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이유

[INTERNATIONAL2]

  카이리 어빙 [출처: Brooklyn Nets]

최근 한 기묘한 사건이 세계의 스포츠 뉴스에 연일 보도됐다. 미국프로농구 NBA의 스타 선수 카이리 어빙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한 사건이었다. NBA 사무국이 선수들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진 않는다. 다만 정상적인 경기 진행을 위해 시즌 개막 직전인 10월 19일까지 약 96%의 선수가 백신을 맞았다. 어빙 외에도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나 앤드류 위긴스(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처럼 백신 접종을 거부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마음을 돌려 백신을 접종했다.

반면 어빙은 계속 백신을 거부해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소속 팀인 브루클린 네츠의 연고지인 뉴욕이 백신 미접종자의 체육관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어빙이 계속 백신을 거부하자 네츠 구단은 그를 전력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어빙은 약 412억 원에 달하는 고액 연봉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빙이 왜 백신을 거부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저 백신을 거부할 자유가 있으며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말할 뿐이다.

어빙은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진 유별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백신 거부자 중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좀처럼 백신 접종률이 오르지 않는 미국 시민이자, 특히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큰 집단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게다가 그는 주민의 1/3이 아프리카계일 정도로 흑인 공동체가 발달한 뉴욕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하는 팀에 소속돼 있다.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백신 거부자들은 이미 어빙을 자신의 아이콘으로 추대하고 있다. 이처럼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타의 백신 거부 사건은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백신 거부자들의 등장

2021년 인류는 지구적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백신 개발 외에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난한 나라들에 백신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9월 30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국가의 전체 인구 중 4%만이 백신을 접종했다. 특히 아프리카 54개국 중 절반은 접종률이 2% 미만에 그쳤다. 북한처럼 정치적 고립과 경제 제재 때문에 사실상 모든 국민이 백신 미접종 상태인 국가도 있다.

반면 백신이 충분한 나라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백신을 맞을 수 있음에도 맞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문제다. 이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백신 개발 초창기부터 백신을 맞도록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을 때는, 백신을 맞으면 사람이 소가 된다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1853년 천연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영국 정부는 더욱 조직적인 반대 운동에 직면했다. 오늘날 징병 거부자를 가리키는 ‘양심에 따른 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라는 단어도 그 당시 백신 접종 거부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먼저 사용됐다.

다행히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에 힘입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해소됐다. 종교적인 이유로 백신을 거부한 집단들도 상당수가 태도를 바꾸었다. 수혈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여호와의 증인은 1931년부터 백신 접종 거부 입장을 채택했지만 1952년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백신 제조에 사용되는 돼지 젤라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두 종교의 성직자들은 백신을 접종해도 된다고 판단했고, 백신 제조사들도 종교적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돼지 성분을 포함하지 않는 쪽으로 제조법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백신 거부자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홍역 집단 발생을 계기로 백신 거부자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백신 거부 운동단체가 보수 정치권과 결합해 백신 관련 입법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행히 최근까지 백신 거부자들의 존재와 영향력이 아주 심각한 문제로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빨리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면서, 백신 거부는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 더 이상 주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의 낮은 백신 접종률과 인종

  지난 9월 27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독려하는 연설 뒤 공개적으로 화이자 백신의 부스터샷을 맞았다. [출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공식 트위터(@POTUS)]

백신을 충분히 보유한 나라 중 백신 거부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미국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0월 18일 기준 미국인의 57.0%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66.0%가 1회라도 백신을 접종했다. 이는 백신 접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한국에서는 같은 날 기준 모든 주민의 65.9%가 접종을 완료했고, 78.8%가 1회 접종을 끝냈다. 미국인 중 접종 자격이 있는 12세 이상 인구로 범위를 좁혀야 1회 접종 77.1%, 접종 완료 66.7%로 한국의 전 연령 접종률과 겨우 비슷해진다. 결국 미국인 중 약 23%는 백신이 충분한데도 맞지 않고 있던 것이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에서 주목할 점은 인종에 따른 차이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아시아인, 백인, 히스패닉, 흑인 순으로 접종률이 높다. 보건의료 연구기관인 KFF가 10월 4일 기준 43개 주의 인종별 백신 1회 접종률을 비교한 결과 아시아인이 69%, 백인은 54%, 히스패닉이 51%, 흑인이 46%였다. 이 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백신 개발 초창기인 2020년 11월 말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조사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의 14%만이 백신의 안전성을 믿었고, 18%만이 확실히 예방 접종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어떻게 봐도 흑인이 코로나19 백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흑인의 백신 접종률이 낮은 이유

미국에서 코로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종 집단인 흑인이 가장 낮은 백신 접종률과 거부감을 보인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백신을 거부하는 동기는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이들이 비합리적인 백신 음모론을 신봉하는지, 부작용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접종을 주저하는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주목할 점은 백신 거부 집단으로서의 흑인은 이전의 전형적인 백신 거부자들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의 백신 거부자들과 단체는 주로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나타났고, 공화당이나 극우 정치 세력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흑인의 낮은 백신 접종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백신 거부자들에 대한 접근법과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흑인의 백신 불신에 대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국의 인종주의다. 미국의 보건의료 분야에는 명백히 인종차별적인 관행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때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이슈화됐다. 1932년 미국 공중보건국(USPHS)이 터스키기 연구소와 협력하여 매독의 진행 양상을 관찰하기 위해 고의로 흑인 남성들의 매독을 방치한 사건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미국 정부의 의료 윤리 위반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적십자사는 전국적으로 헌혈을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흑인과 백인의 혈액을 분리해 받았고, 때로 흑인의 헌혈을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다른 어떤 차별보다 흑인 대중과 시민권 운동 단체의 격분을 자아낸 이 혈액 분리 관습은 몇몇 남부 주에서 1970년대 초에야 겨우 폐지됐다.

