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반하고 두 번에 정이 드는 팔레스타인

[INTERNATIONAL3] 아몬드꽃과 올리브나무, 소박하고 아름다운 팔레스타인의 기후와 지형

  와디 알 마크루르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20년 2월 10일. 기온은 봄처럼 포근했고, 간단한 비옷을 챙겨야 할 정도로 보슬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베들레헴의 서북쪽 끝에서 시작하는 ‘와디 알 마크루르(1)’ 길을 이용해 바티르(2) 마을로 향했다.

베들레헴의 길은 시작부터 풍광이 어찌나 소박하고 아름답던지, 바람이 어찌나 부드럽게 코끝과 가슴을 간지럽히던지, 길가의 아몬드 꽃봉오리들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부드럽던지. 그리고 마음의 건조함까지 말끔히 씻어주는 촉촉한 비.

이 길을 걸으며 버킷 리스트가 하나 생겼다. 2월에 ‘와디 알 마크루르’ 길 근처에 집을 하나 얻어 놓고 매일매일 여기를 와 보는 것이다. ‘오늘은 아몬드 꽃망울이 시작됐네. 오늘은 아몬드 꽃망울이 조금 컸네. 오늘은 아몬드 꽃망울이 조금 벌어졌네. 오늘은 아몬드꽃이 활짝 피었네. 오늘은 아몬드꽃이 졌네.’ 이렇게 매일매일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꽃이 지는 걸 보고, 아몬드 열매가 맺는 걸 또 기다리고. 화양연화의 한때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의 모든 장면에 쭉 함께 하는 것.

2월의 팔레스타인은 어디나 아몬드꽃이 만발한다. 세바스티아를 산책하다 정월 대보름달같이 환한 꽃을 피운 큰 아몬드 나무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분이 다가와 말을 붙인다. “한국 사람들은 아몬드꽃을 좋아하나 봐요. 여기 오는 한국 사람들은 다 그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어요” 하며 나도 나무 아래에 세우더니 사진 한 장을 찍어준다. ‘한국에는 아몬드 나무가 없어요. 그래서 처음 아몬드꽃을 본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

아몬드(3)와 올리브 나무는 여름에는 건조하면서 서늘하고 겨울에는 습하면서도 얼지 않는 기온인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다. 팔레스타인을 다니다 보면 어디든 아몬드와 올리브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지중해성 기후는 아몬드와 올리브 나무만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기에도 가장 좋은 기후라고 알려져 있다. 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한국의 겨울에 익숙한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간다면 그야말로 지상낙원인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디나 물이 풍부한 바티르 마을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촉촉한 비에 세상은 푸릇푸릇하다. 시장에 가면 시설 하우스가 아니라 노지에서 자란 겨울 채소들이 싱그러움을 자랑하며 쌓여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점퍼를 입고, 한낮에 해가 나면 반소매 옷을 입고 해 쬐기에 딱 좋은 날씨다. 나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동안 자주 반소매를 입었고, 팔레스타인 북서부 항구 도시인 하이파에 갔을 때는 시간이 없어 바다 수영을 하거나 서핑을 즐길 수 없어 아쉬웠다.

팔레스타인에 가기 전에는 기후나 자연환경에 대한 생각보다는 ‘군사 점령, 분리장벽, 긴장’ 이런 것만 생각하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첫날, 시장 가판의 푸릇푸릇한 채소에 놀랐고 그 채소를 사서 자주 요리를 하고,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의 사진을 찍고, 해가 날 때마다 점퍼를 벗고 해를 즐기고, 꽃향기를 맡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보슬비 내리는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게 될 줄은 팔레스타인에 가기 전에는 몰랐다.

어릴 때 자주 듣던 ‘팔레스타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보고 확인하게 됐다. 기후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고 겨울 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이다. 건조한 여름에도 풍부한 이슬 덕분에 목초지가 유지되는데 건조한 나깝(네게브) 사막조차 수분이 유지될 정도다. 올리브와 아몬드 나무뿐 아니라 밀과 보리, 완두, 양파, 오이 등의 채소들도 잘 자라고 목초지에서는 가축을 기를 수 있다. 물론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지형이다 보니 지역별로 차이가 크다. 그렇다 해도 ‘비옥한 초승달 지대(4)’에 속하는 이곳은 옛날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명이 살기 좋았던 곳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땅이 있다고 해서 모든 생명이 평안한 삶을 살기는 어렵다. 모두 각자가 원하는 삶을 꿈꾸고 또 그렇게 살 자유가 있지만,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꿈을 꾸기도 어렵고 꿈을 이루기는 더 어렵다. 오늘 내가 수확한 올리브유를 근처에 사는 친구나 형제자매에게 주기 위해 때로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영화 <200미터>(5)에는 200m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는 ‘무스타파’와 ‘살와’라는 부부가 분리장벽 검문소를 통과하려다 통행증에 문제가 생겨 200km를 돌아가서 만나는 삶이 그려진다.

