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2021년, 칠레의 좌파 정권 탄생기

[INTERNATIONAL1]

2021년 12월 19일, 2차 선거에서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가 칠레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로써 콘세르타시온(Concertación)에서 누에바 마요리아(Nueva Mayoría)까지 약 30년간 칠레 정치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였던 중도 좌파 연합이 퇴장하고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의 사회주의 정부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쿠데타로 무너진 지 반세기만이다.

많은 사람이 이번 선거 결과에 주목했다. 한편에선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분홍빛 물결에 걸었던 기대가 되살아났고, 다른 한편에선 주요 리튬 생산국인 칠레의 정치 지형 변화가 자원 개발 정책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그러나 보리치가 서 있는 토대는 분홍빛 물결을 이루었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과는 다르다. 또한 자원 민족주의 형태로 나타난 채굴주의가 그동안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이 구축한 반신자유주의의 내용이었다면, 보리치가 당선된 배경도, 이후 그가 이끌 칠레도 과거가 소환될 무대는 아니다. 이 글에서는 칠레 좌파의 최근 10년을 돌이켜보며 보리치 집권의 의미를 살펴본다.

2011년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 신좌파의 탄생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자 [출처: 가브리엘 보리치 트위터]

이번 대선은 2019년 대중 시위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대중 시위는 헌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요구로 번안됐고, 2020년 10월 25일 헌법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로 이어졌다. 국민 투표 결과에 따라 지난해 5월 15일과 16일 제헌 의회 선거가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옴짝달싹 못 할 때, 칠레는 역사상 가장 높은 파고를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 대선은 그 파고가 찍은 하나의 점이었다. 그러나 2019년 한 무리의 젊은이가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한 작은 저항의 배경에는 그 토대가 존재했다. 2011년 학생 운동이었다.

2010년 칠레에는 민주화 이행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도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현재 칠레 대통령인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의 첫 번째 집권이었다. 이듬해인 2011년 센트랄대학
(Universidad Central)은 부동산 기업의 대학 운영을 허용하도록 정관을 바꾸려 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 시위는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칠레학생연합(Confederación de Estudiantes de Chile)은 시위를 주도하면서, 자율성을 보장하되 국가가 책임지는 양질의 무상교육을 요구했다. 요구안이 명확해짐과 동시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했고, 8월이 되자 50만 명이 운집하는 대중 시위가 됐다.

피노체트 체제가 만든 교육 정책을 고수해 온 칠레에서, 초·중·고를 막론하고 교육을 책임지는 당사자는 국가가 아니다. 초·중등 교육은 각 지방 자치 단체에서 관할하는 탓에 교육 재정과 교육의 질적 격차가 컸다. 상류층은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사립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았고, 중간층은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교육을 받았으며, 빈곤층은 비용 부담이 없는 대신 교육의 질이 형편없는 공립학교에 다녔다. 대학 교육은 12개 국립대학을 제외하고는 설립이 자유로운 사립대학에 맡겨져 양질의 교육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사회 계층의 격차는 교육 서비스의 불평등을 낳았고, 교육 서비스의 불평등은 계층 상승의 문을 좁혔다.

2011년의 학생 운동은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어 낸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와, 이를 계승한 콘세르타시온에 대한 전 사회적 저항 운동이 확대됐다. 이로써 민주화 이행 20년 만에 체제 전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로써는 가시적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대중 시위가 소멸한 듯 보였지만, 그해 칠레는 아주 중요한 씨앗을 남겼다. 학생 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2013년 학생 운동 지도자들의 원내 진출: 좌파 정당의 조직화

카밀라 바예호(Camila Vallejo), 조지오 잭슨(Giorgio Jackson), 카롤 카리올라(Karol Cariola) 그리고 보리치까지. 4명의 학생 운동 지도자들은 2013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이들은 2011년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칠레 교육 시스템을 시장화한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정신을 공유하며 새로운 정치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 그러나 이들의 원내 진출은 세대론만이 아니라 정당론의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2011년 대중 시위 당시 단숨에 칠레를 휘어잡았던 카밀라 바예호는 칠레공산당청년회(Juventudes Comunistas de Chile, JJCC) 소속으로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시작했다. 2010년에 칠레대학생연맹(Federación de Estudiantes de la Universidad de Chile) 대표로 선출된 후 2011년 학생 운동을 이끌었다. 2013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공산당이 중도 좌파 정당들과 연합을 구성하면서, 카밀라 바예호는 미첼 바첼레트와 손을 잡았고 그해 두 여성은 각각 하원 의원과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조지오 잭슨은 다른 학생 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2012년 민주혁명당(Revolución Democrática)을 창당해, 2011년 대중 시위의 경험을 조직화했다. 그 역시 2013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017년 ‘확대전선’(Frente Amplio), 2020년 ‘존엄한 칠레’(Chile Digno), 2021년 ‘존엄을 인준한다’(Apruebo Dignidad)로 이어지는 좌파 연합을 구성하는 핵심 인물이 됐다.

