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연임과 극우파의 부상, 그리고 이민자들

[INTERNATIONAL1]파리 ‘이민자의 대사관’, 소수자의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점거운동 ①

한국의 20대 대선에서 보수 정권이 집권한 사이, 필자가 공부하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프랑스에서도 대선이 치러졌다. 프랑스는 한국과는 달리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자를 놓고 2차 투표를 실시해 대통령을 선출한다. 지난 4월 24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선 에마뉴엘 마크롱(58.55%)이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41.45%)을 꺾고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은 1969년 이후 역대 최저 결선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이기도 했다.

[출처: 마크롱 페이스북]

마크롱 연임의 의미

2017년 당시 39세의 정치 신인인 에마뉴엘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이 프랑스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던 한국 언론의 전망과는 달리,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마크롱은 경제부 장관 시절인 2016년에 노동개악법인 ‘엘 코므리’ 법안을 마련해 대다수 노동자의 노동안정성을 위협한 당사자였고, 당시 전국적인 반대 운동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추락 중인 중간 계급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이라는 비판에도―최소한의 문화적 자본을 갖춘 이들이 경제적 상황 악화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실제 빈곤화된 노동계급의 목소리는 배제됐다―이 운동이 파리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정치화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크로 당선 후, 프랑스는 바람 잘 날 없다는 표현처럼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국토부 장관 임명 직후, 자신이 재직 중인 브르타뉴 상호 공제 조합으로 하여금 배우자 명의로 파리의 상업용 건물을 임대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리차르 페랑을 국회의장으로 임명해 논란을 낳았다. 2018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마크롱의 측근인 알렉산드라 벤알라가 사복을 입고 시위 참가자를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공금횡령으로 사임한 프랑수아 드 루지 등 LREM(La République en marche: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정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며 마크롱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2018년 11월에는 유류세 인상을 둘러싼 노란 조끼 시위에서 과도한 경찰 진압으로 수십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고등교육 입시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과 파업이 지속돼 문을 닫는 대학이 속출했고, 2019년 말 연금법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준비 미흡으로 2020년 3월 17일부터 두 달간 전국에 봉쇄령을 내린데다, 2019년 5월부터 이어진 전국 공공병원 의료진 파업에도 예산 삭감과 병상 폐쇄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 결과 2020년 10월 말 2차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번 대선 직전에는 프랑스 상원이 발표한 감사보고서가 또 다른 논란의 불을 지폈다. 마크롱 정권이 미국의 컨설팅사 맥킨지에 코로나19 물류 관리에 대한 컨설팅 비용으로 1천 200만 유로(약 160억 원)를 지출한 것은 물론, 업체가 관련 세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마크롱은 대선과 관련한 어떠한 토론도 거부하면서, 노동계급의 삶에는 전혀 관심 없는 것은 물론, 프랑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마크롱의 당선과 극우파의 부상

이 같은 상황에서, 2016년 야간 점거 운동(Nuit Debout)을 기점으로 사회당 출신 대선 후보인 장-뤽 멜랑숑을 중심으로 한 ‘불복하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 : LFI)’가 201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17석을 획득하며 선전했다. 올해 1차 대선에서도 멜랑숑 후보가 2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좌파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출처: 마크롱 페이스북]

한편에서는 극우파의 영향력도 강화되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우파인 ‘국민 연합(RN : Rassemblement National)’이 1차 투표에서 21%, 2차 투표에서 34%를 득표했다. 이번 대선에는 지난 대선보다 높은 1차 23% 2차 41.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대선에선 극우 파시스트 세력으로 분류되는 ‘재정복(La Reconquête!)’의 에릭 제무르가 대선 후보로 부상해, 1차 투표에서 7%를 획득하며 유럽 전반에 확산하는 정치적 우경화 현상을 확고히 했다. 과연 이들 극우파 정치인들이 부상한 원인은 무엇일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1981년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최초의 좌파 대통령인 프랑스아 미테랑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단기적인 관점에서 최근 20년간의 맥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선 1995년부터 2012년까지 15년간 우파인 대중운동연합(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의 자크 시라크(1995~2007)와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가 집권하면서 노동계급의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이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선 부유세 70% 공약을 내건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올랑드 정권은 해당 공약을 불이행한 것은 물론이고, 노동개악법 입법 등으로 프랑스 사민주의 좌파 몰락을 자초했다. UMPS(대중연합전선인 UMP와 사회당의 PS–Parti Socialiste의 줄임말)라는 표현이 이런 인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에마뉴엘 마크롱의 당선도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후 사회당은 몰락을 가속화했고, 올해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 안 이달고는 2% 미만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그 사이 공화주의자(Les Républicains : 구 UMP)의 발레리 페크레스 후보 또한 이번 대선에 출마해 반노동·반이민 정책을 강조하며 당의 우경화를 표방했지만 4.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실제로 2012년 마크롱 당선 이후 유럽 전반의 우경화 현상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심화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2013년 1월과 11월의 테러도 이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지만, 쇠락한 구 산업도시 및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에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던 공공서비스(교육, 의료, 사회복지 서비스 등)가 축소되면서 이들의 빈곤화가 가속화한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 맥락 속에서 사민주의 체제가 약점을 드러내는 사이, 극우파가 사회적 타자들을 이러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쇠락한 노동계급의 불만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사회적 타자와 약자 중에는 여성과 장애인, 인종적 소수자들, LGBTQI 같은 성적 소수자들이 있다.1) 그중 가장 직접적인 표적으로 지목돼 국가 폭력의 최전선에 노출된 이들은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라는 슬로건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 그중에서도 인종적 소수자이며 자국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지중해를 건너온 아프리카의 이주자들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5월 중순, 약 80여 명의 이민자가 라 샤팰 드부 그룹(Collectif La Chapelle Debout)2)의 활동가들과 함께 비어있던 파리 중심가의 한 건물을 점거한 지 한 달여가 지나고 있다. 1차 대선 투표 직후에 시작된 점거는 2차 투표를 지나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 중인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이민자 운동의 역사

