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3·8 국제 여성의 날 특집②] : 여성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팬데믹이 보여줬다

차례

① 최초의 여성 총파업, 그리고 가사 노동의 가치
②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③ 변혁 전략으로서 ‘돌봄 혁명’―가브리엘레 빈커
④ 돌봄 노동, 여성 그리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⑤ 직접 제공을 거부한 정부, 민간이 탐낸 ‘가사·돌봄’
⑥ 돌봄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 ‘언택트’가 미래다
⑦ 가사·돌봄 노동이 사회화된 세계는?

[편집자 주] 실비아 페데리치는 마리아로사 델라 코스타와 함께 1970년대에 가사 노동 임금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학자이다. 2021년 80세로 접어든 노학자이자 여성운동가와의 인터뷰가 뉴욕 타임즈에 게재됐다. 지면의 한계로 원문의 절반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발췌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실비아 페데리치 [출처: https://i.ytimg.com/vi/Atvb3ydrMac/maxresdefault.jpg]

학자이자 활동가인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는 수십 년간 자본주의 사회가 ‘재생산 노동’이라는 용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비판해 온 사상가다. 페데리치가 이 용어를 단순히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에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먹이고, 안전하고 청결하게 보살피고, 번창하게 하는 모든 일을 나타낸다. 이것은 정원에 잡초를 뽑거나, 아침을 차리거나, 할머니의 목욕을 도와주는 것처럼 계속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경제가 인정하거나 보상하지 않는 필수노동이다. 페데리치는 이러한 재생산 노동에 대한 무시는 부당하고 지속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재생산 노동의 가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주류 경제나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주류 페미니즘도 대부분 가사 노동을 무시했다. 대신 직장에서의 존재와 영향력에 따라 여성의 권리를 측정했다. 이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와 육아를 아웃소싱하며 이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은 집안일에 몰두했다. 알리 호흐실드(Arlie Hochschild)는 이런 여성의 처지를 “2교대(the second shift)”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정규직 여성이 돌봄의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가정을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균형적으로 지워지는지를 설명한다. 게다가 급여를 받으며 가사‧돌봄 노동(노인 돌봄이나 집 청소 같은)을 하는 사람들은 형편없는 보상을 받으면서도, 직업 보호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 직업은 주로 유색인종 여성과 이민자의 몫이다.

공공 정책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지난 수년간 모든 국가에서 무급 여성 노동이 경제 활동의 큰 부분을 구성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GDP와 같은 경제 측정에서 가사 노동을 제외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지적해 왔다. 옥스팜은 미국 여성이 집에서 하는 일과 친척을 돌보는 일에 최저 임금을 받았더라도 2019년에 1조 5,000억 달러(1,800조 원)를 벌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 같은 무급 노동의 가치는 거의 11조 달러에 달한다.

공공 정책학자이자 오랫동안 ‘생산성’이라는 경제 척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릴린 워링(Marilyn Waring)은 노인이나 신생아 돌보기, 쇼핑, 요리와 같은 활동을 무가치하거나 여가 활동으로 정의하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지적했다. 워링은 “국가 경제의 가장 큰 단일 부문이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없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가 시작되자 불안은 위기로 폭발했다. 먼저 ‘필수노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필수노동은 저임금 노동자와 주로 대응되는 범주였다. 그러다가 중산층과 상류층 사이에선 가사 노동과 특히 노인 돌봄,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었기에 그들의 삶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1년 가까운 휴교령 기간, 맞벌이 부모들은 저임금 교사의 하루 8시간 노동에 대해 얼마나 많은 보육료를 지급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인식했다. 또한 지속적인 보육 업무 관리를 위한 임시 시스템조차 없는 상황에서, 가족을 돌보는 것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임금을 받는 정규직 일자리와 비슷하거나 더 과중한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직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월세와 식비는커녕 보모도 감당할 수 없는 편부모들에게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문직 역시 이들과 비슷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급진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팬데믹으로 비교적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가사 노동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경제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반자본주의적인 정서가 나타났다. 부유한 여성 영화배우와 경영진(줄리안 무어, 샤를리즈 테론 등)은 엄마들에게 매달 정부 보조금 지급을 포함하는 ‘엄마를 위한 마셜 플랜’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가 서로와 자신, 그리고 주변 세계를 보살피기 위해 하는 일이 가치 있게 평가됐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페데리치의 제안처럼 “우리의 삶과 재생산을 타인의 고통에 기초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타인과 분리된 것으로 보기를 거부”한다면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30대 시절 페데리치는 ‘여성의 일’이라 생각하며 자라온, 어머니가 해왔던 모든 일을 거부했다(그녀는 버펄로의 대학원에서 현상학을 공부하며 포장에서 바로 꺼낸 조리되지 않은 핫도그와 마지못해 삶은 감자를 먹었다). 그는 “나는 어머니의 일에 대한 평가절하를 감지했다. 아무런 보상도, 즐거움도 없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페데리치는 어머니가 일생의 작업이 될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 “나에게 노동자 계급은 곧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게 몇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마치 공장 노동자들만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하고 말이에요.” 페데리치는 우리가 앉아 있던 공원 벤치를 주먹으로 꽝 하고 쳤다. “교사이고 지식인이며 지성인이셨던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어머니는 나중에 내게 정치학이 된 것들을 말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가사일이든, 농사일이든 그것을 근본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노동)이란 푸른 작업복 그 이상입니다.”