세상은 팔레스타인의 아몬드꽃과 올리브 이야기가 아니라 ‘군사점령’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전에는 팔레스타인 여행이 아니라 ‘현지 활동’을 계획했다. 아마 많은 한국인이 팔레스타인 여행이 아닌 ‘테러, 불심검문, 위험, 성지순례’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팔레스타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인 누구나 생각해보면 좋겠다. 바삭하고 달콤한 팔레스타인산 아몬드 한 알을 먹으며, 훈훈한 팔레스타인 겨울바람도 생각하고 이 한 알의 아몬드를 지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저항했는지 알아보면 좋겠다. 그게 현실이니까.

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촉촉하고 푸릇푸릇한 ‘와디 알 마크루르’ 길을 3시간 정도 걸었다. 걱정은 없었고 즐거움과 탄성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어디에나 흔한, 그래서 지금은 많이 그리워진 팔레스타인 돌산들. 처음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을 때는 그 돌산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무가 울창한, 보통의 익숙한 산이 아니라 돌무더기, 바위에 큰 나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척박해 보이기만 한 산들. ‘저 산을 오르고 넘으려면 도대체 어디서 쉬어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늘 하나 없는 산. 그런데 자꾸 보면 정이 드는지 한국에 돌아온 후 그 산이 아주 그립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울창한 숲, 적당한 그늘에 익숙한 등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그 산을 보고 처음엔 깜짝 놀라겠지만 분명 깊은 정이 들 것이다.

팔레스타인 땅은 남과 북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형태이다. 남북의 길이가 563.15km로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 길다.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특성이 다양하다. 해안으로는 평야 지대가 펼쳐지지만 나깝의 라몬산은 해발 1,000m 이상이다. 요르단 계곡의 사해 표면은 해수면보다 425m나 아래에 있다.

  2월의 요르단 계곡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공간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번 활동 중에 골란고원을 잠깐 들렀고 요르단 계곡에서 약 열흘을 머물렀다. 아마 우리 이전에 왔던 사람들과 우리, 그리고 우리 이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른 시리아 골란고원과 요르단 계곡을 마주할 것이다. 이곳은 매년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이 늘어나고, 이스라엘의 수자원 시설이 모든 물을 끌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은 점점 메말라 가기 때문이다.

골란고원은 고원이라는 이미지에서 주는 메마름보다는 비옥하고 물이 풍부해 보였다. 실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물 공급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비옥한 땅 여기저기에는 버려진 탱크, 요새, 지뢰 경고 표지판이 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의회는 골란고원에 향후 5년 동안 10억 세켈(약 3,700억 원)을 들여 불법 주택 7,300채를 짓고 불법 정착민을 두 배로 늘리는 계획을 통과시켰다.

요르단 계곡도 마찬가지였다. 요르단 계곡은 길이 105km, 평균 폭 10km(일부 지점 4km)의 계곡이다. 계곡의 동쪽은 요르단, 서쪽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이다. 1967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사람 약 25만 명이 살고 있었으나 그 수는 점점 줄었다. 대신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이 늘어나 영토의 약 86%를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민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머물던 바르달라 마을 근처의 잘 가꾸어진 농장이나 시설 재배 하우스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었다. 이스라엘 수자원공사(Mekorot)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용해온 우물이나 강 근처에 300m를 파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우물 깊이는 60~70m에 불과하다. 물론 이 물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제공할 리 없고 우물은 말라 요르단 계곡의 녹지는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이스라엘 관련 뉴스는 공정하지 못하다. 언제나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변한다. 백신 접종에 대해, 테러 진압과 물관리에 대해, 여성의 입대에 대해 배우자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스라엘의 교육과 농업에 대해 배워야 하며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탈무드가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이스라엘의 많은 성과는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등 주변국과 그 사람들의 생존권을 빼앗고 짓밟아 이루어 낸 것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 머무는 내내 황홀한 자연경관이 넋을 빼게 아름다워도 서러운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바티르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마을에서 우리를 먼저 반긴 것은 사람보다 올리브 나무였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올리브 나무 과수원을 걸어 올라가 산 위에 있는 바티르 마을에 도착했다. 기온이 높고 보슬비가 흩뿌려 땅이 질척거렸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신발에 진흙이 붙어 걷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것도 꽤 즐거웠다. 마을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레몬 나무들이 많았다.

