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성급 호텔’의 비정규직 호텔 만들기

[르포] 세종호텔 정리해고…객실 333개, 정규직 26명으로 운영한다고?

  세종호텔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직장폐쇄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지난달 9일 아침, 세종호텔지부가 세종호텔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은혜진 기자]

아름다운 남산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서울 명동의 4성급 호텔. 이곳 로비에 지난달 농성장이 들어섰다. 호텔이 12명의 직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다. 정리해고자 선정 기준에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수식어를 달아 봤자, 해고는 해고였다. 누가 됐든 정리해고는 이뤄질 것이기에, 그 자체를 거부하기로 한 이들은 호텔에 눌러앉기로 했다. 이미 호텔의 정규직 수는 2011년에서 10분의 1 가까이 줄어든 상태였고, 앞으로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육아휴직 중인 두 명을 제외한 10명의 노동자가 지난 12월 10일자로 먼저 해고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4번의 전환 배치로 총지배인 말고는 다 해봤다는 노동자, 20년 동안 사원 신분인 노동자도 있다. 이번 해고로 호텔에는 정규직이 20여 명밖에 남지 않게 됐다. 회사는 어떻게 20여 명의 정규직으로 객실 333개 규모의 호텔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이곳 노동자들은 어째서 ‘세종호텔’이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룸‘메이드’로의 전환 배치

12월인데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던 호텔 로비가 환해졌다. 지난달 2일 농성장에 들어선 크리스마스 장식들 때문이다. 한때 손님들이 식사하던 레스토랑의 식탁보 위에는 농성을 위한 각종 물품이 올라갔다. 해고 날짜를 하루 앞둔 9일이었지만 김란희 씨는 농성장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30년 동안 전환 배치를 14번이나 당해 “이제 총지배인만 하면 되겠다”라고 놀림을 받는 노동자다.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 [출처: 은혜진 기자]

세종호텔에 복수노조가 들어선 건 2011년이었다. 당시 세종호텔노조(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지부) 소속이던 란희 씨는 “노조를 바꿔야 신상에 좋을 것”이라는 말을 무시하다가 미운털이 박혔다. 높은 직급의 남성 직원이 마음에 안 드는 여성 직원에게 “룸메이드로 보내버린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던 때였다. 임신한 웨이트리스는 손님을 대면해선 안 되고, 출산 후 전환 배치를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인사과에 있던 란희 씨는 룸메이드가 됐다. 호텔 객실 정리 업무를 담당하는 룸메이드는 여성이 다수인 직종으로, 다른 부서와 달리 직급도 주지 않았다. 세종호텔은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하면 고통스러워할지 너무나 잘 알았다.

“룸메이드 유니폼을 입는 날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룸메이드가 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로 얘기됐었던 시기예요. 다른 직원과 밥도 안 먹고 그랬어요. 초반에는 제가 계장 직급을 달고 있다 보니 같은 룸메이드 사이에서도 어울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룸메이드가 겪는 부당한 업무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허드렛일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었죠.”


1993년 1월 10일 실습생으로 입사한 그는 비서실 등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2012년, 파업에서 복귀한 날 사무실 자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소속은 비서실이었지만, 회사는 그에게 객실 예약 업무를 지시했다. 그 후 경리과, 인사과 등을 전전하다가, 2020년 회사가 객실 정비 업무 전체를 용역 업체에 맡기면서 설거지 등의 조리 보조 업무를 맡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식음 사업장까지 폐지되며 유급 휴직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에는 ‘해고예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두 노동조합 중 선택지는 하나

2011년 복수노조가 시행되면서 세종호텔노조의 조합원 수는 4분의 1 가까이 줄었다. 그해 10월, 노조가 상급 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할 당시만 해도 조합원 수는 약 200명이었다. 그러나 파업 투쟁을 벌인 2012년에는 조합원이 74명으로 줄었다. 파업에는 50여 명이 참여했는데, 복귀 후 남은 조합원은 42명에 불과했다. 조합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종호텔 30년 차 조리사인 박광순 씨는 그 당시 입사한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입사한 계약직 직원들한테 물었더니, 회사 쪽에서 세종호텔노조에 가입할 생각이면 출근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세종호텔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조합원도 남아 있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죠.”


