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운동의 민관 협의체 참여: 평가가 필요하다

[녹색 스트라이크]


1992년 리우환경회의는 한국 환경운동사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리우에서 합의된 기후변화협약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문제의식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됐고, 이후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환경운동은 리우환경회의 참가단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다. 환경운동의 주체로 삼았던 공해 피해 지역 주민들이 배제되고, 재벌 기업들이 참가단에 포함되자 내부 반발이 생긴 것이다. 재벌 기업들이 제공한 돈이 환경운동가들의 여행 경비로 쓰이는 것도 문제가 됐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태의 원흉인 두산까지 참가단에 포함되면서 반발은 더 컸다.

결국, 90년대 초반까지 민중적 정체성에 기반한 한국 환경운동의 대명사였던 공해추방운동연합은 이듬해 환경운동연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분열을 겪었다. 그 결과 시민적 정체성에 기반해—하지만 활동가와 전문가를 주된 동력으로 삼으면서—정부와 기업까지 협력의 대상에 포함하는 본격적인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런 경향은 리우환경회의가 결의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아젠다 21’에 기초해 1995년 한국에서 ‘지방의제21 전국협의회’가 생기면서 강화했다. 전국협의회는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등 문제해결 주체들 간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적어도 문서상으로는—건강한 문제의식과 함께 출범했고 오늘날 ‘협치,’ ‘거버넌스,’ 혹은 ‘사회적 경제’의 모태가 됐다. 같은 해 출범한 녹색서울시민위원회는 이후 ‘환경부 시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그러나 ‘수평적·자발적 협력’이라는 초기 목적이 잘 지켜지지는 못했다. 10년간의 환경 거버넌스 사례들을 소개·평가한 2004년 환경부의 보고서(1)는 “국가 주도의 획일적이고 하향적인 경제 성장전략을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해 온 우리나라의 현실”을 지적하며 거버넌스 체제가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정책 과제들을 민간 영역으로 이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역할을 시민단체들이 대신하는” 사례가 많아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출발한 거버넌스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포괄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민관 협의회가 지방정부 사업을 외주 받는 ‘하청업체’의 역할을 하면서 수평적인 협력관계 구축에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이 시행되고 환경부도 개별 법령에 따라 환경 보전사업을 지원하면서 민관 협의체는 계속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각종 환경 관련 현안이 터지면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중앙환경정책위원회나 국가에너지위원회 등의 정부 상설 위원회에도 시민사회 대표들이 참여하게 됐다. 이런 민관 협의체는 환경운동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기능하기도 했다. 동강 살리기나 천성산 터널 반대, 혹은 습지보전법이나 4대강 수계특별법 등의 환경 입법 등은 성공적인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그러나 성공적인 경우조차 민관 협의체에 누가 참여할 것인지를 놓고 대형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 간의 마찰을 빚어야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엔 채널이 봉쇄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고무돼 자신 있게 참여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도 있었다. 물론 민관 협의체 참여가 성과를 낼 수도, 못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민관 협의체 참여의 성공사례는 더욱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시민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이나 탈탄소전환위원회는 제대로 된 탄소 감축 목표도 내지 못했다. 기후가 아닌 경제적, 정치적 동기로 발표된 ‘그린뉴딜’이나 2050 탄소 중립 선언 후에도 과거 정부가 책정한 목표를 그대로 따른 2030 탄소감축 목표를 유지해 유엔에서 퇴짜를 맞았다. 정부 여당은 특별법 통과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생태파괴와 탄소 배출을 피할 수 없는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토건개발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그린 워싱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환경단체들은 민관 협의체 참여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를 위해 P4G 혹은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12개국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에 오랫동안 공들이고 있다. 정상회의의 민간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 모임에는 에너지시민연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과 더불어 환경운동연합도 참여하고 있다(2). 한쪽에선 2050 탄소 중립의 구체적 계획을 마련할 탄소중립위원회의 민관 협의체 구성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참여할 시민사회 대표 선정 작업이 시작됐지만, 시민사회 어디서도 누가 참여해야 하고 어떻게 공동의 대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저 정부가 불러주면 가는 분위기다.

흔히 민관 협의체 참가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투 트랙 전략’을 이야기한다. 밖에서는 사회운동으로 압력을 형성하고 안에서는 정부와의 협상으로 목표하는 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사회운동의 힘이 필수적이다. 이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것이 미국의 기후정의운동 단체인 썬라이즈무브먼트다. 이 단체의 대표인 바시니 프라카시는 대선 전 샌더스와 바이든이 공동으로 꾸린 정책 TF에 초대받았는데, 이때 그가 썬라이즈 활동가들에게 보낸 편지는 투 트랙 전술을 활용하는 사회운동의 적절한 자세를 보여준다.

“내가 (바이든 캠페인의) TF에 들어가게 된 것은 우리가 운동을 통해 일구어낸 정치적 힘 때문입니다. 이건 엄청난 성과이고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변화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솔직히 이 TF가 얼마만큼 우리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만큼의 힘을 우린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TF에서 무엇을 하는가보다 앞으로 우리의 운동이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정치적 힘은 우리 민중의 힘만큼만 주어질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수가 될 때까지, 우리가 멈출 수 없는 힘을 가질 때까지 우리 운동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 여러분들과 다시 거리에서 만나기만을 기다립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운동단체 대표는 아직 운동의 힘이 모자라 정치권과의 논의에서 얼마나 내용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 때문에 우리 운동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에 위협도 되지 못하는 한국의 기후운동 단체와 활동가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전략도 없이 민관 협의체에 기댄다. 개인의 역할이 부각되는 협의체에 초점을 맞추면 집단이 중요한 사회운동은 부차화되고 정부 아젠다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큰 틀을 놓고 싸우질 못하니 정부가 짜놓은 틀 안에서 수치 같은 세세한 문제로 싸우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도 판을 깨고 나오는 일은 없다. 대신 나중에 ‘실망스럽다’라는 논평을 내고 기자회견을 연다. 그러다 다음 협의체가 제안되면 또 참여한다.

기후위기를 직시하라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고 절규하는 시대에 이런 악순환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앞서 민간 협의체에 대한 정부의 평가를 소개했는데, 그 이유는 정부 기관이나 민관 협의체에 열심히 참여했을 법한 학자들이 쓴 논문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환경운동 측에서 나온 평가는 찾기가 힘들다. 뭔가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1)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환경거버넌스 구축방안 146-7p, 환경부, 2004
(2) 환경운동연합은 3월 30일 3차 준비회의 이후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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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철(독립연구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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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무엇을 갖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간절한 마음이라고 봅니다. 남이 그런다고 나도 지게지고 레스토랑에 갈 수는 없습니다.무엇을 해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뿐입니다.......늘 건강하시길

  • 봄에 움트는 인간

    문경락은
    그동안 뭐했노
    어떻게 살았노
    보아하니 나이는 어지간히 먹었겠는데 그동안 뭐하고 살았더노. 또 손가락만 바들바들 떨지말고 잘 해봐라. 아무튼 일평생굼벵이라도 면해야지. 단체들 보니까 헛일만 하는 것 같던데 굼벵이 신세팔자를 면하겠나.

  • 봄을 타지 않는 인간

    단체들이 이걸 잘 모르나보더구만. 중세시대의 학문들처럼 자신들의 학문이란 것도 한꺼번에 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아무튼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른바 좌우파 대등하게 나아가고 있다고 봐야하겠더구만, 자신들도 한번 판단을 해보면 어떤 부분이 앞서고 뒤쳐지는지 그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것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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