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골탑 63빌딩에서 노동조합 현판식을 꼭 하고 싶어요”

[르포] 단체교섭 요구하며 1년 동안 투쟁해 온 한화생명 보험설계노동자들 이야기

63빌딩을 ‘피골탑’이라고 불러요

1월 11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황금색으로 빛나는 높은 건물이 있다. 1985년 대한생명의 모기업인 신동아그룹이 완공해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최고층 빌딩’ 타이틀을 유지했던 63빌딩이다. 첫 이름은 ‘대한생명 63빌딩’이었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등으로 신동아그룹이 해체된 후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2002년) ‘한화63시티’를 거쳐 현재는 ‘63스퀘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63빌딩이라고 부른다. 전망대와 레스토랑, 아쿠리아리움 등 관광·여가 공간으로 알려진 63빌딩 내부 공간의 90% 이상은 보험회사인 한화생명과 한화생명의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본사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보험 상품 개발과 자산운용 업무 등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이곳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63빌딩 앞에는 또 하나의 사무실이 있다. 한화생명지회(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소속) 임시사무실로, 한화생명 보험을 판매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보험설계사(FP, 파이낸셜 플래너 financial planner)들의 노동조합 사무실이자 천막 농성장이다. 농성장 옆에는 노동자들이 집에서 챙겨온 김치와 햇반 등이 놓인 간이 주방이 있다. 영하 10도의 한파 덕분에 냉장고가 없어도 상할 염려는 없겠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 천막 농성장에서 한화생명 보험설계 여성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조명과 난방을 발전기에 의지하며 315일째 사측에 성실 교섭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천막농성 315일 차인 1월 11일, 한화생명 본사 앞 한화생명지회 농성장 [출처: 연정]

“우리 한화보험 설계사들은 63빌딩을 ‘피골탑’이라고 불러요. 우리 2만 명의 설계사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피눈물로 만든 빌딩이라는 뜻이에요. 돈은 우리가 다 벌어다 주는데…. 대한생명에서 한화생명으로 넘어온 뒤 ‘한화’라는 브랜드 사용료만 480억 원을 주고 있어요.” (김미정, 한화생명 10년 차 보험설계 노동자, 한화생명지회 사무국장)


노조하기 딱 좋은 나이

“우리가 뭘 알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예상하고 온 것도 아니었어요. 한 3~4일 있다가 도장 찍어주면 가려고 캠핑 오는 기분으로 왔다가 지금까지 눌러살고 있어요. 두 달 만에 집에 갔더니 (화초가) 썩거나 마르거나 물이 된 것도 있고, 화석이 된 것도 있더라고요.”


천막 농성장에서 만난 한화생명지회 김미정 사무국장은 지난해 3월 3일, 꽃샘추위 속에 깔판도 이불도 없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집에 갔다고 했다. 장기간의 부재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래도 다시 짐을 싸서 농성장에 와야 했다.

“제가 검은 호랑이 임인년 생이에요. 육십갑자 한 바퀴를 다 돌았어요. 옛날에는 환갑이 되면 잔치를 했잖아요. 어디가 아프거나 죽어도 억울한 나이가 아닌 거예요. 근데 건강하잖아요. 노조하기 딱 좋은 나이예요. 초보 노동조합이 천막농성도 하고 보궐선거도 하고 1년 동안 겪을 수 있는 건 다 겪었어요.” (김미정)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 (왼쪽부터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 한화생명지회 김미정 사무국장, 김갑선 수석부지회장) [출처: 연정]

김미정 씨와 함께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김갑선 수석부지회장은 작년에 환갑을 맞이했다. 김갑선 씨는 처음에 보안 용역들이 화장실도 못 가게 해 사흘 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했다. 지금도 용역들이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화장실까지 따라온다. “실컷 싸우고 온나”하며 응원해주는 가족들 덕분에 농성을 1년 가까이 이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아이들 교육과 가정 생계를 이어온 대가가 천막농성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다행인 거다. 한화생명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세월이 김미정 사무국장은 10년, 김갑선 수석부지회장은 18년이다.

