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으로 본 아랍정치의 현주소

[INTERNATIONAL2]

  2021년 11월 14일 튀니지 의회 앞에서 튀니지 시위대가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의 통치권 장악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자코뱅]

1. 불가능하거나 남다르거나

아랍의 봄 이후 중동지역 선거의 양상을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리비아에서는 지난 12월 24일로 예정된 대선 1차 투표가 두 달이 넘도록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예정돼 있던 총선 역시 마찬가지다. 리비아 대선은 이미 2014년부터 여러 차례 연기를 거듭해왔다. 선거를 막으려는 무장세력이 조성하는 치안 불안, 선거 방식을 둘러싼 대통령 후보 진영 간의 갈등, 전국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를 인프라 부족 문제 등이 수년간 선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거 연기가 발표되기 전부터 무장세력이 수도 트리폴리의 정부청사를 포위하거나 주요 정치인의 안전을 위협한 사례는 민주적 선거의 첫발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2020년 10월 유엔이 중재한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 1년여의 세월 동안 리비아 국민은 대선을 고대해 왔다. 대통령 선출이 내전을 겪은 리비아 사회를 재건하고 정상화하는 필수적인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에는 10년의 내전 동안 동서로 나뉘어 있던 국가기구들을 통합하기 위한 선거가 준비됐고, 이를 위해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산적한 장애물이 있었다. 먼저 동부 지역에 위치한 하원은 그곳의 강자 칼리파 하프타르 제독의 입장을 반영한 선거법을 제정했고 이후 일방적으로 총선 날짜를 연기했다. 그러나 서부에 소재한, 리비아의 상원에 해당하는 고등국가위원회는 이러한 하원의 조치를 거부했다.

게다가 주요 대선 후보자들의 면면이 상황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현 과도정부의 수상 압델하미드 드베이바는 당초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번복했다. 동부 지역의 하프타르 제독은 2019~2020년 무력으로 서부 지역을 장악하려 한 전력이 있어 서부 지역 주민의 반발을 샀다. 또한 아랍의 봄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카다피의 막내아들 세이프 알 이슬람 카다피는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의 수배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12월로 예정된 리비아 대선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정상적으로 치러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비아의 주요 정치 세력들은 선거에 대한 기대를 접고 다시 힘겨루기에 들어가고 있다.

튀니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아랍의 봄의 유일한 성공 사례라는 평가는 지나친 감이 있지만,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성장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튀니지에서는 아랍의 봄의 대표적인 결실이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제헌의회, 총선, 대선, 지선 등이 정상적으로 치러졌다. 정권교체가 진행된 것만으로도 정치적 진보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2019년 대선은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1956년 독립 이후 반세기 동안 튀니지 정치를 독점한 부르기바와 벤 알리 정권이 막을 내렸지만, 혁명 이후 정치를 장악한 이들은 구체제 인물들과 구체제에서 탄압을 받은 이슬람주의자들이었다. 혁명의 주체가 아닌 기존의 두 진영이 펼치는 현실정치에 실망한 이들이 새로운 인물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정치체제를 가진 튀니지에서는 2019년 10월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치러졌다. 총선에서는 엔나흐다 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대선에서는 기성 정치권과 거리가 먼 법학자 카이스 사이에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이에드의 당선은 아랍의 봄 이후 권력을 행사해온 튀니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거 초반만 해도 카이스 사이에드는 주요 후보로 거론되지 못할 정도여서 그의 당선은 의외였다. 언론계의 거물 나빌 카루이도 자신이 창당한 자유주의 성향의 ‘튀니지의 심장당’ 후보로 나와 결선에 진출하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주의의 헤게모니 속에서 비종교적 색채의 정치 세력이 도전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2019년 대선에서 이러한 기존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선거의 쟁점은 주로 사회경제적인 주제들이었다. 그리고 빈곤 등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문제의식은 무능한 기성 정치인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요구를 동반했다. 경제문제와 함께 사형제 폐지, 동성애 합법화, 징병제 폐지 등이 주요 이슈였고 특히 성 평등이 대선 과정을 장식한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는 중요한 이슈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선에도 반영돼 후보들은 언론으로부터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았다. 심지어 동성애자 변호사인 무니르 바투르가 아랍 세계 최초로 대선 출마를 신청했다가 거부된 일도 있었다. 물론 성소수자운동 진영은 그의 출마에 반대했지만, 이 사건은 동성애 이슈가 튀니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아프리카 역사상 최초로 대선 후보 TV 토론이 개최되기도 했다. 1차 투표 직전 3일에 걸쳐 진행된 TV 토론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26명의 후보가 세 팀으로 나뉘어 토론에 나섰다. 후보들은 외교, 안보, 인권, 경제 등의 분야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질문에 답해야 했다. 답변 시간은 한 질문에 90초가 주어졌다. 답변이 모두 끝난 후에는 각자 취임 초기 100일 동안 펼칠 주요 정책 방향과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소개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다만 후보자 간의 토론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렇게 제한된 토론이기는 했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두 번째 날에는 상호 토론이 추가됐다. 논의 주제는 경제적인 사안이 많이 다뤄졌고 첫째 날에는 없었던 이슬람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결선 투표에서도 양자 간의 TV토론이 개최됐다.