약 10년 후인 1967년, 그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할 때까지 페데리치의 정치학은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페데리치는 버펄로 시의 활기찬 반전 학생 운동과 시민권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1972년 그의 한 친구가 델라 코스타(Mariarosa Dalla Costa)의 책을 전달할 때까지 페미니즘을 자신의 정치적 견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델라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가 쓴 《여성 권력과 공동체의 전복(The Power of Women and Subversion of Community)》은 여성이 가정에서 무보수로 일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이윤을 위해 착취하는 노동력을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개념은 페데리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페데리치는 “공장의 남자들만 진짜 노동자로 보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 마르크스주의와 결부돼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가사 노동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 등 모든 것이 이해됐다”라고 말했다. 페데리치는 델라 코스타와 셀마 제임스 같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국제페미니스트연합(International Feminist Collective)’을 결성했다. IFC는 유럽에서 가사 노동 임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페데리치는 셀마 제임스의 지도하에 공동 작업자인 니콜 콕스(Nicole Cox)와 1974년 뉴욕에서 가사 노동 임금 미국 지부를 최초로 설립했다.

  실비아 페데리치 [출처: https://thenewinquiry.com/app/uploads/2014/09/sFed.jpg]

1975년에 출판된 페데리치의 《가사에 관한 임금(Wages Against Housework)》은 운동에 대한 초기의 열정적인 선언문으로, 현재 가장 잘 알려진 텍스트 중 하나다. 페데리치는 섹스를 언급하며 “우리가 가사 노동에 대한 임금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사 노동이 이미 자본을 위한 돈이고 자본이 우리 요리로, 미소로 [욕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라며 “동시에 그동안 우리가 요리하고, 미소를 지으며, [욕설]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것보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웃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라고 썼다.

가사 노동 임금은 페미니스트 운동에 속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광범위했다. “우리는 모두 주부이고, 매춘부이며, 모두 동성애자라고 말하고 싶고 또 그렇게 말해야 한다…우리가 주부보다 더 나은, 주부와 다른 것을 생각하는 한, 우리는 주인-노예의 논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열의 논리이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 노예이거나 종속적이며 모든 것이 “사랑의 노동”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할 때의 페데리치 어투는 마치 애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노동을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야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 썼다.

뉴욕 위원회는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에 있는 상점에서 활동하며 빈곤 여성의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들은 미국 전역과 캐나다의 그룹 형성을 지원했다. 또한 가사 노동 임금을 위해 흑인 여성을 규합한 활동가 프레스코드(Margaret Prescod), 브라운(Wilmette Brown)과 함께 현지에서 일했다. 그들은 정부에 여성 가사 노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4년 후, 국제 네트워크는 분열됐다. 뉴욕 위원회는 가사 노동 임금에 대한 흑인 여성의 우선순위가 무시됐다고 주장하는 제임스, 프레스코드와 결별 후 해산했다. 하지만 페데리치는 이것을 부인하고 그룹의 문제가 제임스에게 있었다고 주장한다.

최근까지 당사자들은 40년 전 내부 갈등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의 일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백인이 페미니스트 운동 내의 흑인, 황인, 원주민, 퀴어 및 트랜스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던 오랜 역사 때문에 특히 민감한 영역이다. 그들은 결코 화해하지 않았지만 페데리치, 제임스, 프레스코드는 페미니스트 행동주의에서 장기간 동시에 경력을 쌓았다.

페데리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은 2004년에 출간된 《캘리번과 마녀(Caliban and the Witch)》다. 벨 후크, 앙겔라 데이비스(Angela Davis), 윌멧 브라운(Wilmette Brown), 컴바히강 공동체(Combahee River Collective)와 같은 많은 반자본주의 페미니스트와 그룹들은 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 투쟁에 대해 논쟁해 왔다. 자본주의가 여성, 유색인종, 노동계급을 억압했기 때문에 반자본주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젠더와 인종을 구성해야 했다. 이 전통에 대한 《캘리번과 마녀》의 공헌은 이러한 형태의 억압을 단일 근원으로 추적하고 그 기원은 불가분의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페데리치는 “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서 반드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지지한다”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사회관계에 내재한 모순을 정당화하고 신비화해야 하므로…여성, 식민 주민,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 세계화로 인해 쫓겨난 이민자 등 자신이 착취하는 사람들의 ‘본질’을 깎아내리면서 말이다.”

