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부동산 투기 50년사, 서울 두 개를 사들였다

[특집호] 한 해 임대수익 1조5천억, 500조의 땅 부자, 숨겨진 진짜 투기꾼들

차례

① 안전한 곳에 살고 있습니까?
② 무주택자만 ‘빚더미’ 앉게 만드는 ‘갭투기’
③ 부동산 법인, 주택임대업에 뛰어들다
④ 청년들, 부동산 ‘몰수’와 ‘사회화’를 가리키다
⑤ 문 정부 5년, 주거의 질은 나아졌나요?
⑥ 문재인 정부의 ‘주거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⑦ [인터뷰] 문재인 정부도 ‘주택공급 만능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⑧ 인포그래픽 세계 집값 지도
⑨ 재벌의 부동산 투기 50년사, 서울 두 개를 사들였다
⑩ [인터뷰] 모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법
: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
⑪ 워커스 사전: 성장
⑫ 한국의 주거권 운동과 실험들
⑬ [인터뷰] 도시 난민들의 운동, ‘사적소유’를 흔들어야 한다
: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정책팀장
⑭ ‘의료 사회화’처럼 ‘주택 사회화’도 가능하다
⑮ [인터뷰] 빌라왕 잡는 유일한 대안, “주택 사회화와 탈 상품화”
: 이안 클로트워시 베를린 주택 사회화 운동 활동가

50년 전의 부동산 재벌들

1967년, 국세청이 일명 ‘재벌대장’ 명단을 발표했다. 한국의 최고 재산가 50명의 자산 명세를 기재한 자료다. 1966년 말 당시 주식과 현금, 부동산, 기타재산 등을 합쳐 랭킹 1위에 오른 이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다. 본인 자산만 36억 원이다. 현재의 화폐가치로 계산하면 1,009억 원이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장부에 나온 금액은 액면가나 공시가로 기재됐기 때문에 당시 언론은 이 회장의 실제 재산은 1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가치로 약 2,803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사실 이 또한 전 재산의 약 8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친척 및 임직원 약 9명이 나눠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철 회장의 재산 36억 원 중 69%(24억8000만 원)가량은 주식이고, 28%(10억 원)는 현금이다. 부동산은 3.5%(1억 2600만 원)에 불과하다. 당시 재벌들이 소유한 재산의 대부분은 주식이었다. 개인 재산 랭킹 2위의 정재호 전 삼호그룹 회장과 3위의 구인회 LG 창업주 등도 부동산보다 주식을 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의 최대 부동산 재벌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부동산 재벌이 됐을까? 국세청의 ‘재벌대장’에 오른 이들 중 부동산 보유액 1억 원 이상의 13명의 순위를 재집계해 봤다.


부동산 재벌 기업 13개 중 6곳은 부도가 나거나 해체됐다. 살아남은 곳은 7곳이다. 우선 당시 재계 서열 1위였던 동명그룹은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해체됐다. 신군부는 동명그룹을 악덕 기업주로 지목해 그해 부동산과 건물, 주식 등을 몰수했다. 현재 가치로 1조20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신군부의 강압으로 동명그룹이 토지 95만8925평과 주식 700만 주 등을 강제 헌납했다”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강석진 회장의 가족들은 1997년과 2010년 국가를 상대로 토지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그렇게 동명목재는 신군부로부터 재산을 강탈당한 ‘피해 기업’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당시 동명그룹은 동명목재를 비롯해 동명산업, 동명해운, 동명개발, 동명중공업, 동명식품 등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경색에 시달리고 있었다. 급기야 1980년 동명목재는 매달 6억 원의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휴업을 결정했다. 당시 동명목재 노동자 3300여 명은 휴업에 반대하며 농성 투쟁을 벌였고, 기업주의 은닉 재산 공개 및 처분과 경영진 퇴진 등을 요구했다.1 신군부는 동명그룹의 재산을 강제 환원하는 과정에서 ‘동명문화학원’ 하나는 남겨 뒀다. 부산의 동명대학교와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 등을 운영하는 사학 재단이다. 강석진 회장의 아들 강정남 씨는 2004년부터 동명문화학원 이사장과 2011년 동명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2020년 성추행으로 불명예 퇴진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2016년 이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강정남 전 이사장의 부인과 강석진 회장의 사위가 동명문화학원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 자산 3위의 김상두 삼학소주 사장 역시 1973년 기업 부도를 맞았다. 그 시절 삼학소주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대표적 소주 브랜드였다. 잘나가던 기업에 위기가 닥친 건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다. 그해 검찰은 ‘납세증지 위조’ 혐의로 삼학에 대한 수사를 벌였고, 탈세한 3억2000만 원을 추징했다. 결국 삼학은 거액의 세금을 체납해 1973년 부도가 났다. 이 과정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971년 대선 당시 김상두 사장이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해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족 등은 이 같은 소문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 시절 삼성, 삼호와 함께 ‘3대 재벌’로 군림했던 개풍도 박정희 정권 들어 사양길을 걸었다. 종합제철의 건설을 추진하다 좌초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삼호그룹 정재호 회장도 기업 자금을 빼돌려 사채놀이를 하다가 반사회적 기업인으로 낙인찍혀 박정희 정권 시절 몰락했다. 1960년대 국내 최대의 실크 재벌이었던 한국생사 김지태 회장 역시 1970년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그룹 해체를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장을 역임했던 정수장학회는 그가 1958년에 설립한 것으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해체된 동방유량(신동방그룹)은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회사다. 신동방그룹은 1990년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지간을 맺고 승승장구했지만 미도파에 대한 무리한 인수 합병으로 1999년 워크아웃 됐다. 특히 신동방그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 창구 역할을 맡아온 기업으로 유명하다.

