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녹색 스트라이크]


지난 10월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에서 탄소중립위원회의 전체 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2030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두 개를 확정 지었다.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는 비판이 쇄도했던 탓일까.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내놓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두 개 안은 모두 탄소중립을 목표로 설정했다. 2030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을 목표로 했다. 친환경 소재의 넥타이를 매고 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은 기존 26.3%에서 대폭 상향한 것으로, 우리의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의욕적인 감축 목표”라고 자화자찬 했다. 그러고는 근처 맹꽁이 숲을 거닐며 관계자들에게 “맹꽁이 보존에 매진해 달라”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청와대는 “맹꽁이 서식지의 보호가 탄소중립과 맞닿아 있다”라며 대통령의 ‘맹꽁이 숲 탐방’ 배경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대통령과 탄중위 위원장, 위원들은 전면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초록빛 숲을 배경 삼아 회의를 했다.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평화롭게 진행된 회의였다. 하지만 회의장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회색 아스팔트 바닥에 수백 명의 경찰이 집결해 회의장 주변을 꽁꽁 둘러쌌다. 그 틈으로 모인 기후활동가들은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몇몇은 한강대교 도로를 가르는 교통섬에서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경찰에 사지가 들려 나왔다. 이들은 바닥에 고꾸라진 채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한쪽에선 활동가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경찰을 규탄했고, 다른 쪽에서는 구름다리 위를 평화롭게 건너는 탄중위 위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의 생명과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 그 바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고, 우리의 감정은 격양돼 있었다.


같은 시각,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회의 참석을 위해 구름다리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눈앞에 나타나자 나는 악에 받쳐 욕까지 섞어가며 기억나지도 않을 규탄의 말을 퍼부었다.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자 그가 고개를 돌렸고, 멀리서나마 잠시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다른 탄중위 위원들도 하나둘씩 구름다리를 건더기 시작했고,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비통함에 사로잡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을 지켜보며 ‘원통하다’, ‘분하다’라고 절규했던 장지연을, 그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떠올리고 있었다. 당시 조선 인민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결정 방식이 오늘날 모든 지구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을 ‘나쁜 놈’으로 보지만,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는 ‘서구 침략자’에 맞선 ‘아시아’의 리더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안중근에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도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고 ‘한중일 삼국의 공동 안녕’을 약속했던 동양의 ‘지도자’이자 ‘계몽가’였다. 장지연은 이토 히로부미가 방한하던 날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官民上下)가 환영해 마지않았다”라며 그의 ‘본뜻’도 모른 채 헛된 기대감에 차 있던 조선인들을 보고 탄식했다.

장지연이 비판한 대상은 곧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대신들, 즉 당시의 정책 결정권자들로 옮겨갔다. 이완용이나 박제순 같이 나라 팔아먹을 생각에 혈안이던 ‘을사오적’은 아예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라며 제쳐놓는다. 대신 을사조약에는 반대하지만 그 무엇도 하지 못한 책임 있는 자리의 대신들을 엄중히 비판한다. 병자호란을 떠올리며 “청음 김상현처럼 통곡하며 항복문서를 찢지도 못하고 동계 정온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하고 그저 살아남고자” 한 대신들을 향해 “무슨 면목으로 2000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절규한다.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000만 동포여, 노예 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4000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결국 조선인의 환영을 받았던 이토 히로부미의 집요한 압력과 여기에 부응했던 권력자들 덕에 을사조약이 맺어졌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했으며, 군대도 해산당했다. 조약을 반대했던 고종은 헤이그 밀사 파견을 계기로 폐위됐고, 그렇게 5년 후 한일합방을 위한 길이 닦여졌다.

오늘날 우리는 을사조약과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참여했던 이들을 친일파로, ‘반민족 행위자’로 낙인찍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어찌 억울함이 없겠는가? 그들 대부분은 이미 기울어져 가는 국운 속에서 민족의 대안을 찾으려 했고, 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이 가혹했기에 더더욱 조선인의 복리와 안녕을 위한 현실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던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며 결국 일제의 하수인 역할을 떠맡게 됐지만, 그래도 1920~30년대 상대적으로 온화한 문화정책 속에 조선인의 문화 창달과 권리 신장에 이바지하지 않았던가?

현실의 논리는 이처럼 복잡하고도 오랜 역사를 가진다. 섣불리 판단하는 것을 저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의 제약 속에서 구체적인 ‘실리’를 찾자는 논리가 끊임없이 권력을 강화하는 경향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조선인의 이해를 더 반영시키기 위해 식민지 권력의 ‘거버넌스’에 참여했던 이들은, 결국 ‘견딜 수 있는’ 식민지 현실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군부독재 시절 정부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은 억압적 권력관계의 본질을 흐리는 일에 이용당했다. 모두가 참여해 변화를 꾀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들이 권력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동안 권력에 저항하며 싸우다 죽어간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들의 참여가 식민지 청산이나 민주화에 어떤 역할이라도 했다면 그 정당성을 논할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도 못했다.

노들섬 탄중위 회의장도 ‘현실’의 논리로 무장한 이들이 벌여놓은 판이었다. 경제성장의 논리로 무장한 산업계, 이들을 지지하는 정부 관료와 학자들, 그리고 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된 기후위기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참여했던, 아직은 스스로를 ‘기후 전사’라고 생각하는 듯한 민간 위원들. 자신이 국내에 ‘기후정의’라는 개념을 소개했다던 탄중위 민간 위원장은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위원회도 당사자만이 위원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며 당사자 빠진 탄중위를 옹호했다. 한국의 탈핵과 기후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또 다른 민간위원은, 마치 조국이 그랬던 것처럼, SNS를 통해 자신이 준 상처는 없는 듯 자신이 받은 상처와 자괴감에 대해서만 호소했다.

이렇게 포스코 회장부터 ‘기후 전사’들까지 모여 꼼수로 숫자만 맞춘 (국외 감축분을 제외한 순배출량 기준으로만 하면 31%인) 40% 2030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확정됐다. 그리고 2050 탄소중립 안에는 대통령이 전환의 ‘피해자’로 호명한 산업계의 ‘정의로운 전환’이 가장 중요하게 반영됐다. 미래의 운명이 걸린 기후위기 대응 청사진은 엉망이 됐다. 그리고 많은 한국인에게 이런 결정에 기대감을 갖도록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원통하고 분한 감정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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