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개방된 에너지 산업, 기후정의 걸림돌”

에너지 민영화 저지 파업 20주년, 사회공공성 의미 되새기는 토론회 열려


“전국철도노동조합,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노동조합은 2002년 2월 25일 04시부로 전면 무기한 공동 총파업에 돌입함을 선언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막기 위해 시작된 발전·가스·철도 노동자들의 공동 파업이 25일로 20주년을 맞았다. 특히 ‘발전파업’으로 알려진 발전노동자들의 파업은 37일간 지속돼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4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선 에너지 민영화 저지 파업 20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공공운수노조, 사회공공연구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의 주최로 ‘기후위기 시대 사회공공성을 다시 생각하다’라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여전히 에너지 공공성을 위협하는 외주화 및 민영화 실태와 공공성을 훼손당한 에너지 산업이 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구준모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대기업에 개방된 발전 사업과 천연가스 사업의 문호가 에너지 전환 과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 연구위원은 “탈석탄 에너지 전환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도 포스코, 삼성, SK 등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고 속속 완공을 앞두고 있다”라며 “탄소중립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온실가스를 내뿜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이 계속되는 까닭은 민간기업의 영업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지적했다. 구 연구위원은 “천연가스 산업에 진출하는 대기업도 같은 이유로 탈탄소 전환에 저항하거나, 사업 침해를 이유로 막대한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공공성이 침해된 전통적 에너지 산업은 전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노동조합의 투쟁과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힘입어 에너지 부문에서 여러 차례의 민영화 시도를 어느 정도 막아냈지만, 최근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다시 에너지 민영화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구 연구위원은 “민간기업과 금융자본, 다수의 에너지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저감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민영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주장은 김성환, 양이원영, 이소영 등 현 정부 여당의 국회의원을 통해서도 발신되고 있으며, 외국계 기금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영향력을 확대해온 기후솔루션과 같은 NGO, 재생에너지 산업계의 지원을 받는 에너지전환포럼 등을 통해 한국의 시민사회와 환경·기후·에너지 운동에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구 연구위원은 뿐만 아니라 민자발전 방식의 현재의 재생 에너지 사업이 기후·환경 비용의 불평등한 부담, 민간기업과 금융자본 특혜, 난개발로 인한 지역갈등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부터 대규모 자본이 투여되는 해상풍력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구 연구위원은 “이러한 민자사업을 모델로 한 재생에너지 사업이 민영화 압력을 높이고 있다”라고 우려하며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시장과 가격에 초점을 맞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자유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구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재생에너지 수익의 공유화와 환수 ▲사회공공성 모델로 재생에너지 사업의 전환 ▲체제 변화를 위한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연대를 제시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부당하게 독점하고 있는 자연력의 기여로 발생한 초과이윤을 환수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자가 얻는 이윤은 국민들의 소득에서 전기요금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라며 “이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를 빌미로 한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소송과 반발이 발생하고 투자자국제소송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지만 정의로운 전환은 갈등과 투쟁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에 이런 문제를 먼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 문제의 성패는 민영화 반대 투쟁과 마찬가지로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힘과 국민적 지지에 달려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직수입이라는 우회적 민영화, 천연가스 요금인상 구조 만들었다

이수범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 정책국장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성공적인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천연가스 공공성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 정책국장에 따르면 직수입 방식의 우회적 천연가스 민영화 규모는 2005년 33만 톤(전체의 1.4%)에서 2020년 920만 톤(전체의 22.4%)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직수입의 효과로 제시된 ‘경쟁을 통한 가격하락’은 이뤄지지 않았다. 안정적 장기계약 물량은 많지 않았고, 직수입 확대에 따라 수급 불안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이 정책국장은 “현 체제는 서민들의 천연가스 요금을 인상시키고, 직수입자의 초과이윤을 보장하는 구조로 전락하고 있다”라며 천연가스의 공공성 강화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노조 전체대표자회의 간사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짚었다. 2018년 12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발전산업의 원·하청 위계구조와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드러났지만 수많은 약속과 정책의 발표에도 김용균의 동료들인 또 다른 발전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태성 간사는 “현재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탈석탄 에너지 전환의 피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라며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직접 대화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전향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지구를 살리고 미래의 삶을 보장하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주체적으로 나서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동자 선언’에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봐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이 실종되거나, 립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떨쳐 일어서 다시 한번 투쟁해야 할 때다”라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시민들과 환경, 종교, 청년, 농어민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며 공동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

기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다솔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문경락

    토론회 참가자들은 “지구를 살리고 미래의 삶을 보장하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주체적으로 나서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동자 선언’에서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봐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라는 개념이 실종되거나, 립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떨쳐 일어서 다시 한번 투쟁해야 할 때다”라며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시민들과 환경, 종교, 청년, 농어민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며 공동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