박광순 씨도 부당전보를 경험한 적이 있다. 출장 웨딩 사업이 잘되자 회사는 조리부서 안에 조리지원 부서를 신설해 주방의 베테랑 직원들을 보냈다. 하지만 기존의 업무는 사라지지 않았다. 고기 불판을 닦는 일부터 호텔의 기물들을 차에 올리고 내리는 일까지 추가로 해야 했다. 조리사인 고진수 세종호텔지부 지부장도 3년 가까이 그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 지부장의 경우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진급하지 못해 아직도 가장 낮은 직급인 ‘사원’ 신분이다.

해고자가 키워야 할 두 명의 아이

10명에 대한 해고를 몇 시간 앞둔 9일 저녁, 세종호텔 앞에 160여 명이 모였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직장폐쇄를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농성과 파업 8일 차 밤이 깊어지자 ‘SEJONG(세종)’이라고 적힌 호텔 간판에도 불이 켜졌다. 불빛 아래에서 이치원(가명) 씨는 1년 뒤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는 오는 2월 2일로 해고자가 된다.

“43살 늦은 나이에 결혼해 낳은 우리 첫째, 지금은 태어나지 않은 우리 둘째. 정말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태어나 줘서 고맙다. 그리고 아빠가 능력이 모자라서 미안하구나. (…) 맞벌이하면서 열심히 일하면 나도 중산층 비슷하게나마 되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세종호텔이 통보한 해고 날짜를 하루 앞두고 진행된 집중 문화제에서 한 조합원이 발언 중 눈시울을 붉혔다. [출처: 은혜진 기자]

치원 씨는 1999년 웨이터로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투숙객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컨시어지로도 일했던 그는 2014년부터 객실관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도 란희 씨처럼 전체 객실 정비 업무가 완전히 외주화된 2020년 12월부로 전환 배치됐다. 객실관리팀이 폐지되며 그는 총무팀 안에 신설된 환경관리부서에 들어갔다. 이곳은 폐기물 관리와 건물 청소 업무를 하는 곳이다. 치원 씨의 기존 부서는 사라졌지만, 업무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두 가지 일을 겸했다.

정규직 줄이기

그동안 세종호텔은 외주화와 희망퇴직을 거듭해 왔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남은 이들은 란희 씨와 치원 씨처럼 다른 부서로 보냈다. 먼저 지난 2016년, 세종호텔은 주차장과 객실 일부인 3개 층을 외주화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객실 전체를, 올해 9월에는 시설부를 모두 외주화했다. 급기야 10월에는 식음 사업장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세종호텔은 2011년까지만 해도 전체 직원 238명 중 정규직이 90%에 달했던 곳이다. 구조조정을 해오던 회사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지난해 50여 명, 올해 25명에게 희망퇴직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난 11월, 15명의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이들은 모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 이 중 3명은 해고를 통보받은 당일 희망퇴직 했다.

2021년 12월 기준, 세종호텔에는 직접고용 노동자 26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주차장, 시설, 룸메이드 노동자를 포함하면 외주화된 노동자는 약 20명이다. 이를 합치면 약 40여 명인데, 지부는 호텔 규모상 이 인원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호텔이 지부에 밝힌 바로는 호텔 영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인데 왜 무리하게 직원 수를 줄이는 것일까.

