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공공운수노조 집회 금지 통보, “근거 없는 마녀사냥”

잇따른 노조 집회 금지…민주노총, 인권위 진정서 제출

오는 27일 공공운수노조 주최 총궐기 집회를 앞두고 정부와 서울시가 감염병을 이유로 또 다시 집회 금지를 통보했다. 이에 노조와 시민사회는 정부가 파업·집회를 할 수밖에 없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집회 공간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서울시가 지난 13일 열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금지한 것과 관련해 22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앞서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공공운수노조가 총궐기 대회를, 화물연대와 철도노조 등도 이번 달에 파업과 연계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라며 집회 자제를 요청했다. 같은 날 서울시도 “중첩 또는 인접 장소 일대 대규모 인원 집결로 확대되고 집회 과정에서 감염병 확산 위험이 우려된다”라며 공공운수노조 총궐기 집회를 금지했다. 경찰은 이미 노조가 집회 신고를 한 87곳에 집회 금지를 통보한 상황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2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노동자를 대거 범죄자로 만들고 진정성 있는 교섭이 아니라 억압과 탄압으로 일관한다면, 비판의 목소리에 벽치고 입막음으로 대처하다 몰락한 역대 정부의 말로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도한 기본권 침해 중단, 고용회복·소득보장 요구 해결하라”

기자회견에는 인권·법률 단체 등이 참여해 집회의 필요성에 대해 힘을 실었다. 랑희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방역 조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원칙은 방역을 이유로 시민들의 일상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며 “방역 당국의 주요 목표는 안전한 집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한국처럼 주민발안제나 정책투표제 같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거의 없는 국가에서는 집회 및 시위를 통한 의사 표출이 간접적 방식으로나마 국민의 민주적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중대한 통로가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집회를 막는 것은 “사회의 민주적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오는 27일 총궐기 요구를 밝히며, 정부가 이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정희 위원장은 “좋은 일자리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예산 편성, 공공병원 인력확충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고속철도 통합과 공공 서비스 의무(PSO) 예산, 화물 안전을 위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기재부의 횡포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라며 “정부는 집회에 대한 과도한 기본권 침해를 중단하고 고용회복, 소득 보장, 안전 관련 법 등 노동자 민중의 시급한 요구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노동자들이 총궐기를 벌이는 이유

공공운수노조 소속 조합원들도 기자회견에 참여해 총궐기에 나서는 이유를 밝혔다.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지부는 해고자 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20일째 단식·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홍종표 한국가스비정규지부 지부장은 “저희가 목숨을 담보로 단식 투쟁을 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규직 전환 때문에 (한국가스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로나19를 이유로 해고된 김계월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은 “회사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포용했다면 해고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절반으로 삭감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고용유지지원금은 코로나19 노동자 마지막 희망이다. 그런데 이를 절반 넘게 삭감한 것은 정부가 ‘위드 코로나’라면서 무급휴직을 강요하는 셈”이라고 질타했다.

김태영 화물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은 “본부는 위드 코로나로 가기 위한 정부의 방역지침을 존중해 바로 투쟁에 돌입하지 않고 충분한 논의와 태도 변화를 위해 대승적 결정을 내린 바 있다”라며 그러나 “오늘로써 그동안 정부의 코로나 방역지침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마치 총파업으로 내모는 것처럼 안전 운임 확대 등 본부의 주요 요구에 묵묵부답이더니, 기다렸다는 듯 불법의 족쇄를 채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감염병 인력 기준에 맞는 인력 투입을 요구했다. 그는 “수도권뿐 아니라 비수도권에서도 여러 합병증이 있는 고령의 환자가 병원에 밀려 들어오면서 병동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라며 “복지부는 지난 9월 28일 발표한 코로나19 병상 간호인력 배치기준 수준에 따라 병원 현장에 우선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기재부 해체를 요구하며 “기재부는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해소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줄 세우기를 통한 공공기관 길들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라며 “코로나19로 가속화된 경제위기 속에서 지금과 같이 비대한 권력으로 통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 기재부를 해체하지 않으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라고 했다.

한편 노조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13차례나 민주노총의 파업, 집회를 문제 삼았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 7월에는 김부겸 총리가 공공운수노조 코로나19 확진자를 민주노총 7.3 전국노동자대회와 연관 지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발표된 역학조사 결과에서는 해당 집회와 확진자가 관련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김부겸 총리가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집회 금지 조치가 이어지면서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시의 11.13 집회 금지 관련 인권위 진정서 제출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서울시의 집회 금지 통보로 전국 80여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임원과 사무처 간부, 가맹 산하 조직 임원에 소환장이 발부되고 있다. 현재 소환자들은 경찰에 출석해 대부분 조사를 마친 상태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5월 1일 세계노동절 대회부터 7.3 전국노동자대회, 10.20 총파업 대회, 지난 13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의 집회 금지를 통보했다.

민주노총은 2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가 차별적으로 집회 금지를 통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지난 13일 전국노동자대회 관련 집회 금지 통보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라는 의견을 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진정서에서 “피진정인 서울시장은 그 어떠한 합리적 이유 없이 진정인(민주노총)과 소속 산업별 노조가 계획한 집회에 대해 금지 통보를 발령한바, 이는 명백히 헌법 제21조가 정한 진정인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특히 “서울시장은 이전부터 지속해서 진정인들이 계획한 집회에 대해 그 어떤 합리적 이유 없이 금지 통보를 반복했다. 이에 진정인은 서울시장이 진정인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적절한 방역 대책의 수립을 촉구하고자 진정에 이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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