2. 혁명의 굴절된 반영으로서의 선거

요즘 우리는 수시로 세계 여러 나라의 선거 소식을 접하고 있다. 선거 과정이 부정이나 폭력으로 얼룩진다거나 좌파든 우파든 급진적인 후보가 당선된다거나 또는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경우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된다. 중동의 선거에 대한 우리의 관심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아랍의 봄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선도했던 튀니지나 이집트의 선거가 눈길을 끌었다. 중동에서 이란, 터키,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 국가는 아랍의 봄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리고 서로 다른 시기에 경험했다. 그리고 아랍의 봄의 역사에서 선거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인티파다, 이란혁명, 걸프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이후 중동 최대의 정치적 사건이었던 아랍의 봄의 운명도 대선과 대통령의 거취에 크게 좌우됐다. 혁명이 강요한 벤 알리 대통령과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혁명의 첫 성과였던 무르시의 이집트 대통령의 당선과 에셉시, 사이에드의 튀니지 대통령 당선, 그리고 반혁명의 힘을 보여준 엘 시시의 당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8년 3월 엘 시시는 97%가 넘는 득표율로, 역시 97%를 기록한 2014년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아랍 세계에서 선거는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경제적인 문제의 해결, 권력 구조 등 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외세의 배격 등 혁명의 요구가 선거판을 장식하고 있다. 선거는 또한 현실의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구체제의 남은 세력과 이슬람주의자들, 그리고 혁명 세력의 삼자 구도가 선거판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다. 다만 제도권에서 이 구도는 제도적인 요인 등으로 굴절돼 나타난다. 아랍의 봄의 부산물인 전쟁 역시 선거에 낙인을 찍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의 민주화가 내전으로 좌초됐다면, 내전은 선거에서도 구조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다. 2021년 5월 26일에 치러진 시리아 대선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진 대선에서 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와 함께 전직 장관 압달라 살룸 압달라, 현 정권이 출마를 용인한 야당 후보 마흐무드 마레이가 출마했다. 이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내전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기에 2014년 대선보다는 신뢰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인구의 절반이 고향을 등진 상황이라 유권자의 절반만 참여가 가능했던 제한된 선거였다.

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만이 장애물은 아니다. 우선 상대적으로 짧은 국민국가의 경험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20세기 초중반에 독립국가가 탄생했으며 걸프만 국가 중에는 1970년대에 독립한 나라들이 있을 정도로 아직 근대국가로서의 역사가 짧다. 독립 이후에도 구 식민본국이나 주변국, 그리고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개입으로 내적 정치의 성숙이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리 우호적으로 봐도 중동의 제도권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아직 왕이 통치한다거나 정당이 없다거나 국민이 직접 정치지도자를 뽑지 않는 나라도 여럿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 이래 유럽의 영향이 정치제도에도 반영돼 있다. 영국을 닮은 입헌군주제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프랑스를 닮아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국가들도 있다.