살아남은 ‘부동산 재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반면 60년대 부동산 자산가 2위에 올랐던 효성물산 조홍제 회장 일가는 굴지의 대기업을 일궜다. 그의 사업 수완은 ‘혼맥’과 ‘부동산’이었다. 정 · 재계 인사들과 두루 혼맥을 형성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최초로 전직 대통령 3명(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과 혼사로 인연을 맺은 기업이 됐다.2 대를 이어 부동산 투기에도 열을 올렸다.

1988년에는 조 회장 손자 명의의 부동산 투기행위가 적발돼 약 17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2009년에는 효성 3세들의 명의로 회삿돈을 빼돌려 해외 불법 부동산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2016년에는 조 회장의 아들인 조석래 그룹 회장이 1천억 원대의 세금 포탈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효성은 올해 재계 순위 29위의 기업집단이다. 2020년 기준, 효성과 4개 계열사가 소유한 비업무용 투자 부동산은 4,043억여 원에 달한다. 연간 임대수익은 502억여 원이다.


재계 순위 15위의 두산그룹도 탄탄한 혼맥으로 유명하다. 박두병 회장은 전두환 시절 검사장 출신의 인물을 사위로 맞았고, 사돈 집안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 및 5 · 6공화국의 실세 등과 연을 맺었다. OCI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일가와 혼맥으로 얽혀 있다. 최순실 동생의 시댁 식구가 OCI그룹의 핵심 계열사 임원이었고, 박근혜의 외가가 OCI가와 혼인을 맺었다. OCI그룹은 현재 재계 순위 43위로, 1,273억 원 대의 투자부동산을 갖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승승장구했던 신동방그룹 역시 정권 실세들과의 혼인으로 인맥을 만들었다. 신덕균 회장은 이승만 시절 부흥부 장관을 역임한 송인상, 박정희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천병규와 사돈을 맺었다. 신 회장의 손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며느리였다.

당시 재벌의 또 다른 특징은 일본이 남기고 간 적산으로 재산을 쌓았다는 것이다. 당시 헐값의 귀속재산을 불하받고자 하는 자산가들이 넘쳐났고, 자연스레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부패가 일어났다. 두산 박두병 회장은 해방 후 적산 관리 공장이었던 소화기린맥주를 불하받아 두산그룹의 모태인 동양맥주를 설립했다. ‘곰표’ 브랜드로 유명한 대한제분 역시 이한원 사장이 닛폰제분을 인수하며 창립됐다. 하이트진로그룹도 일본 적산이던 조선맥주를 사들여 기업 토대를 만들었다. 이밖에 삼호그룹 정재호 회장은 대전방직공사에 이어 한국 최대 규모의 면방업체였던 조선방직 부산공장과 한국저축은행까지 불하받았다. 김지태 회장은 미군정 밑에서 적산 관리 일을 하다가 조선견직을 인수하며 실크 재벌로 거듭났다.

예나 지금이나 최대 재벌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도 다르지 않다. 이미 60년대 거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던 삼성 이병철 회장은 1960년에 귀속재산인 흥업은행(현 우리은행)을 불하받았다. 당시 흥업은행 귀속주 입찰에는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몰려들었는데, 이 회장은 1 · 2위를 제치고 입찰가격 3위로 낙찰을 받아 당시에도 뒷말이 무성했다. 이 회장은 삼성 일가를 이루기 전부터 부동산 투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일제 식민지 시절, 정미소를 경영하며 모은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해 재산을 불렸다. 그는 당시 경남 일대에만 경작지 200만 평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3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는 “당시 삼성, 현대차 등 한국 굴지의 대기업들이 미군정으로부터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귀속재산을 불하받았다. 또 인수 대금을 15년에 나눠 지급하는 혜택까지 받았다. 이것이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8년까지 이어졌다”라며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땅이 개인 소유가 돼 버렸다. 만약 그때 토지 등을 국유화하고 좀 더 계획적인 발전이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홍진훤]