다음, 비정규직 늘리기

지부는 세종호텔이 몇 달 전 폐지한 식음 사업장까지 외주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폐지한 상태지만, 호텔 등급 기준을 고려하면 식음 사업장을 아예 없애기는 어렵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식음 사업장을 폐지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뒤 용역업체를 통해 운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세종호텔과 관련된 용역회사 중에는 식음 사업장을 당장 운영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세종에스엠에스란 이름의 이 회사는 호텔 경영 자문 및 전문음식점업을 하는 곳이다. 이 회사에는 세종호텔과 관련된 인물이 임원으로 올라있다. 우선 세종호텔 전 회장이기도 한 주명건 씨는 (주)세종에스엠에스의 이사인데, 최대 주주로 2013년 감사보고서에 적혀 있다. 그리고 지난 6년간 세종호텔의 대표이사였던 오세인 씨는 감사를 맡고 있다.

세종호텔의 외주화의 꿈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지난 2003년, 호텔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형태로 변경하면서, 용역회사인 ‘세종호텔(주)’로 노동자의 전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지난 2011년에도 사측이 ‘세종서비스(주)’를 만들어 외주화를 시도한다고 알려져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세종투자개발은 세종대학교 법인인 대양학원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지부는 정리해고의 책임으로 대양학원을 비롯해 전 이사장인 주명건 씨를 지목하고 있다. 주명건 씨는 세종대학교 임원 신분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주 씨는 2004년 교육부 감사에서 113억 원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2009년 그는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했는데 이후 부당전보 등 노동자 탄압 논란이 계속됐다. 그러다 2013년, 주명건 씨는 학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양학원 이사로 선임됐다. 그리고 올해 2월 교육부는 종합감사에 따른 후속 처분으로 주 전 이사장에게 학교 재산을 소홀히 관리한 책임을 물어 임원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한편 현재 세종호텔의 주차장, 시설, 객실을 운영 중인 ‘(주)케이에이치알’의 대표는 세종대학교 교수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해 고진수 지부장은 “세종호텔은 2000년대에도 용역회사를 만들어 직접 고용된 직원들의 고용관계를 옮기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 이후 2010년경 주명건 씨가 세종호텔의 회장으로 복귀하면서부터 외주화를 차근차근 진행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룸메이드가 현재 7명밖에 없는데,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45명은 있어야 한다. 그 밖에도 인원을 줄인 부서를 비롯해 식음 사업까지 외주화하려면 100여 명을 운영하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라며 “세종호텔 외주화는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세종호텔이 통보한 해고 날짜를 하루 앞두고, 세종호텔 창문에 "해고금지” “해고는 살인" 등이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펼쳐졌다. [출처: 은혜진 기자]

현재 지부는 식음 사업장 영업 정상화를 통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지부는 법적 대응에도 나설 계획이다. 정리해고가 민주노총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며, 해고 무효 확인 소송도 준비 중이다. 사건을 담당할 송아름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는 “지부는 지난 9월 초에 과반 노조 지위를 획득했다. 하지만 사측은 구조조정 협의체에 지부가 참여를 거부했음에도 그곳에서 정리해고와 관련한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에 노조가 강력히 항의하던 중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가 있었는데, 정리해고 대상자 15명 모두 노조의 조합원들이었다”라며 “회사는 경영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주장하나 전후 경위로 봤을 때 그 배경에는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있었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워커스》는 민주노총 조합원 표적 해고 주장에 대한 입장과 식음 사업장 자회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 사측에 확인하려 했으나 세종호텔 관계자는 “기사를 실을 때 노조와 회사 측 주장을 반씩 싣지 않으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라고 밝혀 관련 답변은 받지 못했다.

다만 사측 관계자는 “세종호텔뿐 아니라 다른 호텔도 5성급이 아닌 이상 식당 사업은 직접 운영을 하지 않는다”라며 “코로나19 상황이 아닐 때도 식당 사업은 10여 년간 적자가 났다. 그래서 객실에서 번 수입으로 부대 사업장을 근근이 유지했는데, 코로나 이후 80%였던 객실 점유율이 17%로 떨어졌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세종호텔은 대양학원에 1년에 9억 원의 임대료를 내고 운영하고 있다. 정상적 호텔이랑은 다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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