칠레대학에 입학한 보리치는 이탈리아 자율주의 노선의 학생 운동 단체였던 자율좌파(Izquierda Autónoma)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12월에는 카밀라 바예호와 경쟁한 끝에 칠레대학생연맹 대표로 선출됐다. 그해 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카밀라 바예호는 칠레공산당청년회 소속으로 재출마했지만, 사그라지는 대중 시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학생들로 하여금 보리치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후 보리치는 2013년 무소속으로 칠레 최남단의 마가야네스(Magallanes)주와 남극 지역을 대표하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의 고향인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는 마가야네스주의 주도지만, 육로로 다른 지역을 이동할 수 없는 고립된 곳이기도 하다. 보리치는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2018년 좌파 운동의 수렴점이 될 정당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 해방을 이념적 지향으로 삼는 ‘사회적 수렴점’(Convergencia social)을 창당했다.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의 소속 정당이 됐지만, ‘사회적 수렴점’은 마감일 직전에야 후보 등록에 필요한 당원 수를 겨우 충족시킬 정도의 소수 정당이었다.

원내 진출에 성공한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기존 정당에 흡수되거나 홀로 싸우다가 길을 잃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지지기반이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그 수가 아무리 적다 해도 조직의 형태를 얻는 순간 지속성은 강해지고, 싹을 틔울 때까지 버틸 힘을 얻는다.

2017년 ‘중도’의 해체: 좌파와 우파의 양극화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만든 새로운 정당과 혁신된 정당 연합은 공고했던 콘세르타시온 체제를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칠레의 중도 좌파 연합인 콘세르타시온은, 우파 연합인 알리안사(Alianza)와 양자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원내 진출에 성공한 4명의 신진 정치인들은 이 구도를 내부에서부터 흔드는 힘이었다.

콘세르타시온은 카밀라 바예호를 비롯해 신좌파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다수’라는 의미의 누에바마요리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중도 좌파 연합의 입장에선 잘못된 한 수가 됐다. 정당 연합의 성격이 점점 왼쪽으로 기울어지자 연합 내 보수파였던 기독교민주당(Partido Demócrata Cristiano)이 2016년경부터 내분을 겪으며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7년 대선과 총선에서 누에바마요리아는 참패하고 피녜가 정권이 다시 들어섰다. 미첼 바첼레트의 임기 종료와 함께 2018년 누에바마요리아도 함께 해체됐다.

중도 좌파 연합이 점차 붕괴해 가던 그때, 한편에선 조지오 잭슨의 민주혁명당과 당시 보리치가 이끌던 자율좌파가 누에바마요리아와는 차별화된 좌파 연합, 확대전선을 결성해나갔다. 우루과이의 확대전선과 에스파냐의 포데모스(Podemos) 등 좌파 연합 세력 구축에 영감을 받은 여러 좌파 정당, 누에바마요리아 내 좌파 세력, 원외 운동 세력 등은 2017년 1월 공식적으로 연합의 출범을 알리고, 그해 대선과 총선에 도전했다.

2017년 선거는 좌파 세력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결집하는 과정에서 내파되고 있던 중도 우파가 거머쥔 승리였다. 이후 2019년 대중 시위는 중도 우파 정권에 대한 저항을 넘어 제헌 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체제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21년 제헌 의회 선거와 대선: 선거로 성장하는 좌파