1970~1980년, 기업은 땅 투기에 돈을 쏟아부었다

1967년 정부가 발표한 ‘재벌대장’은 재벌의 부동산 투기와 탈세 등을 규제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재벌의 위장 투기까지는 밝혀내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 정부가 최초로 추진한 부동산 정책인 ‘부동산투기억제세’ 역시 비슷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정부의 부동산투기억제세는 1가구 1주택을 제외한 부동산 매매에 대해 차익의 50%를 세금으로 흡수토록 하는 정책이었다. 이는 당시 한남대교 건설에 따른 강남의 땅 투기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조치는 서울과 부산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재벌과 자산가들은 도심 인근 임야 등에 대단위 투기를 했다. 당시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투기억제세 도입 후 대도시와 고속도로 주변의 지가 상승률이 연간 최소 20% 이상에 달했다.

정부는 1974년부터 90년대까지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도록 하는 규제 정책을 펼쳤지만4 기업의 부동산 투기 열풍은 이어졌다. 기업은 설비투자보다 토지 매입에 더 많은 돈을 써 토지 자산을 빠르게 불려나갔다. 1971년 694억 원이던 제조업 · 대기업의 토지 자산은 1992년 13조 8337억 원으로 20년간 약 200배 늘었다.


1988년 국정감사에서는 전 해 대기업이 부동산 투기에 쓴 돈이 기업투자 금액보다 최대 13배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롯데는 기업 투자(176억 원)보다 13배 많은 2,300억 원을, 삼성은 기업 투자(685억 원)보다 3배 많은 1,946억 원을, LG는 기업 투자(1,816억 원)보다 1.15배 많은 2,069억 원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이듬해에는 삼성, 롯데 등 재벌 대기업이 85년부터 4년간 총보유 부동산의 70% 이상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삼성은 4년간 총보유 부동산의 74%인 1,980만 평을 매입했다. 토지 매입에 사용한 금액은 약 1조 원으로, 기업 투자 금액보다 약 4배 많았다. 롯데도 기업 투자액보다 5배 많은 6천억 원을 들여 전체 부동산의 88%인 91만 평을 사들였다.


실제로 1986년부터 88년까지 30대 재벌의 총보유 부동산 면적은 9.8% 증가했지만 금액은 3조6032억 원으로 무려 56.8%가 늘었다. 특히 비업무용 부동산의 면적과 금액은 줄어든 반면, 업무용 부동산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당시 언론과 야당 등은 1990년 부동산 규제를 앞두고 기업이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했고, 정부가 이를 묵인하며 투기성 부동산을 업무용으로 둔갑시켜줬다고 비판했다.

1990년에는 노태우 정권이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인 ‘5.8조치’를 시행했다. 이에 48개 대기업은 비업무용 부동산을 의무적으로 매각처분해야 했다. 재벌의 부동산 신규취득과 금융기관의 부동산 담보 취급도 제한됐다. 1990년 당시 전체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비업무용 토지는 6,730만 평에 달했다. 조치 시행 4년 후에는 전체 비업무용 토지 중 73.6%(4955만6천 평)가 매각됐다. 하지만 1995년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재벌의 토지 자산은 오히려 증가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부동산 실명제 시행을 앞두고 재벌 법인뿐 아니라 임원 등 개인 소유 현황까지 공개한 까닭이었다. 당시 재벌은 상당한 토지를 기업 임원 등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법인과 차명 토지를 합산한 결과, 삼성은 1990년보다 약 1조 가까이 늘었고, LG는 무려 2조 원 이상이 늘었다. LG와 롯데의 총 보유 면적은 정부의 ‘5.8조치’ 이후 오히려 늘어난 양상을 보였다.


IMF 경제 위기 때도 설비자산 줄이고 땅 투기했다

1997년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기업들은 설비자산 등의 기업 투자를 줄이고 토지 · 건물 자산을 불렸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46.5%였던 제조업의 토지와 건물 자산은 외환위기 시기인 1997~2000년 동안 51.2%로 늘었다. 반면 설비자산은 53.6%에서 48.8%로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토지 · 건물 자산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9%P늘었고, 설비자산은 9%P 줄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은 “기업의 대외신용도 제고 등을 목적으로 2000년까지 한시적으로 토지 및 비업무용 자산을 자산 재평가 대상으로 확대한 데 주로 기인한다”라고 밝혔다.6


하지만 외환위기 후부터 현재까지 재벌 대기업의 토지 자산은 꾸준히, 그리고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19년 1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자료7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5대 재벌의 토지자산은 12.3조 원에서 24.2조 원으로 약 2배가 늘었다. 연간 1조 원씩 늘어난 셈이다. 심지어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1년 동안 연간 4.4조 원씩, 49조 원이 늘어났다. 지난 23년(1995~2018년)간 5개 재벌 기업의 토지자산은 12조300억 원에서 73조 원으로 약 6배(61조 원) 증가했다.

