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산, 서울 제국에 바치는 공물

[이슈①]지역은 어떻게 썩어가고 있는가

지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지역 대학 정원 미달, 위기!” “지역 청년 일자리 부족, 위기!” “지역이 소멸하고 있습니다. 도움!”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으면 좋을 텐데, 뭐가 좀 나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지역이 어려운 거 하나 더 있다. 쓰레기 산 문제다. 쓰레기 산 앞에 서면 얼마나 스스로 초라해지는지. 악취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쓰레기가 광범위하게 쌓여 있어서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도 모르겠더라. 시간이 지나면 어찌어찌 치우겠지만, 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주민에게는 어쩌면 트라우마로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쓰레기 산 인근 지역에 사는 지인은 쓰레기 산을 치웠는데도 여름만 되면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원래부터 비어 있던 농촌. 뭔가 있다가 비어버린 폐공장을 쓰레기가 채우고 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경북 문경시 한 공장 부지 옆 들판에 불법 폐기물이 쌓여 있다.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들어가며

불법 폐기물 기획을 준비하며 지역 곳곳을 쏘다니던 때, 아주 진절머리 나는 일이 있었다. 잠깐 식사를 하러 들어선 식당의 TV나, 운전하며 듣는 라디오, 팟캐스트 어디에서나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이야기만 주구장창 흘러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선거의 무게는 마치 거기에 국가의 명운이라도 달린 듯 엄중했다. 그 엄중한 분위기에 대구경북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됐지만, 결국은 고개를 돌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재난위로금 지급, 안심소득 지급, 수십만 호 아파트 공급…. 묻고 더블로 가! 거대양당이 나라의 모든 자원을 끌어다가 서울 카지노에 판돈으로 걸고 있는 듯했다.

이번 주제인 ‘불법 폐기물’ 뿐만 아니라, 지역에는 서울에 들일 수 없는 여러 기피 시설로 가득하다. 전국 공장 94.1%가 지역에 있다. 공공매립장 100%가, 공공소각장 97.2%가 지역에 있다. 생산시설 측면에서 보자. 공장 94.1%와 함께 농지 99.8%가 지역에 있으니까 한국에서 생산되는 물자는 전부 지역에서 나온다고 해도 되겠다. 전국 원전 100%가 지역에 있고 다른 발전소도 대부분 지역에 있으니까 전기도 지역에서 생산하는 건데,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지역민의 반발 속에 설치된 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서울로 보낸다. 이쯤 되면, 식상한 말일 수 있지만, 서울을 ‘제국’이라고, 지역은 ‘식민지’라고 써도 무방할 듯하다.

불법 폐기물이 서울 제국에 버려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한국 인구 19%가 서울에 있으니, 2021년 2월 기준 불법 폐기물 43만2천 톤 중 19%인 8만2천 톤이 서울에 버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21년도 조사 시점에서는 서울에 버려진 불법 폐기물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2019년 전수조사 기준 불법 폐기물 전국 120만 톤 중 1%도 안 되는 7,100톤이 서울 공장 두 곳에 적치돼 적발된 사례는 있다.

#장면 1. 식수원으로 흘러가는 쓰레기 산 침출수

8,500톤 규모 쓰레기 산에서 매일 10톤씩 침출수가 발생해 한강에 흘러간다면 어떨까? 쓰레기산 처리까지 몇 개월이 걸릴까.

경북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8,500톤의 폐기물이 불법 투기됐다. 온혜리 적치장에서는 건기에도 악취가 심하게 났다. 폐기물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큰 웅덩이 두 곳에 고여 풍기는 악취였다. 웅덩이에는 의료폐기물로 보이는 약병, 건설·산업 폐기물로 보이는 폐토사, 폐합성수지 등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웅덩이에 고인 침출수는 적치장을 휘감으며 흐르는 개울에 유입되고 있었으며, 개울은 안동호와 연결된 온혜천으로 흘러갔다. 안동호는 식수원이다.

