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앞세운 노동시간 유연화

[이슈]

“우리 노동시장의 제도·관행·의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는 시간 주권을 요구하는 근로자들과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과도한 연공성 위주의 임금체계 또한,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기업에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7월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미래회)’ 발족 후 진행한 킥오프 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주요 문제로 지적하며 가장 먼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고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노동시간 이중구조와 양극화의 문제를 노동 유연화로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미 국정과제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고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등의 노동유연화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금체계 관련해선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변화와 함께 노사 개별 당사자들의 선택과 자율권 보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간 노동시간 유연화를 목적으로 시작한 논의에서 육아기 여성은 노동시간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집단으로 인용됐다. 경직적 근로시간 제도가 육아기 여성의 경제활동을 저해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라는 장시간 노동과 차별로 고통받는 공공부문에서 만들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는 전략으로 ‘공정’이라는 화두를 이용하려 하는 듯하다. ‘공정한 임금체계’ ‘근로자의 시간 주권 보장’ 등의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워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 중”(1)이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공정 화두와 연결되는 ‘MZ세대’로 일컬어지는 젊은 노동자 그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

한 예시로 노동부는 지난 9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블라인드앱’”에서의 설문조사 결과라며, 임금체계와 노동시간이 조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동부는 “응답자의 85.6%가 현재 임금결정 기준이 공정하지 않고, 여가 및 자기계발(36.9%), 업무량 변동(26.4%) 등으로 근로시간 조정이 필요하지만, 3명 중 2명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고 답변해 현재 노동 관련 제도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노동시장을 둘러싼 경제 사회 전반의 산업환경은 변화했지만, 노동법은 과거에 머물면서, MZ세대들이 노동현장 변화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낀다”(2)라고 밝혔다.


정작 MZ는 노동시장 규제 요구

하지만 같은 날 진행한 ‘MZ세대 노조 간담회’에선 정부의 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공감대 확대라는 의도와 결을 달리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노동부가 초청한 MZ세대 노조들이 오히려 포괄임금제 폐지 등의 노동시장 규제와 노동조합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개선 같은 노동계의 오래된 요구를 들고나온 것이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간담회 참석 후기를 이야기하며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가 바로 공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연공서열 임금체계보다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임금체계 관련해선 지금도 주도력을 회사에서 갖고 있다”라며 “성과에 따라 보상을 주는 과도기적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사실 성과에 따른 처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임금인상률이 낮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등급(임금인상률 4~6%) 이상을 받아야 물가상승률을 따라가는 수준이라며, 성과에 따라 보상을 준다는 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직원들에게 유리한 성과 체계가 보장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 역시 자본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은 장시간 노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업장에서 집단적 노사자치의 실현이 ‘노동시간 주권’의 전제조건으로 꼽히지만,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를 직무별로 분할하거나 ‘부분 근로자 대표’를 통해 노조의 대표성을 약화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집단적 노사관계를 집단주의에서 개별주의로, 주요 행위자를 헌법상 주체인 노동조합에서 행정 해석상 인정되는 ‘부분 근로자대표’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유 위원장 역시 중요한 노동조건들을 ‘노사 간 자율’로 넘기려는 정부의 방향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표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소수노조로서 맞닥뜨리는 벽이 거대하고, 소수노조를 보호하는 법조차 쉽게 무력화하는 상황에서 노사 간 자율이 얼마나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는 소수노조로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시행된 지 11년째인 교섭창구 단일화는 기업이 특정 노조와의 교섭을 의도적으로 거부할 수 있어, 민주노조 사업장을 중심으로 피해가 이어져 왔다. ‘공정대표의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공정’은 회사의 입맛대로 해석된다. 지난해 설립된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가 회사에 전임 시간 분배와 지역별 사무소 및 사내시설 이용 등의 지원을 요구하자 회사는 “정확한 숫자를 몰라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라며 이를 거부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는 노조 활동에 제약을 겪다가, ‘회사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라는 인식까지 커져 지난 6월 부득이하게 체크오프를 결정하게 됐다. 유 위원장은 “인사권을 가진 기업을 상대로 노동자 한 명 한 명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체크오프 결정 후 많은 조합원들이 떠나게 됐다”라며 “몇몇 요구사항의 경우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데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빌미로 노동조합에 불이익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체크오프 후 조합원 수는 3,200명대에서 2,200명대로 줄었다.

‘MZ세대 노조 간담회’가 끝나고 민주노총은 논평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인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유연화 추진 과정에 청년세대를 앞세워 기성 노동조합을 대립·대비시키며 이른바 세대 갈등을 과장했다”라며 “이는 노동개악에 대한 명분을 삼으려고 하는 의도가 명확한 불순한 의도를 가진 대화”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는 ‘MZ세대 노조 간담회’에 대한 내용을 따로 보도자료에 담지 않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나온 간담회의 내용은 충실하게 보도자료에 담았다. 지난 8월 10일 진행한 간담회는 주요 IT 기업 노동자와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만나는 자리였는데 보도자료에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집중적으로 실었다. IT회사 직원 A씨는 “근로시간 제도를 유연화하면 혹시나 근로시간이 더 늘어나거나 임금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도 말했지만,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높여 나가는 방향은 시대적 흐름”이란 이야기가 더 강조돼 실렸다. 이밖에 “근로자의 선택권을 더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라는 정부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 의견들이 강조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비정규직을 지우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운동 과정에서부터 기득권을 가진 대규모 강성 노조의 권리를 축소하고 힘을 빼야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며 노조와 대립각을 세웠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정작 정부 정책에서 비정규직 등 취약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관한 정책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라며 “노동계에서는 이 점에 대한 지적과 대안 제시를 보다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3)라고 강조했다. 상시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원칙,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 축소, 위장도급 및 불법파견에 대한 직접고용 간주 등 산적한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의 현안에서 밀려났다. 이 밖에 정부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원하청 공동교섭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쟁의행위 행사를 통제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비정규직 투쟁에 더욱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 지난 8월 10일,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주요 IT 기업 노동자와 인사채용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2) 노동부 보도자료, 〈이정식 장관, MZ세대와 현장소통 행보 강화〉, 2022.9.22.
(3) 〈윤석열 정부 출범 정책 진단 토론회-5 자료집〉, 민주노총·지식인선언네트워크, 202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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