  2월의 요르단 계곡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공간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예루살렘이 지척인 철길로 내려갔다. 수로를 따라 내려갔는데, 작은 수로 가득 물이 콸콸 흐르는 것이 마치 생명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이 철길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철길 너머는 바로 예루살렘. 우리는 그 철길에 앉아보았다. 이 산을 넘으면 예루살렘이지만 우리뿐 아니라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바로 옆 이스라엘 땅과 이곳은 팔레스타인 C 지역.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분리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산등성이에 이스라엘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차가 있다. 여기를 넘을 수 없는 것이다.

바티르 마을은 인공 테라스를 활용한 관개 시스템과 수문을 통해 수동으로 물을 전환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2007년 바티르 마을 사람들은 2000년 된 관개 시스템을 가로지르는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경로를 변경하도록 이스라엘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연공원관리국(INPA)은 바티르의 인공 테라스도 이스라엘의 문화유산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승인했던 경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마을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돼 있다. 그리고 2012년 바티르 마을 사람들이 승소했고 2015년 1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분리 장벽을 건설하려는 IDF(Israel Defense Forces, 이스라엘군)의 요청을 기각했다. 물은 흘러가고 기차는 달리고 아몬드 꽃향기는 퍼져나가도 사람은 가로막는 거대한 분리 장벽의 폭압에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가만히 앉아 생각해본다.

나블루스에 처음 도착한 날, 시내 구경을 위해 숙소 옥상에 올랐다. “와!”하는 탄성을 지르는 그 짧은 순간에 정전이 됐다. 그때 드문드문 빛이 보이던 제레짐산, 에발산. 정전의 불편함, 거친 돌산, 굽이치던 길이 오히려 든든한 느낌을 줬다. 그것은 아마도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함께 그곳이 B 지역이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 듯하다. 바티르 마을이 정겹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역사적인 곳이라고 해도 C 지역이 주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어디나 풍성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단, 이스라엘 점령이 없는 곳에서만!

각주
(1) '와디'는 계곡이란 뜻으로 계곡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2) 바티르(Battir, 아랍어: بتير)는 베들레헴에서 서쪽으로 6.4km,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의 서안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마을이다. 바티르는 1949년부터 1967년 3차 중동전쟁까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휴전선 역할을 했던 자파-예루살렘 철도의 노선 바로 위에 있다.
(3) 마트에 가면 캘리포니아 아몬드가 많이 보이지만 아몬드의 원산지는 고대 지중해 해안을 따라 시리아, 팔레스타인, 터키인 것으로 보고 있다.
(4) 미국의 제임스 헨리 브리스테드(1865~1935)가 처음 쓰기 시작하였으며 초승달 모양을 한 비교적 비옥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일대의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이다.
(5) 200m 도보 거리인 집으로 가는 길이 위험천만한 200km 여정이 되는 상황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베니스데이즈에서 처음 공개돼 BNL피플스초이스관객상을 수상한 아민 나이파 감독의 영화다. 한국에서는 제10회 아랍영화제(2021년 9월 2일~5일)에서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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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어디나 풍성하고 아름답고 따뜻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단, 이스라엘 점령이 없는 곳에서만!

  • 대한독립만세

    아주 ㅈ1랄옘볭하고 자빠지셨네요ㅋㅋㅋㅋ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1차중동전쟁일어난직후 가자지구는 이집트영토가 되었고, 서안지구는 요르단영토가 되어서 사실상 그 지역 아랍인들 역사는 1994년 오슬로협정 이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요르단의 역사라 해도 무방한데, 그걸 1994년 오슬로협정으로 별개로 세워진 팔레스타인 당국이 이집트,요르단이랑 영국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지들 역사라고 왜곡한걸 뇌내필터링없이 곧이곧대로 쳐믿으시네요. 이런 무지성들이 마음대로 이딴 가짜뉴스 적고 계셨으니 대한민국 나라꼬라지가 잘돌아갈것 같군요. ^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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