온혜리에서 평생을 지낸 송창섭(65) 이장은 2018년 말 외지인들이 현재 폐기물이 적치된 농지에 투기하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송 씨는 폐기물 투기 때문에 청정지역이 망쳐졌다고 한탄한다. 2018년 말, 해당 농지를 지나던 송 씨는 입구에 갑자기 둘러쳐진 높은 울타리와 그 앞을 지키는 남성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송 씨가 울타리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현장 소식을 들은 주민들도 불안했지만, 모두 노인들이라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남성들은 이곳에 컨테이너 제작 업소가 들어온다고 했고, 송 이장도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2018년 12월부터 마을 도로로 지반을 흔드는 큰 트럭이 셀 수 없이 지나갔다. 주로 밤중이었기 때문에 트럭에 무엇이 실렸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낮에도 항상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들이 울타리 너머로 들여보낸 것은 불법 폐기물이었다. 울타리를 지키고 서 있던 사람들은 사실 조직적으로 폐기물을 투기하는 일당이었다. 송 씨는 이 같은 사실은 이들 일당을 수사하던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서부서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안동시 또한 경찰 연락을 받고 현장을 파악했다. 송 씨가 상황을 파악한 시점, 일당은 이미 안동에서 투기를 끝낸 뒤 경북 포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불법 투기가 적발된 시점은 2019년 2월. 2년이 훌쩍 지난 2021년 5월 현재까지도 폐기물 처리는 끝나지 않았다. 안동시에 따르면 2019년 4월경부터 침출수가 흘러나왔다. 안동시는 매일 5~10톤가량의 침출수를 탱크로리에 담아 하수처리장에 보내기는 한다. 하지만 폐기물을 치우는 본격적인 작업인 행정대집행은 2020년 11월에 와서야 돌입했다. 2021년 5월, 투기 후 2년이 지나는 동안 8,500톤 중 2,629톤만 수거가 진행됐다. 폐기물 처리 조치가 지연되는 동안, 지하수를 먹고 농업용수로도 쓰던 인근 주민들은 자비를 들여 2019년 상수도를 설치했다.

“예전에 이곳은 청정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지하수가 있어도 안 먹어요. 밑에 지하수로 침출수가 다 흘러갔다고 봐야 합니다. 약병도 굴러다니고, 많이 불안해요. 여기가 낙동강 상류인데 물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낙동강도 여기서 한 4km 가면 있어요.” — 송창섭 이장

안동호로 얼마만큼의 침출수가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안동시는 침출수의 오염물질이 안동호에 유입됐다는 사실 자체를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침출수가 온혜천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웅덩이 주변에 둑을 높이는 조치를 했다고도 설명한다.

하지만 침출수가 장기간 발생했다면 주변 하천과 지하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김영훈 안동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투기된 폐기물이 산업폐기물이면 독성이 더 많을 수 있다. 설령 침출수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천천히 지하로 유입되고, 장기적으로는 하천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지하수는 유속이 느리기 때문에 한 번 오염되면 복구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북 경주시 한 공장 안에 불법 폐기물이 가득 쌓여 있다.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장면 2. 쓰레기 공장에 속 썩는 공장주

경북 영천에서 가업을 이어 가구 공장을 하던 이 모(44) 씨는 2019년 경기가 악화하자 공장 임대를 결심했다. 공장을 빌리겠다는 사람은 금방 나타났다. 그는 비철금속 보관업을 한다며 자재가 비싸 숨겨야 해서 담장을 더 높이 쌓겠다고 했다. 보증금도 1년 뒤에 더 올리겠다면서 첫해에는 낮게 잡아달라고 하기에, 이 씨는 믿고 임대를 결정했다.

두 달 뒤, 이 씨는 환경운동가 서봉태 씨로부터 공장에 수천 톤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빌려준 공장에 비철금속이 아닌 쓰레기가 있다는 소식에 이 씨는 한달음에 공장에 왔고, 현장 확인 뒤에는 말문이 막혔다. 충격적이었다. 임대하면서 어느 정도의 기물 훼손은 예상했으나, 불법 폐기물이 가득 찬 상태로 돌려받을 줄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 씨에게 접근한 사람은 비철금속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폐기물 투기범 일당 중에서도 속칭 ‘바지사장’으로, 윗선의 지시를 받아 본인 명의로 공장을 임차하러 온 투기범이었다. 사실 투기범들은 이 씨 공장 인근 다른 공장을 빌려 먼저 1만 톤을 투기했다. 해당 공장이 꽉 차자 이 씨의 공장까지 추가로 빌렸던 것이다.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 씨는 사태 수습에 나서야 했다. 수사기관에서 확실하게 수사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우선 수사단계에서 확실한 처리를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부산에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하지만 수사가 원활히 진행되지는 않았다. 2019년은 의성 쓰레기 산이 알려진 직후로, 당시에는 폐기물 불법 투기 수사와 관련해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씨는 경찰서 민원실을 먼저 두드렸는데, 지능범죄팀으로 가라, 경제팀으로 가라, 영천시로 가라 하는 말을 들었다. 영천시에서는 다시 경찰서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피의자들에 대해 다량의 영장도 청구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재판 끝에 이 씨 공장에 투기한 범인 중 일부는 징역 1년6개월(무허가 폐기물처리업자), 징역 1년(위탁 경영 브로커, 바지사장),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배차 브로커)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 씨는 충분한 처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이들 일당에 헐값으로 폐기물을 넘긴 폐기물 중간배출업체는 원인 제공자임에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 씨가 강한 처벌을 기대했던 이유는, 처벌이 강한 만큼 투기범들이 원상회복에 나설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1년 5월 현재에도 이 씨 공장의 폐기물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이 폐기물을 행정대집행을 통해 치우게 될 경우, 수십억 원대의 비용은 고스란히 이 씨가 물게 된다. 투기범들이 알아서 변제하겠다고 나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투기범이 불법 투기를 통해 보는 이익금보다 행정대집행에 드는 비용이 훨씬 많다.

