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이제그만’ 외쳤다고 2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기고] “법을 지키지 않은 건 우리가 아니라 자본이었다”

어느 늦은 밤, 유흥희 ‘비정규직 이제그만’ 집행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김수억 동지가 구형 5년 6개월을 받았어요. 열일곱 동지들이 몇 개월 형부터 몇 년형까지 22년 6개월이랍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슬픔의 탄식이 분노의 욕설이 된다. “불법? 불법이라고? 누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법을 지키지 않은 건 우리가 아니라 자본이었다. 불법파견 판결에 응하지 않고 여전히 법망을 피해가는 이들을 향해 법을 지키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맞아야하느냐고, 일하다 죽지 않고 싶다고 외친 것이 22년 6개월 형을 받을 일인가.

[출처: 비정규직 이제그만]

사실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동의되지 않았던 투쟁들이었고, 먼발치서만 함께했던 투쟁이어서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내가 동의하지 못했던 건, 그들의 투쟁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당연하고 정당한 투쟁이었지만, 정부와 검찰의 탄압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나는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길을 헤쳐 나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언론은 국가 경제와 코로나 방역만 운운할 뿐이었다. 그들이 일하다 죽거나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을 때, 김수억, 이병훈, 박희용, 이명노, 김남규, 이원석, 신성원, 정민기, 윤성규, 지현민, 오수일, 남기웅, 황호인, 김경학, 이태의, 김선영 동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영정을 들고 그 길을 나아갔을 것이다.

이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자기 몸을 살피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정부와 검찰, 자본이 구형한 22년 6개월의 형을 막아내야 하는 건 우리 모두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이라는 구호가 한낱 목소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모든 비정규직의 한숨을 환호로 만들고 싶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비정규직 이제그만! 동지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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