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사회주의자입니다. 투표는 못 하지만 유세는 합니다”

[인터뷰] 사회주의 후보 이백윤 유세차량에 오른 청소년 김성욱 씨

올해로 고2가 된 김성욱 씨는 1년 4개월여 전, 포털 사이트에 ‘대한민국 사회주의 정당’을 검색했다. 몇몇 정당과 관련한 정보들이 화면에 떠올랐고, 그중 ‘사회변혁노동자당(현 노동당)’의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당 사이트에 게재된 강령을 꼼꼼히 읽어본 뒤, 활동 자료들을 찾아봤다. 자신의 이념과 지향이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홈페이지에 가입 링크가 없어 직접 중앙당에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김 씨가 전화로 당 가입 의사를 밝히니 당직자도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중앙당은 김 씨의 거주 지역을 고려해 인천시당을 그에게 소개했다. 이후 인천시당 당원들과 두 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강령 토론과, 주요 사회 이슈에 대한 논의, 사회주의 및 좌파 정당 운동사 교육을 마친 후 정식 당원이 됐다. 그리고 대선을 앞둔 요즘, 그는 선거 운동에 열심이다. 그가 속한 노동당에서 ‘사회주의’를 내건 대선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인천 송도 포스코 앞에서 이백윤 후보 지지 유세 중인 김성욱 씨.

유세차에서 마이크를 든 열여덟 사회주의자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성장 시스템에 의해 자본이 무차별적으로 이윤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전 지구적 재단에도 불평등은 존재합니다. 기업의 이윤은 사유화됐고, 재해는 사회화됐습니다. 자연은 개인이 소유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연이 인류의 공동 재산이 돼야 한다는 원칙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지난달 18일 오전 8시, 김 씨는 인천 송도의 포스코 건물 앞에 세워진 노동당 소속 기호 7번 이백윤 후보의 유세 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들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로는 기후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기후정의가 곧 사회주의라고, 그래서 ‘사회주의’를 내걸고 출마한 이백윤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발언이 꽤 인상 깊었다고 하니, 김 씨가 “전날 잠을 못 잤다”라며 웃었다. 생전 처음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것이라 많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아직 낯선 김 씨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또래 친구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았다. 학교, 학원, 집을 오가며 입시 시스템에 맞춰진 교육을 받았다.

“4~5년 동안은 학교, 학원, 집만 오갔어요. 오후 3시 30분에 수업을 마치면 4시부터 5시 30분까지 학원을 가고, 30분 동안 저녁을 먹고 6시부터 8시까지 다시 학원에 갔어요. 집에 와서는 숙제를 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도 비슷했어요. 학원을 두세 개에서, 많으면 다섯 개까지 다니기도 하고요. 그런데 불만을 토로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어요. 내가 더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니까요. 부모님께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하셨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 성욱 씨는 오래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사회주의 정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역사 공부를 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억지로 하기도 싫었고요. 예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다큐멘터리를 자주 찾아봤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러시아 혁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됐고, 당시 피해를 받는 러시아 노동자의 해방을 추구했던 레닌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이후 사회주의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요. 그러다가 직접 활동을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꿈이 없는 시대,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자신의 삶도, 다른 친구들의 미래도 암울할 것 같았다. 그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건 돈이 곧 행복이라는 정서가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굉장히 소수라는 걸 알기에, 내일을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김 씨는 자신도, 그리고 친구들도 대부분 꿈이 없다고 했다. 어느새 장래 희망 같은 걸 고민하는 것도 사치가 돼 버렸다.

“사회주의 사회는 이윤과 경쟁보다 공존의 가치가 더 크잖아요. 그런 사회가 오면 대학이 평준화돼 저나 친구들이 입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지 않을까요. 졸업하고 노동자가 되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있고요. 집 걱정 없이 공공주택에서 살게 되겠죠. 저는 이런 사회가 올 수 있다고 봐요. 지금까지 생산력이 꾸준히 발전해 왔고, 이제 장시간 노동 없이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한쪽에선 너무 많은 노동으로 과로사를 하고, 또 한쪽에선 실업이 만연하잖아요.”

  지난달 27일 이백윤 후보 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김성욱 씨.

김 씨는 최근에야 자신이 사회주의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노동당 소속 기호 7번 이백윤 후보에 대한 지지를 넌지시 호소했다.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찼고, 누나는 ‘군소정당 표는 사표일 뿐’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친구들은 다양한 입장을 내놨는데, ‘한국에 극우가 있으니 극좌도 있어야 한다’는 친구도 있었고, ‘어디 가서 얼굴 찍히지 마라. 취업 안 된다’라고 경고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이 공산주의 정권 아니냐’라고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 중에는 20세기 사회주의에 실패한 국가들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어요. 중국이나 북한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이론은 좋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고요.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면 저는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20세기의 사회주의가 아니다, 실패한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해요. 가끔 욕을 주고받긴 하지만요. (웃음) 제가 그리는 사회주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예요. 절대다수의 노동자 민중은 가난하고, 소수만 부를 독점하는 구조가 없어지는 사회고요. 노동자 민중이 직접 국가 정책을 논의하고, 이것이 실제로 반영되는 사회예요.”

김성욱 씨에게 이백윤 후보의 공약 중 하나만 소개해 달라고 하니, ‘재벌 국유화 공약’을 꼽았다. 현행법상으로도 국유화가 가능하다며, 이를 친구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재벌 주도의 민간경제가 아닌, 노동자와 공공 주도 경제의 첫 발걸음이 ‘재벌 국유화’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재벌에 의해 굴러가잖아요. 노동자 민중이 주도하는 민주적 계획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벌 국유화가 필수적이고요.”

김 씨는 자신이 꿈꾸는 사회가 그리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입시 제도에서 한 발짝 물러선 그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자신뿐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수많은 친구가 열악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낯설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더 많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아침 7시 20분에 출근길 유세에 나선다. 주말이면 청년 간담회와 집회, 행진에도 참여한다. 처음 노동자대회에 나갔던 날, 마포대교에 휘날리던 깃발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많은 깃발이 광장에 모이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김성욱 씨는 기자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사회는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우리를 대변해주고, 우리 삶을 개선시켜줄 것이라는 희망 속에 갇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대변하기 위해 광장에서 진정한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회변혁노동자당과 노동당이 합당해 단일한 사회주의 정당인 노동당을 창당했습니다. 기호 7번 이백윤 후보를 대선 후보로 추대했고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많은 지지 부탁드려요. 물론 당에 들어와서 함께 활동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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