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프라이드’ 춤과 웃음, 그리고 단식 투쟁

[레인보우]

이 글을 쓰는 2022년 5월 19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활동가가 건강 악화로 병원에 후송됐다. 단식 39일 차였다. 함께 단식 중이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는 일단 단식을 좀 더 이어가기로 한 상태다.

솔직히 단식 투쟁만큼은 제발 하지 않기를(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 각각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 상임집행위원장이기도 한 두 사람은 이미 지난해 부산에서부터 국회 앞까지 30일을 걸었다. 체력도 많이 소진됐고, 이후에도 계속 바빠 건강을 회복할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단식 투쟁까지 한다면 두 사람의 건강에 너무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그저 말리기도 어려웠다. 15년을 이어온 싸움이고, 이번만큼은 꼭 끝을 봐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긴 시간에 걸쳐 차별금지법/평등법의 필요성을 알리고 설득해 온 끝에 드디어 10만 명이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그 힘을 받아 도보 행진을 하고,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유세단 활동까지 했다. 여론조사 결과 또한 70%의 국민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결과를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에서 대선 100일을 앞두고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는 전국 성인 1,027명 중 71.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올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67.2%가 제정에 동의했다. 그런데도 국회는 그저 차일피일 미루며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런 국회를 보며 마지막까지 무엇으로든 국회의 결정을 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무엇으로 반대할 수 있었을까. 그런 간절함으로 시작된 단식농성이었다.

하얀 옷과 변화하는 몸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단식농성을 시작한 두 사람은 소복처럼 하얀 생활한복 상의를 입었다. 때로는 진한 녹색과 분홍색 상의를 입기도 했지만 대체로 중요한 기자회견 때는 하얀색 상의를 입었다. 하얀 상의는 두 단식농성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옷차림이 됐다. 처음 그 옷을 입고 두 사람이 기자회견을 할 때는 너무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하얀 옷을 입어야 할까. 하지만 하루하루 날짜를 더해갈수록 하얀 옷을 입은 그들은 더욱 결연해 보였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자기 몸을 비우는 대신 다른 이들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국회 앞에는 매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곳의 색깔을 채워나갔다. 농성장의 천막 앞에는 무지개색 천과 가랜드가 드리워졌다. 사람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수백 개의 고깔모자에 아기자기한 글자와 그림을 붙였다. 아플리케로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를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새겨 넣기도 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동조 단식에 참여하고, 저녁이 되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요구했다. 미류와 종걸은 그 자리에 함께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다시 국회에 요구했다. 처음에 슬퍼 보였던 그들의 흰옷은 어느덧 수많은 색을 반사해내는 하얀 도화지가 됐다. 농성장으로 모이는 사람들의 색을 국회를 향해 계속 반사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그들의 몸은 빠르게 여위어 갔다. 원래 마른 체형인 미류는 말할 것도 없고, 꽤 튼실한 체형을 지녔던 종걸도 날이 갈수록 말라가 그만의 매력 있는 몸매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의 게이 생활이 부디 투쟁 후에도 양호하게 이어져야 할 텐데 말이다.) 단식은 그냥 살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을 거의 다시 만드는 일이다. 단식 후에 건강을 잘 회복하면 좋겠지만 단식 투쟁 후 건강을 제대로 회복하는 것은 오히려 단식보다 힘들 정도로 아주 길고 어려운 과정이다. 더구나 가만히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식을 하며 끊임없이 국회의원들을 찾아가고, 수많은 사람과 기자를 만나고, 회의까지 하면서 40여 일을 보낸 몸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활활 태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몸은, 표를 잃을까 두려워 기어코 바뀌지 않으려는 비열하고 소심한 국회를 향해, 변화를 위한 담대함의 과정이 무엇인지를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퀴어들의 단식 투쟁

병원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보며, 나는 문득 이런 장면이 어딘가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들이 단식 투쟁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울고 웃으며 밤새도록 춤을 추면 모를까(우리의 애환 빔을 받아라!) 단식이라니, 하는 생각으로 검색을 해봤는데 이런 장면들을 만났다.

1987년 터키에서는 쿠데타 이후 강화된 정부의 탄압과 경찰의 폭력에 맞서 37명의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성소수자들이 공공장소에서 벌인 최초의 시위였다. 이 시위 이후 정부와 언론은 성소수자들을 “폭력의 근원”이라고 비난했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싸워나갔고 숱한 탄압 속에서도 2003년 첫 프라이드 행진을 열어냈다.

2016년 미국 샌타애나 Santa Ana 지역에서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퀴어/트랜스 이민자들에 대한 구금과 학대에 항의하며 세 명의 퀴어/트랜스 활동가가 단식투쟁을 벌였다. 샌타애나 시 교도소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세관단속국과 계약을 맺고 수감자 한 명당 하루 최대 105달러를 받고 서류 미비를 이유로 이민자들을 구금해 왔으나, 이들의 투쟁으로 결국 시의회는 이민세관단속국과의 계약을 끝내기로 했다.

2019년 케냐에서는 우간다 정부의 심각한 성소수자 처벌 조치를 피해 이주한 난민들이 비위생적인 구금 시설에 감금되어 학대를 당하는 것에 항의하여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단식투쟁을 벌였고,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럴 수가. 세계 곳곳에서 퀴어들이 단식 투쟁으로 연대와 저항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가리고, 가두려는 세상에 맞서 세상이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함께 싸웠다. 애환을 담은 춤과 웃음만이 퀴어의 프라이드가 아니었다. 낙인과 차별, 폭력의 현장에서 싸워 변화를 만드는 일, 세상이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내버리려고 할 때 그곳에서 몸을 부딪쳐 서로가 서로에게 뒤섞이는 문란한 연대의 현장을 만들어 온 모든 곳이 프라이드의 현장이었다. 2022년 5월의 한국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프라이드의 현장을 만났다. 종걸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문자를 보내고, 편지를 쓰고, 건물 위에, 현수막 게시대 위에 올라가며 어떻게든 찬란한 무지개의 저항과 연대를 보이고자 했던 모두가 그 프라이드의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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