지난해 5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진행된 제헌 의회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다시 한번 연합을 구성하며 정치적 정체성을 다져나갔다. 중도파와 좌파 정당들은 일시적으로 연합해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대신 과거 콘세르타시온과 누에바마요리아를 구성했던 중도 좌파 세력이 또다시 결집했다. 그러나 이들은 겨우 의석의 14%를 확보하며 중도 좌파의 몰락을 확인시켰다. 반면 확대전선을 비롯한 좌파 세력은 ‘존엄을 인준한다’와 ‘민중의 후보들’(La Lista del Pueblo) 두 개의 연합 출범으로 의석의 35%를 확보하여 입지를 다졌다. 여권의 중도 우파 연합인 ‘칠레를 위해 나가자’(Vamos por Chile)는 의석의 20%를 확보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당선자 [출처: 가브리엘 보리치 트위터]

지난해 대선은 제헌 의회 선거를 통해 전열을 모두 가다듬은 좌파 진영이 과거 중도 좌파의 자리를 대신해 우파와 경쟁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47.33%의 투표율을 기록한 1차 선거에서 보리치는 25.83%의 득표율로 2위에 머물렀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득표율 27.91%로 보리치를 살짝 앞섰다.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3명의 후보들은 골고루 약 12%의 득표율을 보였다. 1차 선거 결과는 중도에서 좌와 우로 각기 제 색깔을 찾아가는 정치 지형의 변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55.64%의 투표율을 보인 2차 선거에서 보리치는 55.87%의 득표율을 올리며, 44.13%를 기록한 카스트를 따돌리고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1차 선거보다 8%포인트 증가한 투표율, 중도파 없이 좌파와 우파의 대결에서 나타난 10%포인트 차이의 득표율은 좌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기보다 우파를 허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의지로 읽힌다.

이러한 의지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장한 중간층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2006년 40%대였던 중간층은 2017년 60%대로 증가했다. 중간층의 증가는 취약계층과 빈곤층의 감소에 따른 결과였다. 이러한 경제 성장은 그동안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와 콘세르타시온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던 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뒷받침해준 신자유주의 체제는, 역시 경제 성장으로 증가한 중간층을 점점 취약하게 만들었다. 2011년 학생 운동이 전방위적 대중 시위로 확산한 데에는 중간층이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에 비해 턱없이 불만족스러운 교육 서비스가 제공된 탓이 크다. 중간층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시장화 사회에서 비용 부담을 떠맡으면서도 민주주의가 보장해야 할 성장 가능성은 보장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칠레 중간층은 명백히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의 존속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가 칠레 좌파 진영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와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거의 장은 마무리되고, 활짝 열린 정치적 장

헌법 개정을 둘러싼 국민 투표와 제헌 의회 구성 과정은 피노체트 체제로부터 시작된 칠레의 ‘현재’를 과거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헌법 개정이라는 최고심급의 변화가 경제, 사회, 정치의 변화를 담보할 수 있냐는 의구심은 떨쳐내기 어려웠다. 현 체제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의 역학이 달라지지 않는 한 헌법 개정이 필연적으로 체제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헌법 개정은 체제 전환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가장 달콤한 타협일 수 있다. 그러나 칠레는 이번 대선에서 보리치를 선택함으로써 체제 전환을 향한 또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제 헌법 개정의 빠듯한 일정이 시작된다. 155명으로 이루어진 제헌 의회는 10월 개회했다. 올해 2월 새로운 헌법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헌법 개정 국민 참여 플랫폼에는 1,200개 이상의 개정안이 등록됐다.

2019년 이후 칠레는 역사상 경험한 적 없는, 대부분의 사회가 누려본 적 없는 정치적 장을 열었다. 10년 전 보리치가 수많은 동지들과 빼꼼히 벌려두었던 틈이 거센 대중 시위로 활짝 열렸다. 이제 그는 활짝 열린 정치적 장에 초대받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온전히 환대받는 손님이 아니다. 국민의 절반가량은 투표하지 않았고, 25%는 카스트에 투표해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를 고수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선거를 거치며 좌파 정당이 강하게 결속했지만, 그의 소속 정당은 조직력이 부족한 신생 정당이다. ‘존엄을 인준한다’를 결성하고 있는 좌파의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리튬을 두고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이념적 지향도 갈린다. 자원의 국유화, 원주민 권리 보장, 법인격으로서 자연권 등 좌파의 정체성을 보여줬던 모토들은 리튬이라는 정황 속에서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좌파 운동들이 하나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인가? 칠레 좌파가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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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중간층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시장화 사회에서 비용 부담을 떠맡으면서도 민주주의가 보장해야 할 성장 가능성은 보장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칠레 중간층은 명백히 피토체트식 신자유주의의 존속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가 칠레 좌파 진영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와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