오늘날 프랑스의 국경이 확립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 국가 건설 과정에서 이민은 프랑스 사회의 중요한 화두였다. 19세기 말 산업 혁명 당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벨기에, 이탈리아, 폴란드 노동자의 이민을 받아들인 바 있고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 귀족을 ‘난민’으로 받기도 했다. 제국주의 북서 아프리카와 프랑스령 과들루프·마르티니크섬의 학생들이 유학하러 온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외영토(outre-mer)’의 지위는 여전히 이 역사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이집트의 레오폴드 세다 셍고르, 네그리튜드의 창시자이자 세네갈 대통령을 지낸 에메 세제르, 마르티니크 령에서 온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저자이자 정신병리학자 프란츠 파농과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끈 나달 자매 등은 일부 엘리트의 이민을 대표한다. 한편에선 프랑스는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 재건에 필요한 인력을 도입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알제리 농촌 지역의 제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남성들을 이주 노동자로 고용했다. 이들은 특히 프랑스 자동차 공장의 가장 낮은 지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으며 착취당했다.

1970년대 1, 2차 석유 파동 및 프랑스의 탈산업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이민자들의 저항을 연대기 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970년대 : 아랍 노동자 운동(Mouvement des travailleurs arabes: MTA)
● 1970년대 말 마르세유에서 지속된 알제리인에 대한 반인종주의 범죄에 대한 반대 운동(당시 상황은 알제리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 1981년 퍼조 자동차 공장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파업(프랑스 미디어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이란 호메이니 혁명과 연관 지어 이슬람주의자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을 제시한다.)
● 1983년 리옹 외곽의 이주 노동자들과 그 2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에서 경찰 폭력으로 한 청년이 희생당하면서 조직된 ‘1983년의 반 인종주의와 평등을 위한 행진(La Marche pour l’égalité et contre le racisme)’
● 1980년대 말리인 이주자가 주로 거주하던 공동 기숙사의 비인간적인 거주환경에 대한 월세 파업
● 1996년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파리 18구의 생-베르나르 교회를 점거해 자신들의 지위를 합법화할 것을 요구
● 2005년 클리시-수-부아에서 지에드 베나(당시 15세) 와 부나 트라오레(당시 17세) 경찰에 쫓기던 와중 프랑스 전력공사 관리시설에 숨어 있다가 감전사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벙리유 봉기와 이를 계기로 구체화한 경찰폭력 반대 운동
● 2009년~2010년에도 대규모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특히 말리인 노동자들)이 CGT노조와 협력해 지위 합법화를 요구하며 1년 넘게 총파업 진행.
● 2018년 모로코 출신 퇴직 노동자 ‘시바니’의 차별에 대한 판결: 1970년대 프랑스 철도청(현 국영기업 SNCF)에는 프랑스인 숙련공 철도 노동자 보조로 훨씬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가장 힘든 부서에 모로코의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됐다. 2000년대 이들이 퇴직하면서 받게 된 연금 액수가 프랑스 퇴직자들보다 현저히 낮은 것을 계기로 이들의 노동 조건과 지위에 차별에 따른 것을 증명하기 위한 법정 싸움이 15년 넘게 지속돼 2018년 판결에서 일부 승소했다. 당시 CGT노조는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측면은 물론 차별 자체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 2019-2021 : 다국적 호텔리어 그룹 아꼬르 이비스 호텔의 외주 용역 객실 청소 이주여성노동자들이 CGT호텔노조와 협력해 2019년 부터 8개월간의 파업을 비롯한 22개월간 투쟁을 지속. 2021년 5월, 사측 STN은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및 임금 상승과 노동조건 개선에 합의함.


<각주>
1) 가령 2013년에 동성혼인법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2) 라 샤펠 드부 그룹(Collectif La Chapelle Debout)은 소위 지자체나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그 때문에 명칭에 association 이나 organisation이 아닌 collectif를 사용한다. 2015년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 이민자 환대의 위기(crise de l'hospitalité en Europe)가 심화하고 파리에서도 상대적으로 서민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18, 19구 근처의 라 샤펠 전철역 근방에 이민자들의 임시 캠프가 설치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및 그들의 2세들이 처한 상황에 도움을 주고자 활동하는 소위 비영리 단체들은 프랑스에 넘치도록 많은데, 라 샤펠 드부 그룹은 이들 단체가 대개 도움을 주는 주체와 받는 대상을 구별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민자들을 ‘위해서’가 아닌 그들과 ‘함께’하는 이민자 운동을 표방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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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실제로 2012년 마크롱 당선 이후 유럽 전반의 우경화 현상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심화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2013년 1월과 11월의 테러도 이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지만, 쇠락한 구 산업도시 및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노동계급에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던 공공서비스(교육, 의료, 사회복지 서비스 등)가 축소되면서 이들의 빈곤화가 가속화한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