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독재와 철권통치에 맞설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

[INTERNATIONAL1] 대선에 출마한 노동자 출신의 사회주의자 레오디 드 구즈만

[편집자주] 오는 5월 9일 실시되는 필리핀 대선에 노동자 출신의 사회주의 후보가 공식 출마했다. 급진적 사회주의 노동조합 연맹인 BMP(Bukluran ng Manggagawang Pilipino)의 의장 레오디 드 구즈만(Leody de Guzman)은 “정권교체와 체제교체를 이루겠다”라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소속된 정당인 PLM(Partido Lakas ng Masa)은 도시빈민단체인 KPML과 노동조합 연맹인 BMP 등 필리핀 내 노동 및 사회운동과 좌파 세력들이 결집한 정당이다. 그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부통령 후보는 대표적인 반세계화 지식인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월든 벨로(Walden Bello)다. 월든 벨로는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시절, 정권과 세계은행의 유착 관계와 이들이 어떻게 구제 기금을 무책임하게 사용했는지 폭로한 인물이다.1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유력 가문들이 정치를 장악하는 정치 왕조의 폐해가 이어져 왔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민중항쟁으로 물러났지만, 그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이번 대선에 출마해 현재 60%의 지지율을 받으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한 현 필리핀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가 그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으로 출마했다. 계엄령과 폭력 정치로 수많은 희생자를 냈던 철권통치의 두 가문이 손을 잡으면서 필리핀 안팎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레오디 드 구즈만 후보는 “부르주아 정당은 깊이가 같다. 그들은 모두 소수 엘리트의 대표이고, 특권과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라며 “이 기만을 끝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노동자와 국민의 개입으로 시작하자”라고 호소했다.2

《워커스》가 지난 3월 7일, 미국 사회주의 저널 《자코뱅》에 실린 레오디 드 구즈만과의 인터뷰 글을 발췌해 소개한다.


[출처: Ka Leody De Guzman 페이스북]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은 언제인가?

내가 소속된 정당인 파르티도 라카스 앤 마사(PLM)가 전당대회를 열기 3일 전에 대선 출마를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필리핀 노동운동 출신이 대선에 출마한 적이 없다. 대통령 선거 운동 자금에 30~50억 페소(700~1180억 원)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읽었다. 나에게 그런 돈은 없고, 사람들도 나를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나와 같은 노동자 계급인 대다수 필리핀 국민의 지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민도로(Mindoro)3에서 농부의 아들로 자랐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13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계엄령 시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성냥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불이 필요하면 동네 이웃 중 누가 밥을 짓는지 살펴야 했다. 나는 말린 코코넛 껍질에 불씨를 얻어왔다. 강한 바람이 불면 불씨가 확 타오르기 때문에 뛸 수도 없었다. 형제들 중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나와 여동생뿐이다. 나는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시그(Pasig)4에 있는 의류공장에서 일했다. 나는 베니그노 아키노 2세(전 상원의원이자 민주화 지도자)가 암살당한 1983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것이 독재 반대 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됐다.

필리핀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엘리트 통치다. 의회와 행정부를 정치적 왕조가 지배하고 있다. 선출직 공직자의 약 78%가 정치 왕조 출신이다. 이들은 부패로 부를 축적하고, 돈으로 선거를 이긴다. 15초짜리 TV 광고비용이 90만 페소(2100만 원)다. 방송국 세 곳에 각각 광고를 하면, 하루에 300만 페소(7000만 원)가 든다. 마닐라의 EDSA 고속도로 옥외 광고판 비용은 어떤가?

한 달에 30만 페소(707만 원)다. 포스터 한 장이 40페소(943원)다. 이것을 선거 기간 얼마나 많은 마을에 붙여야 하나. 억만장자라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이 엘리트 계층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르코스5, 아키노6, 마카파갈-아로요, 에스트라다7 등은 부패를 세습하며, 또는 억만장자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왕조의 이름이다.

어떠한 선거연합을 조직하고 있나.

나의 지지자들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다. 우리의 정치 프로그램은 노동운동이 지난 30년간 투쟁해온 것들이다. 우리의 플랫폼은 노동자, 여성, 환경운동가, 농부, 어업인, 교사, 보건의료 종사자, 공공서비스 노동자, 사회주의 단체 및 기타 풀뿌리 단체로 형성돼 있다. 엘리트 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속임수나 돈에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확고한 개혁 프로그램에 투표할 것이라 믿는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 53%가 하루 5.50달러(6,779원)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가?

