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말

[프리퀄prequel]

오랜 시간 수원역에 존재한 성매매 집결지가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따른 종합 정비추진계획’을 바탕으로 소방도로 개설이 이뤄지며 일부분 철거되었다. 이와 함께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지원하기 위한 자활지원조례가 제정되고 경찰 단속으로 업소 운영이 잠정 중단되는 등 변화가 생기고 있다. 수원시와 수원여성인권 돋음은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기억, 기록을 위해 여성 창작자 7명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그중 나를 포함한 2명의 사진가는 아카이브 촬영을 맡았다. 

<번역의 말>은 수원 성매매 집결지 아카이브 촬영을 하면서 느낀 곤란함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이 없고 흩어지는 그 공간에서 카메라를 든 나는 계속해서 소통 불가능한 상태를 마주하게 됐고, 이 의문스러운 이미지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성년자 시절 성매매 피해를 겪은 한 여성과 이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내가 사진을 전송하면 그녀는 그에 따른 텍스트를 보내왔다. 이 작업은 어떤 시간의 부산물이며 한 개인의 절규, 성 착취 산업에 대한 고발로 이어진다. 




성매매 집결지를 촬영하러 가는 날이면 흐리거나 비가 내렸다. 동행하는 활동가님도 내가 도착하면 비가 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벌어진 벽지와 곰팡이, 작고 큰 웅덩이를 넘나들었다. 진작에 무너졌어야 했던 이들처럼 무너지는 건물들이었다. 그 사이에 거울을 보고 재촉하고 나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는 몇몇 여성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젖은. 나는 눈길을 돌렸다.



창가에 종이 달려있다. 
벽에 부적이 붙어있다.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쌀이나 액운 풀이 초가 즐비했다. 그들은 이것을 믿나 보다. 
렌즈가 자신을 향하면 업주들은, 손님들은 동공이 재빠르게 흔들렸고 이내 분노했다. 떳떳하고 싶은 얼굴 사이로 퍼지는 조악한 분노를 보았다. 
퍼지는 것 중 가장 모질고 못생긴 형상이었다. 타인을 훼손하는 이상 액이 따를 터이다. 




컬러 필름이 없어 흑백 필름을 챙겼다. 
흑백 필름을 잡아 가방에 넣을 때마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다. 색을 소거한다는 점에서 흑백 필름은 나에게 완벽한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음화에서 양화로, 이미지로 생장하면 그것은 나를 세게 조르고 때린다. 소거해서 분명해지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선택지를 갖고 살아간다. 방관자의 얼굴을 만든다.




지하상가를 걸었다. 
계속해서 한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넋을 놓고 그곳을 이탈하지 못했다. 
거울에 붙은 캐릭터 스티커, 자양강장제, 눅눅한 냄새와 장미 향 방향제. 
그 공간이 나를 삼켰다가 뱉어내면 내가 살던 시간이 잠시 휘청거린다. 
불빛이 주둔한 그곳은 몇 시인가. 타이머 소리. 
나는 그 시간을 건너가려고만 한다. 이기적인.




필름에 담긴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진다. 
수세, 현상, 정지, 정착. 
내 손에는 몇 장의 사진이 남았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찍은 사진들을 번역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쩌면 살아남은.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