시세차익이나 임대수익을 노리고 사들인 비업무용 투자부동산 자산도 늘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5대 재벌의 투자부동산은 최대 세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은 147.2%, 롯데는 176.6%, LG는 198.3%, SK는 50.8%, 현대는 19.6%가 증가했다. 투자부동산에 따른 임대수익은 2020년 한 해만 1조5059억 원에 달했다. 전장호 변혁당 서울시당 대표는 “2012년경부터 지난 10년간 5대 재벌이 사들인 부동산 규모가 서울 면적의 두 배”라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가격이 하락했는데, 당시 재벌 기업들이 상당히 많은 부동산을 사들였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이는 기업 공시를 통해 확인 가능한 극히 일부의 수치다. 공시 대상이 아닌 계열사는 부동산 취득 현황조차 확인할 수 없다. 공시된 투자부동산 가격 또한 장부가액, 즉 취득 원가에 기초하고 있다. 장부가액은 공시지가와 크게 차이가 나고, 시세와는 더 큰 차이가 있다. 오세형 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 팀장은 “다트(기업 전자공시) 상에 나와 있지 않은 비상장기업의 경우 부동산 취득 현황을 확인할 수 없고, 공시돼 있다 하더라도 기재된 장부가액은 실거래 가격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돼 공정가치를 표시하고 있지만, 실제 이를 산출하지 않은 기업도 상당하다. 공정가치를 적용하면 삼성그룹의 투자부동산 자산은 9조9458억 원으로 두 배 이상이 늘어난다.

그동안 기업의 토지자료는 꾸준히 비공개처리 돼 왔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정부는 법인과 임원 등의 토지보유 및 투자부동산 현황 등의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김대중 · 노무현 정권부터 토지면적과 공시지가, 장부가액 등 재벌 법인의 토지 현황 일부만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 박근혜 정권 때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해 토지면적과 공시지가도 비공개처리 했다. ‘재벌 개혁’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권 역시 재벌 기업의 토지 보유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율이 최대 6%인데 반해, 법인 보유 부동산의 최고세율은 0.7%에 불과하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며, 재벌의 투기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세형 팀장은 “비거주용 상가나 건물은 주택보다 세율이 낮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도 정당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전장호 대표 역시 “비업무용 부동산은 기업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단순히 투자를 위해 매입한 부동산”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개인 간 거래에만 규제책을 내놓을 뿐, 규모가 훨씬 큰 재벌의 부동산 투기는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변혁당이 추산하는 30대 재벌의 투기 부동산 규모는 약 500조 원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각주>

1. 〈경향신문〉, 숨긴 재산 공개촉구 동명목재 농성 계속, 1980.5.8.
2. 〈아주경제〉, 삼성 기틀 만들 듯 자식 혼사 큰 그림 그린 조홍제 창업주, 2020.11.17.
3. 〈경인일보〉, [이한구의 한국재벌사·49] 삼성-1 사업과의 인연, 2018.3.6
4. 박정희 정권은 1974년 5월 29일, 전두환 정권은 1980년 9월 27일, 노태우 정권은 1990년 5월 8일 기업의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 정책을 발표했다.
5. 법인 소유와 임원 소유 토지 면적 및 금액을 합산한 금액
6.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해설〉, 2007.12
7. 경실련, 5대 재벌 토지자산 증가 및 역대 정부 재벌 토지자료 공개현황 발표 보도자료, 2019.12.17.
8. 기업 공시에서 확인 가능한 상장사를 중심으로 삼성 8개 계열사, 현대차 8개 계열사, SK 10개 계열사, LG 6개 계열사, 롯데 17개 계열사를 중심으로 조사함. 2020년 투자부동산 현황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2021년 조사한 기업 사내유보금 조사 데이터를 반영함. 2010년 데이터 중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화재해상보험, SK디스커버리는 자료 부존재로 2011~2013년 수치를 반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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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율이 최대 6%인데 반해, 법인 보유 부동산의 최고세율은 0.7%에 불과하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며, 재벌의 투기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세형 팀장은 “비거주용 상가나 건물은 주택보다 세율이 낮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도 정당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전장호 대표 역시 “비업무용 부동산은 기업 업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단순히 투자를 위해 매입한 부동산”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개인 간 거래에만 규제책을 내놓을 뿐, 규모가 훨씬 큰 재벌의 부동산 투기는 전혀 규제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변혁당이 추산하는 30대 재벌의 투기 부동산 규모는 약 500조 원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