현재 두테르테 행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들은 마르코스 시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것이 지금의 추악한 상황을 가능케 했다. 그들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기업 투자를 통한 낙수효과가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릴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이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엘리트 계급의 부자들만 더 부유해졌을 뿐, 그 부는 노동자에게 결코 닿지 않았다. 대기업 중심의 정책은 부자는 더 부유하게, 노동자는 더 가난하게 만든다.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복리후생 없는 계약을 강요받는다. 기업은 고령이거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일자리의 대부분은 고용 대행기관을 통해 계약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더 어렵다.

1988년 제정된 임금합리화법8은 기업이 지방에서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대기업이 지역에 지사를 설립해 더 저렴한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는 동기가 됐다. 지역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경력 인정을 받지 못하고, 즉시 해고될 수 있는 계약을 맺으며 일한다. 나는 노동자 가족 출신의 노동자다. 나의 강령은 ‘친노동’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도시 임금에 맞게 지역 임금을 인상할 것이다. 대기업은 이를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고 본다. 대기업이 내 운동에 지원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출처: Ka Leody De Guzman 페이스북]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한 500명에게 20%의 재산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외채에 파묻혀 있다. 2016년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당시 부채가 5조9천억 페소였다. 6년 후, 부채는 13조 7천억 페소로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저명한 엘리트들은 훨씬 부유해졌다. 부동산 재벌이자 전 대선 후보였던 매니 빌라는 순자산이 28% 증가해, 현재 3500억 페소(8조2740억 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 항공, 담배, 주류, 금융업에 지분을 소유한 루시오 탄의 재산은 94%가 증가했다. 돈은 소수 자본가들 손에 집중돼 있다. 전염병은 건강과 경제를 악화시켰다.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고, 노동자는 일자리와 생계를 잃었다.

또한 필리핀은 세계에서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다. 필리핀에는 매년 스무 개가 넘는 태풍이 강타하는데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고 집과 재산, 지역 산업에 피해를 입힌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민 지원과 재난 구호 이상의 것을 제공할 세입이 필요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특권층은 지역사회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재산세는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늘리는 것뿐이다. 필리핀의 세금은 퇴행적이다. 세금은 얼마를 벌었는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재산세는 이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은 많다. 대다수 필리핀 사람에 비해 부자들은 세금을 적게 낸다. 노동자의 급여는 입금되기 전에 기업주가 원천징수 세금을 납부한다. 하지만 엘리트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조세피난처를 만든다. 세금 감면 혜택도 받는다. 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한 인센티브로 산업단지와 토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그들의 이익은 서민들에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것을 바꿔야 한다.

농업 개혁을 위한 정책은 무엇인가?

지역 농업을 희생시키며 대기업이 무제한으로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쌀 관세법을 폐지
하고 싶다. 지역 농부들은 생산물을 원가에 팔지 못해 농사를 짓지 못한다.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토지를 팔라는 압력도 받는다. 쌀 관세법의 주요 지지자 중 한 명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전 대통령 후보인 매니 빌라의 부인, 신시아 빌라 상원의원이었다. 우리 정부는 지역 농어업을 개선하고 생산자의 수입을 늘리기 위한 연구개발을 우선시할 것이다. 나의 비전은 정부가 현지 생산을 지원해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한 시기에, 현지 공급업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식량 주권과 식량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 엘리트 통치와 정치 왕조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나.