지난해 1월 21일 노동조합을 만들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천막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라는 것이다. 설계 노동자들의 고용과 처우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지 말고, 노동자 당사자와 소통하고 협의하라는 것이다.

순식간에 최대 인원 3천 명을 넘어버렸어요

“작년에 1월 연휴 때 쉬고 오니까 우리 영업소통센터가 난리가 난 거예요. 한화생명이 우리한테 알리지도 않고 동의도 구하지 않고 보험 판매 수수료를 확 내려버렸어요. 소통센터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지역별 대표자들을 구성해서 회사에 따지자고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온라인 단체 모임방이 순식간에 최대 인원 3천 명을 넘어버렸어요. 우리는 줌(화상회의 프로그램, zoom)으로 노조 설립 총회를 했어요. 마스크를 끼고 만났기 때문에 서로 눈밖에 몰라요. 앞으로 마스크를 벗으면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목소리를 듣고 간파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2만 명의 한화생명 보험설계사 중 2천5백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한화생명이 2021년 4월 1일 자로 제판 분리(보험상품 제조와 판매의 분리)를 통해 설계노동자들을 GA(General Agency, 보험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보험대리점) 형태의 자회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보내겠다고 일방적인 발표를 한 것이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보험·산재보험 의무가입 시행을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수료 삭감 문제도 발생했다. 김미정 씨는 ‘제판 분리’가 삼성전자 제품만 판매하던 삼성전자 대리점이 모든 회사 제품을 판매하는 하이마트로 바뀐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를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 의도로 판단한 정규직 노동조합이 파업 등 제판 분리 반대 투쟁을 시작하고 설계사 노동자들도 함께했지만, 결국 막아내지는 못했다.

  한화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퇴근선전전을 하고 있는 보험설계사지부와 한화생명지회 간부들 [출처: 연정]

“우리가 정말 속상했던 건 우리가 전혀 동의하지 않았는데, 물적 분할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 설계사 1만 9천 명을 강제로 자회사로 이직을 시켰다는 거예요. 회사는 그런 것들을 사전에 우리하고 논의하지 않았어요. 마음대로 그쪽에서 자르고 이쪽에다 다시 집어넣은 거예요. 사과를 요구해도 하지 않고, ‘수수료 변경 동의서’만 쓰라고 강요했어요.” (김미정)


“원수사(원래 전속 회사)였다가 대리점을 만든 거잖아요. 그러면 대리점답게 생명보험이랑 손해보험을 다 판매할 수 있게 해야 하잖아요. 근데 한화 생명보험만 팔게 하는 거예요. 시책비(보험 판매 과정에서 계약 유치 시 지급받는 인센티브의 일종)가 똑같이 100%가 나와도 한화손해보험만 100% 주고 다른 손해보험은 50%만 줘요. 나머지 50%는 회사가 떼먹으면서 시책비가 많은 한화 것만 팔라고 하는 거잖아요.” (김갑선)


불공정행위와 일감 몰아주기, 인정해도 달라진 것은 없어

김갑선 씨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명백한 불공정행위와 일감 몰아주기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배진교 국회의원(정의당 소속)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 과정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한화생명이 설계사들에 대한 수수료·위촉 등을 본인 동이 없이 임의로 변경했다며 불공정 계약과 일감 몰아주기, 시책비 착복 등에 대한 조사와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며 조사와 시정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 해가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배진교 의원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구교도 사장 등에 대한 증인 출석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구교도 사장도, 여승주 사장(한화생명)도 끝내 출석하지 않았다. 한화생명지회는 여전히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고, 미정 씨도 갑선 씨도 집과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작년에 보험설계사 동의 없이 위촉계약서·부속 약정서를 변경하는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랑 금융위원회에 신고도 했어요. 국회에까지 거론된 문제인데, 조사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가 없는 거고, 돈이 없으면 죄를 안 지어도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우리는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갑선 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제판 분리 이후 지난 1년간 한화생명 보험 설계사들의 일터는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천 명 이상의 설계사가 한화생명을 떠났고, 이로 인해 전년 대비 매출은 10% 이상 감소했다. 63빌딩을 누가 만들었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한화생명을 사랑하니까 고쳐 쓰려고요

“이런 투쟁 성공 사례가 있어요. 투쟁하면서 김미정은 매일 만 보를 걷고, 부산의 ○○○는 관절염이 나았어요. 그리고 김갑선은 폭포수 밑에 안 가고도 득음을 했다.”