이와 같은 보건의료 분야의 인종차별은 흑인 사회의 영향력이 있는 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 정부를 오랫동안 불신해 온 흑인 민족주의적 종교 단체인 이슬람 민족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민족의 지도자 루이스 패러칸은 지난해 7월 미국 정부가 백신과 의약품으로 흑인을 기만해 온 역사가 있다며 “그들이 당신에게 백신을 놓지 못하게 하시오”라며 아프리카국가의 지도자들과 미국의 흑인 공동체에 백신 접종 거부를 촉구했다. 패러칸의 주장은 미국 정부가 흑인을 말살하기 위해 백신을 이용한다는 명백히 비합리적인 음모론이지만 지금도 이슬람 민족의 홈페이지와 기관지에서는 백신에 반대하는 내용의 게시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 분야에서 나타난 인종차별의 트라우마가 오늘날 흑인의 낮은 백신 접종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보다는 오늘날의 일상적인 인종차별이 흑인의 의료제도 불신과 더욱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불신의 이유 중 하나는 흑인이 흑인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개 흑인은 자신과 같은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의사가 자신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 인구가 약 11%인데 비해 흑인 의사는 5%에 불과하기 때문에 흑인 환자는 흑인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미국에서 흑인의 질병으로 알려진 낫형적혈구빈혈(sickle cell disease) 환자들이 충분한 의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미국 흑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이외에 지난해 12월 흑인 여성 의사 수잔 무어가 코로나19로 입원한 뒤 자신이 적절한 처방을 받지 못했음을 주장하는 영상을 남기고 사망한 사건은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의료적 인종차별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흑인의 낮은 백신 접종률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점은 의료제도에서의 소외다. 미국에서 인종과 계급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흑인이나 히스패닉처럼 가난한 사람이 많은 인종이 의료제도에서 주변화된 상황은 분명 이들의 낮은 백신 접종률과 관련이 있다. 거주지와 백신 접종소 사이의 먼 거리, 정확한 백신 정보를 제공받기 어려운 생활환경, 백신 접종 이후 휴식을 보장받기 어려운 불안정한 노동 조건, 백신 부작용이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이 의료제도에서 주변화된 집단의 낮은 접종률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지적된다.

하층 계급의 백신 접종을 방해하는 환경적 요인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하다. 한국에서 외국인의 접종률이 낮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10월 21일 기준 등록 외국인은 49.4%, 미등록 외국인은 53.8%가 접종을 완료했다. 같은 날 한국의 주민등록인구 접종 완료율인 67.4%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한국에서도 접종과 휴식 시간을 내기 어려운 노동 환경, 언어와 정보 제공 등의 접근성 부족 등이 낮은 접종률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소외된 집단의 위험을 없애는 방법

결국 특정 집단의 낮은 백신 접종률은 집단 내의 감염 확산으로 연결되고 코로나19의 극복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미국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소외되기 쉬운 집단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접종 계획에 나섰다. 긍정적인 소식은 최근 미국에서 소수인종의 접종률이 향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KFF의 분석에 따르면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국적 데이터와 주별 데이터, 자체 모니터링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집단의 접종률이 상승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국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4월 말과 9월 말 사이에 백인의 접종률은 27%에서 41%로 상승했다. 그동안 흑인은 19%에서 35%로, 히스패닉은 19%에서 42%로 상승해 백인보다 더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는 일정 부분 백신 취약 집단에 대한 정책적 집중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소수인종에 대한 세심한 백신 접종 정책이 성공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인구조사에서 AIAN이라는 집단으로 묶이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알래스카 원주민의 사례다. 흑인과 더불어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의 백신 접종률은 놀랍게도 백인이나 아시아인보다 높다. 전국적인 수준에서 인종별 백신 접종률을 비교할 만한 완전한 통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KFF의 분석에 따르면 이미 지난 4월 아메리카 인디언과 알래스카 원주민의 백신 접종률은 32%로, 16%인 아시아인이나 19%인 백인을 크게 앞섰다. 이들 집단에서 백신 접종 캠페인이 성공한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부족에게 백신 배포와 접종 설득이라는 높은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다. 비슷하게 흑인 보건 담당자들이 직접 흑인 대중에게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것, 히스패닉의 경우 백신과 관련한 언어적 접근성을 향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흔히 지적된다.

흑인 공동체 내에서도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NBA의 전설적인 센터 카림 압둘자바는 10월 6일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백신을 거부해 온 르브론 제임스와 카이리 어빙 같은 흑인 유명 인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압둘자바는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흑인 공동체 사람들은 백인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로 많이 죽어가고 있다”라며 “흑인의 죽음을 부추기는 의견에 공개 지지 발언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덧붙였다. 압둘자바의 행동은 흑인 사회가 배출한 스타가 자신의 팬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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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여기서나 저기서나 백신의 접종이 문제가 되는군요 그저 건강이 제일인데.....늘 건강하시고 따스한 겨울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