물론이다. 만약 나와 월든(Walden)이 이긴다면. 헌법은 정치적 왕조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한 번도 통과된 적 없는 입법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9 정치 왕조의 국회의원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월든과 내가 이기면, ‘국민발의’라는 헌법 조항을 사용할 것이다. 국민발의는 국민의 지지만 있으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또한 정치 및 선거 개혁에는 부패한 사람의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법률도 포함될 것이다. 아울러 정치 임명에서 족벌주의를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할 것이다. 또 정치 엘리트가 아닌 후보들에게도 공정한 방송 시간을 주는 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정부가 소유한 라디오와 TV 방송국은 모든 후보자에게 동등한 광고 기회를 줘야 한다. 민영 TV 방송국과 고속도로 광고판에 게재되는 수백만 달러짜리 광고는 금지돼야 한다. 부패한 정치인과 정치 왕조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있는 한 우리는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패가 불평등한 권력 구조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나쁜 통치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부패는 큰 문제지만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을 부양하고 지역 산업을 약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우리는 많은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책은 수출 지향적이다.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고, 우리의 원자재로 만든 완제품을 훨씬 높은 가격에 수입한다. 이쑤시개나 망치, 선풍기, 신발, 양파, 생강 등 기본적인 생활용품도 수입한다. 우리의 땅과 물은 광대하고, 필리핀 국민은 굶주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저녁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대기업과 다른 나라들은 우리가 현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우리는 니켈, 구리, 금 채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다. 하지만 값싸게 수출하고 시장 금리로 수입하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한다. 그렇게 해서 막대한 외채를 떠안게 됐다. 우리는 자급자족의 경제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원시 자산을 수출하는 대신,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배치하면 된다. 먼저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각주>
1 ‘두테르테의 승리는 좌파에 무엇을 말하는가’, 정은희 기자, 《워커스》 19호
2 INQUIRER, Ka Leody hits shifting political endorsements, calls it ‘deception’, 2022.3.25
3 필리핀 군도 중부에 위치한 민도로 섬.
4 필리핀 북부 루손 섬 메트로마닐라 지방의 도시.
5 마르코스(Marcos)는 필리핀 독재자로 1965~1986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6 코라손 아키노(Aquino)는 1986년~1992년까지 필리핀 대통령을 역임했다.
7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은 필리핀 9대(1961~1965년) 대통령이다. 2001년 1월 대통령 에스트라다(Estrada)가 민중봉기로
축출되자 마카파갈의 딸이자 당시 부통령이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14대 대통령(2001~2005년)이 됐다.
8 기존에는 의회를 통해 강제적으로 임금 인상이 이뤄졌지만 1988년 ‘임금합리화법’ 제정 이후에는 각 지방임금위원회가 임금 인상을 결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지방마다 다른 임금 기준이 적용된다.
9 필리핀 헌법에는 정치적 왕조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지만, 선출된 공직자의 상당수가 정치 왕조 출신이어서 이와 관련한 법률 제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제. Meet the Philippines’ Socialist Candidate for President
출처. 《자코뱅》 2022년 3월 7일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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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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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부패는 큰 문제지만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을 부양하고 지역 산업을 약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우리는 많은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책은 수출 지향적이다.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고, 우리의 원자재로 만든 완제품을 훨씬 높은 가격에 수입한다. 이쑤시개나 망치, 선풍기, 신발, 양파, 생강 등 기본적인 생활용품도 수입한다. 우리의 땅과 물은 광대하고, 필리핀 국민은 굶주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저녁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대기업과 다른 나라들은 우리가 현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우리는 니켈, 구리, 금 채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다. 하지만 값싸게 수출하고 시장 금리로 수입하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한다. 그렇게 해서 막대한 외채를 떠안게 됐다. 우리는 자급자족의 경제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원시 자산을 수출하는 대신,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배치하면 된다. 먼저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준비해야

  • 나만 깨끗해

    필리핀 현정치세력에서 사회주의세력으로 바뀐다해도
    일시적으론 보기좋을순있으나 장기적관점으론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수있음. 사회주의자들의 평등해보이는 보기좋은 포퓰리즘은 오히려 독이 될가능성이 큼. 물론 현정치가 좋다고 볼순없음. 필리핀 국민들의 의식변화가 우선이라고봄. 선거철에 대부분휴가를 내고 일을안함. 왜냐 교통비와 2000페소정도 꽁돈이 생기거든. 가난이 무조건 정치때문은 아니라고봄. 푼돈에 놀아나는데 어떻게 필리핀이 발전할수 있겠음? 당장 가난하다고 손놓고 있는 국민자체도 문제가있음. 누가되든 뻔했던 경제라면 정치세력 교체본단 그 정치세력들이 국민의 말을 듣게 만들어야하는게 우선이되야 좀더 나은 선택일듯.
    스스로라도 공동체단위로 지역변화에 수고와 인내를 감내해야 다음세대에 나은 삶을 기대할수있다 생각함.
    필리핀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똑같음. 자기네들 권력을 위해 국민들 피만빨고 있다는건 자명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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