다. 우선 루즈벨트는 금융통제에 기초한 금융개혁을 추구했는데, 문재인은 금융시장 안정만을 추구했다. 또한 루즈벨트는 노조법, 사회보장법 등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강력히 보호하는 입법을 추진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매우 빈약하거나 오히려 사측에 유리한 입법을 했다. 플랫폼종사자보호법, 가사근로자법, 자영업자 국민연금 가입 확대 등의 조치는 한편에서 불안정노동자를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자들의 반발만 사고 있다.

특히 금융 및 독점규제와 관련해 루즈벨트는 은행법, 국가산업부흥법 등 국가 주도 산업계획과 반독점을 확대하는 여러 조치들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미국 경제의 구조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재벌규제와 관련해서는 공정거래 3법 같은 형식적인 조치들만 취했고, K-뉴딜 등을 통해 독점을 더 강화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축소되고 조정돼야 할 금융시장과 부실 대기업을 보호하고 부양함으로써 더 큰 위기의 씨앗을 잉태했다.

결국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루즈벨트 이전 후버 대통령의 정책과 같다. 1929년 3월에 임기를 시작한 후버 대통령은 그해 10월 말 뉴욕증시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과 마주했다. 후버는 이를 일시적 공황이라 보고 몇 가지 대책을 강구했다. 그가 내놓은 위기 대응 정책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관세 인상, 금본위제를 지키기 위한 금리 인상 등 대부분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에 치우쳐 있었다. 그 결과 공황은 더 심각해졌고 실업과 생산축소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

이로 인해 북부의 노동자와 농민이 반발했고, 공화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잃어갔다. 1928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270석, 만년 야당인 민주당은 164석을 얻어 후버 대통령은 안정적인 정치 행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공화당은 궤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쥘 수밖에 없었고 권력은 민주당으로, 대통령은 민주당 루즈벨트에게 넘어갔다. 이후 공화당은 (2차대전 전쟁영웅인 아이젠하워의 집권을 제외하고) 30년간 지리멸렬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이끈 보수주의 개혁 운동을 통해 당내 진보 세력을 몰아내고 남부지역 남성 백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보수주의로 탈바꿈한 뒤 안정적인 지위에 올라섰다.

한국의 루즈벨트, ‘계급의 반역자’는 누가?

루즈벨트 이전의 민주당은 남부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지금의 공화당과 같이 보수적이었다. 반면 북부와 흑인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공화당은 지금의 민주당과 정치 성향이 유사했다. 그런데 민주당 루즈벨트가 뉴딜연합으로 선거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민주당은 북부, 흑인 중심으로 재편됐다. 반대로 공화당은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정치 구도가 형성됐다. 루즈벨트는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 ‘계급의 반역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민주당 내부를 재편했다.

코로나19와 정부의 대응으로 자산 불평등은 역사적인 수준으로 벌어졌다. 지니계수 등 분배지표도 악화했고 실업률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최근 현 정부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지지 철회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루즈벨트가 될 기회는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국민의힘이 현재의 상황을 이용해 강력한 뉴딜 정책으로 집권하고 노동자-여성-환경-소수자를 아우르는 정치연합을 구성하면, 또 몇 년 후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치 성향은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을 1년여 남긴 현재, ‘반역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강단이 있거나 감각이 있는 보수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질서를 바꾸기는커녕 상대 정당의 잘못에 기대 반사이익만 노리는 무능한 정치 세력들만 가득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진보·변혁적 정치 세력에는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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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코로나19와 정부의 대응으로 자산 불평등은 역사적인 수준으로 벌어졌다. 지니계수 등 분배지표도 악화했고 실업률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최근 현 정부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지지 철회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루즈벨트가 될 기회는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국민의힘이 현재의 상황을 이용해 강력한 뉴딜 정책으로 집권하고 노동자-여성-환경-소수자를 아우르는 정치연합을 구성하면, 또 몇 년 후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치 성향은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을 1년여 남긴 현재, ‘반역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강단이 있거나 감각이 있는 보수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질서를 바꾸기는커녕 상대 정당의 잘못에 기대 반사이익만 노리는 무능한 정치 세력들만 가득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진보·변혁적 정치 세력에는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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