종족과 종파로 분절된 구조 역시 민주주의 제도, 특히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일국 차원의 제도가 정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최근의 레바논 사례가 이 점을 다시 환기했다. 레바논은 이라크와 함께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등 주요 직위가 주요 종족 및 종파에 배정된다. 각각 마론파 기독교, 수니파, 시아파 출신이 맡는다. 따라서 종파주의 시스템이 견고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이전에 세속적이고 근대적인 정치체제 수립이라는 선결과제와 씨름하는 힘겨운 모습을 보게 된다. 정당 역시 이념이 아니라 특정 종교나 종파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며 각 종파는 특정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외세 개입이 용이한 구조다.

2018년 레바논 총선은 종교 중심의 정치체제에 따른 유리천장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특정 종파와 무관한 시민사회 후보들이 출마했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예를 들어 15개의 대선거구가 종파별 안배를 고려해 구획된 것이라 종파와 무관한 세력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유권자들은 부패, 국가의 실정, 태부족인 사회서비스 등 당면 과제를 고려해 투표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민으로서의 관심사보다는 자신이 속한 종교공동체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민중 봉기의 힘도 종파 중심의 제도권 정치 앞에서는 무력했다. 2005년 시리아의 내정개입에 반발한 백향목 혁명, 2015년 여름 정부의 쓰레기 정책을 비판하며 수만 명의 레바논인들이 거리에 나선 소위 ‘쓰레기 혁명’, 2019년 세금인상에 반발한 시위, 2020년 8월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를 배경으로 한 대규모 시위 등에도 종파 중심의 정치체제는 난공불락이었다. 레바논으로서 2022년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해다. 5월 총선, 10월 대선 등 두 번의 중요한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선거에서 압승한 이후 시아파 이외의 종파에도 영향력을 확대해온 헤즈볼라가 현재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사다.

3. 저항운동과 선거의 디커플링

아랍의 봄 이후 정치를 좌우한 선거에선 아랍의 봄의 주역이던 청년, 노동운동, 좌파, 시민사회가 보이지 않는다. 민중의 저항은 불평등, 권력 독점과 민중의 정치적 소외, 대외종속 등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선거에선 이 근본적 요인들이 소홀히 다뤄졌다. 종족 정치 같은 이 지역에 고유한 요인 외에도 사법 중심의 선거 과정같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양상이 선거를 정치계급의 잔치로 그치게 한다. 특히 부패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된다. 이는 권력독점과 폐쇄적인 정치문화, 그리고 초법적인 행태의 결과이자 선거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전투구 현상의 산물이다.

부패는 민중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중의 기성 정치인 비판은 정치 세력 간의 사법적인 다툼과는 성격이 다르다. 법 위반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이 정치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중동의 민주주의에서 너무 일찍 나타나고 있다. 튀니지 혁명을 대표하는 구호 ‘꺼져라’(leave)는 혁명의 성과에 실망한 튀니지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용어로 이어지고 있다. 부당하게 과도한 권력을 가진 무능한 기득권 세력, 그들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내가 떠나거나 하는 마음인 것이다. 또한, 이슬람주의자들이 혁명의 과실 가져갔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좌파의 운명이다. ‘혁명으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라는 표현은 혁명의 중요한 주체였음에도 혁명 이후 소외당한 좌파를 가리킨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노하우가 아랍혁명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혁명 이후 좌파의 정치적 입지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선 등의 선거는 민중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지만, 사회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표상일 수 있다.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며 선거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선거가 보여주는 황당한 풍경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그 사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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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부패는 민중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중의 기성 정치인 비판은 정치 세력 간의 사법적인 다툼과는 성격이 다르다. 법 위반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이 정치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중동의 민주주의에서 너무 일찍 나타나고 있다. 튀니지 혁명을 대표하는 구호 ‘꺼져라’(leave)는 혁명의 성과에 실망한 튀니지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용어로 이어지고 있다. 부당하게 과도한 권력을 가진 무능한 기득권 세력, 그들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내가 떠나거나 하는 마음인 것이다. 또한, 이슬람주의자들이 혁명의 과실 가져갔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좌파의 운명이다. ‘혁명으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라는 표현은 혁명의 중요한 주체였음에도 혁명 이후 소외당한 좌파를 가리킨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노하우가 아랍혁명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혁명 이후 좌파의 정치적 입지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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