  경북 안동시 한 폐기물 적치장(오른쪽=송창섭 이장) [출처: 박중엽 뉴스민 기자]


또한 투기범들은 수사기관에 ‘한 푼도 없다’고 진술했다. 결국 불법 투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 것이다.

폐기물 브로커·조폭 연루된 폐기물 투기 메커니즘 안동시에 투기한 일당과 영천시에 투기한 일당은 서로 다르지만, 조직의 구성은 유사하다. 이들 범행에 대한 판결문과 수사 기록을 종합하면, 투기범 일당은 총책, 폐기물 처리 브로커(영업 담당자), 속칭 ‘바지사장(현장 관리자)’, 운반책(화물차 운전자), 포크레인 기사 등으로 나뉜다. 총책은 업무 총괄과 자금 조달, 브로커는 투기 방식 설계·투기장 물색, 바지사장은 투기장 매수나 임대 등을 맡았다.

온혜리에 투기한 일당의 경우, 2019년 1월부터 2월까지 폐기물 배출 업체로부터 1톤당 정상 가격(20만 원)이 아닌 13~16만 원을 받고 폐기물을 투기했다. 트럭에 폐기물 20톤을 실어 한 번 받으면 배출업체로부터 300만 원을 받는데, 이를 일당들이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가졌다. 안동시에 투기된 8,500톤을 톤당 15만 원으로 계산하면 이들이 본 수익은 12억7500만 원이다. 안동시는 행정대집행 비용으로 45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총책 A(33) 씨는 충남 홍성군 폭력범죄단체 조직원 출신이다. 2018년 충북 음성에서 브로커 B(44) 씨, 폐기물 처리업자 등과 만나 폐기물 투기 방법을 모의했다. 이들은 2018년 9월 경기도 화성시에서 불법 투기한 뒤, 2019년 1~2월 안동시로 옮겨와 투기를 이어갔다.

이들은 안동시 온혜리 적치장이 가득 차자 포항으로 옮겨갔는데, 이때쯤(2019년 3월) A, B씨 사이가 틀어져 B씨가 A씨를 경찰서에 신고했다. 신고 내용은 A씨가 포항시에서 폐기물을 투기한다는 내용이었는데, B씨는 제보했다는 명분으로 B씨 자신은 포항시 불법 투기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서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는데, A씨는 양형 참작을 위해 B씨가 관리했던 폐기물 배출 업체 명단을 다시 작성해 수사기관에 제보했고, 이로 인해 폐기물을 불법으로 배출한 업체의 윤곽도 드러났다. 안동시에 투기된 쓰레기는 고물상, 재활용업체, 건축 현장, 폐기물 중간처리업체 등으로, 배출 업소도, 배출 지역도 다양하다.

이들은 안동 외에도 경북 포항이나 영천, 경기 화성 등 전국 각지에 폐기물을 투기했기 때문에 이들이 불법으로 취득한 이익은 수십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재산이나 수입이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영천 공장 투기범의 경우, 환경 매체 기자가 브로커로 활동한 점도 눈에 띈다. 총책이 브로커에게 지시하고, 브로커가 바지사장에게 공장 계약을 지시한다. 바지사장은 자신 명의로 이 씨의 공장 등을 임차하는 대가로 7천만 원의 사례비와 경비를 받기도 했다.

또한 영천 투기범들이 폐기물 중간처리업자와 공모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허용보관량을 초과해 폐기물을 보관하던 중간처리업자와 공모한 투기범들은, 영업정지를 받은 공장에 낮은 단가에 더 많은 폐기물을 투기했고, 투기 수익 중 일부를 업자에게도 나눠줬다. 행정기관의 조치는 폐기물 투기 방지에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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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멍치가 약하면 못이 뛰어 나오기 마련이지요 국법이 준엄해야 다시는 이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서민들이 맞지 않습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