김미정 씨의 넉살스러운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다. 웃으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는 게 작은 위안이 된다. 보험설계사를 존중하지 않고 모든 걸 마음대로 하는 회사가 야속하지만, 한화생명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설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선택을 한다.

“저는 대한생명을 굉장히 사랑했어요. 지금도 한화생명을 사랑하니까 안 떠나고 있겠죠. 그래서 한화생명을 고쳐 쓰려고요. 지금까지는 보험설계사들을 무시하고 수수료고 뭐고 모든 걸 자기들 마음대로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노조를 만들어서 교섭하는 순간, 이제 회사는 마음대로 못 한다. 임금이고 복지고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회사를 고치는 거예요.” (김갑선)


  한화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출처: 연정]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데, 회사는 고쳐 쓸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지회의 요구는 소박하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교섭 자리에서 고용과 수수료 문제 등 설계노동자에 관한 내용을 협의하자는 것이다. 한화생명지회는 합법적인 노동조합이다. 한화생명지회가 소속된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는 2020년 12월 31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받았다. 2000년에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라는 이름으로 첫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20년 만에 보험설계사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조합의 합법적이며 정당한 요구를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1년 가까이 외면해왔다. 회사는 한화생명지회와 같은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 소속의 정규직 노동조합(한화생명지부)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요구를 핑계로 설계사 노동조합인 한화생명지회와의 교섭을 거부해 왔다. 사무금융노조는 노동조건과 임금체계 등이 정규직 노동조합과 다른 한화생명지회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했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기각)와 중앙노동위원회(각하)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최근 사무금융노조의 교섭 요구 사실을 홈페이지에 공고하면서, 한화생명지회가 교섭 당사자로 참여하는 단체교섭이 곧 진행될 예정이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이 거리에서 1년을 싸워야 보장받을 일인가? 참으로 가혹하다.

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날 농성장에 와있던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은 한화생명지회가 “보험설계사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신고필증 교부를 통한 노동조합법상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 이후 첫 번째 단체협상 사례”로 굉장히 의미 있는 만큼, 보험회사들의 저항도 셀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1월 21일 노동조합 창립 1주년을 맞이한 한화생명지회는 ‘단체교섭 촉구 투쟁기금 마련 후원주점’을 준비하고 있다. 단체교섭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될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각오가 만만치 않다.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 앞 한화생명지회 농성장에 걸려있는 단체교섭 요구 현수막 [출처: 연정]

“저는 한 번도 중간에 우리가 포기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끝까지 가면 교섭을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질긴 사람이 이긴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10년, 20년, 30년 동안 보험을 했는데, 얼마나 질기겠습니까? 그동안 얼마나 눈물 콧물을 빼고 힘든 일이 많았겠어요. 그런데도 포기 안 하고 했는데, 1년하고 내가 포기를 해? 절대 포기 안 한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거죠. 보험 설계사 노동자가 40만 명이에요. 특수고용 노동자 중에서 제일 많은 숫자에요. 노동조합이 없던 보험회사 설계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내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김갑선)


미정 씨는 농성장을 지키며 투쟁하는 일상 중에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럽게 투쟁 일기를 쓴다. 미정 씨는 소중한 그 기록을 모아 나중에 책을 발간하고 싶다고 했다. 꼭 하고 싶은 게 또 하나 있다. 설계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63빌딩 ‘피골탑’ 안에 한화생명 보험 설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만들고, 현판식을 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고뇌야 왜 없겠어요. 관계 속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우리가 초보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있을 거고. 근데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설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에서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고 싶지 않아요. 교섭이 타결되고 저 63빌딩 안에 우리 노동조합 사무실을 만들고, 거기서 ‘한화생명지회’ 현판식을 할 거예요. 많은 분들을 초대해서 천막과 비교하게 하고 싶어요. 우리가 이 63빌딩 보도블록에서 흘린 눈물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요.”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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