페데리치는 돌봄과 생명 유지에 관한 일이 한 성별의 영역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극소수에 이익이 집중되는 경제 체제에 사람들이 종속되는 것 역시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고 봤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포괄적으로 부상한 경제 시스템의 관습에 불과했다. 페데리치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역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역병의 해, 선거의 해, 끔찍한 해)는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서 누가 이익을 얻었고, 누가 희생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20년에 7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실업을 신청했다. 그중 대다수는 유색인종 여성이며 많은 서비스 부문에 종사했다. 저임금 노동자는 더 많은 비율로 실직했고, 더 오래 실직 상태에 머물렀다. 건강에 위협을 받으며 집 밖에서 일해 온 필수노동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특히 유색인종 여성이 많았다. 포드햄의 캐서린 파월 법대 교수는 에 팬데믹에 따른 노동시장의 영향으로 흑인과 황색인종은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동시에, 직장에 머물러야 하는 필수노동자 사이에서 유색인종 저숙련 노동자들이 특히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큰 ‘인종적 정의의 역설(racial justice paradox)’을 묘사했다. 실업자와 필수노동자 사이에서 유색인종이 과잉 대표되는 이중성, 역설로 수천 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회에서 다른 방식에 대한 갈망이 점점 커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테일러(Keeanga-Yamahtta Taylor)는 “백만장자들은 자신의 빈 아파트에 재산을 숨겨두고, 노숙자 가족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회”라며 ”이 사회는 퇴거와 대출 불이행을 무릅쓰고 수억 명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집 안에 머물도록 명령을 받고 있다. 그 모순과 비인간성이 당혹스럽다”라고 썼다.

지난 10년간 페데리치는 이윤을 위해 세상이 분열되고 억압되는 과정인 인클로저(enclosure)를 뒤집어야 한다는 데 관심을 쏟았다. 페데리치는 재산과 토지뿐만 아니라 신체, 시간, 교육 방식, 건강, 관계, 관심, 마음 등 거의 모든 것이 자본주의 안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한다. 칸투(Francisco Cantú)는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은 기술 회사에 의해 중재되고 수익화됐다고 말한다. 페데리치는 인클로저에 대한 해결책이 점점 더 많은 세상을 공유지로 바꾸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커먼즈(Commons)’는 모든 종류의 시장 외부에서 일반적으로 보유되는 자원(토지, 지식, 문화 및 지적 재료)을 나타낸다. 커머닝(Commoning)은 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 즉 상품화나 추출의 범위 밖으로 점점 더 많은 삶을 벗어나게 하는 실천적인 아이디어이다. 커머닝의 매력은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있는 한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이다. 커머닝을 연구한 학자인 데이비드 볼리에(David Bollier)는 커먼즈에 대해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 워싱턴에 로비스트나 변호사로 대리인을 둘 필요는 없다. 당신이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당신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스스로 처분하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자신만의 것들을 구상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페데리치는 성공적인 커머닝 모델을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도출했다. 페데리치는 원주민 커뮤니티가 종종 커머닝 관행의 창시자이자 수호자라고 말한다. 페데리치는 아마존의 ‘물 수호자(water defenders)’, 남아프리카의 땅 없는 사람들 운동, 가나의 도시 정원들, 정부의 의무 긴축 과정에서 음식과 노동력을 모았던 칠레 여성들을 언급했다. 페데리치 “가장 산업화한 공동체가 아니라 가장 응집력 있는 공동체가 저항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민영화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라고 <임금의 가부장성(Patriarchy of the Wage)>에서 보여줬다.

페데리치의 커머닝에 대한 가장 유익한 사례 중 하나는 2016년과 2017년, 스탠딩 록 수(Sioux) 부족에 대한 항의 캠페인이다.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부족과 연대단체들은 수천 명의 시위대를 수용하고 식량을 공급했으며 겨울에 대비하는 야영지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들은 온 가족이 참여하려면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교를 만들었다. 그들은 캠프를 살기 좋고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한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2017년 2월 캠프가 법 집행 기관에 의해 철거됐음에도 국제적 지원으로 운동을 지속하고 확대할 수 있었다.

페데리치는 2019년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아스트라 테일러(Astra Taylor)와의 인터뷰에서 “좌파가 공동체의 힘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 변화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혁명적인 가능성을 설명한다. 그곳이 집, 슈퍼마켓, 교회, 쉼터, 생산라인, 탁아소이든 “일상생활은 사회 변화의 주요 지형”이라고 강조한다.

원제
The Lockdown Showed How the Economy Exploits Women. She Already Knew.
필자
Jordan Kisner
출처
뉴욕타임즈, 2021.2.17.일자에서 부분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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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페데리치는 2019년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아스트라 테일러(Astra Taylor)와의 인터뷰에서 “좌파가 공동체의 힘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 변화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혁명적인 가능성을 설명한다. 그곳이 집, 슈퍼마켓, 교회, 쉼터, 생산라인, 탁아소이든 “일상생활은 사회 변화의 주요 지형”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