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는 없다

[비문명의 역습]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와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덕수 총리 역시 후보자 시절 “최저임금이 너무 오르면 기업들이 고용을 줄여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들은 사실 과거부터 재계가 사용해온 단골 레퍼토리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실질적인 캐스팅보트인 공익위원들도 법에 명시된 ‘노동자 생계비’, ‘소득분배율’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물가상승률 전망치-취업자 증가율’이라는 산식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률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향후 최저임금제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에 그나마도 기여할 수 없게 될까 봐 불안하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9천여 명의 장애인 노동자들은 이 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를 이미 특권처럼(!) 향유해온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둘러싼 지난한 계급투쟁의 논리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참고로 이들의 월 평균임금은 몇 년째 36~37만 원 선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전체 임금노동자 월 평균임금이 약 319만 원,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약 110만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금액은 임금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어떤 이들은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불법이 아니다. 최저임금법은 제6조에서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다. 그러나 같은 법 제7조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는 이들을 열거한다. “1.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 2.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특정 권리를 일부 사람들만 향유한다는 사실에 시기심이라도 발동한 것일까? 어떤 ‘비문명인들’은 2017년 11월 21일부터 85일간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하고, 일부 장애인들만 누리는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를 박탈할 것을 촉구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도 2014년, ‘한국 장애인 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최종 견해’에서 최저임금 적용 제외의 대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덧붙여 위원회는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앞장서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지속하지 말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2019년 기준,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자 중 96.7%가 보호작업장 포함, 직업재활시설에서 노동한다.)

그러나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표출되는 이 시기심에도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정부와 자본이 고수하는 임금 인상 저지 논리, 최저임금제 차등적용 논리가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언제나 승리를 거둬 왔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굳이 반복해서 말하자면, “장애인들도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을 주면 결국 사업주에게 부담을 줘서 장애인 고용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로 정리할 수 있다. 즉 모두를 위해, 이 숭고한 권리를 승인하라!

  2017년 1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폐지를 요구하며 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하고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위한 생산능력 평가, 과연 ‘과학적’인가?

그런데 이 논리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한국에서 장애인 노동자가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자로 인가받기 위해서는 ‘작업 능력 평가’를 거쳐야 한다. 작업 능력 평가는 사용자가 추천한 노동자 1인, 장애인고용공단이 추천한 노동자 1인을 기준 노동자로 설정해 두고(이 기준 노동자는 장애인 노동자와 유사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설정된다), 이 2명의 기준 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 간 생산성을 비교함으로써 이뤄진다. 그리고 비교 결과, 장애인 노동자가 두 기준 노동자 생산성 평균값의 70%에 미치지 못하면, 해당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유엔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23호가 “인지된 근로 능력 감소를 이유로 임금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정하듯,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위해 생산능력을 테스트한다는 것 자체가 실은 심각한 차별이다. 백번 양보해서 현 생산 시스템에서는 자본의 생산성 논리를 아예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평가는 마냥 ‘과학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첫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를 위한 생산능력 ‘70% 미만’이라는 기준은 지난 2018년, 정부가 그간의 국내외의 압박에 의해 기준 노동자 생산성 평균값의 ‘90% 미만’에서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새 기준이 적용된 바로 그 해,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자는 도리어 9,413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8년 장애인들이 단숨에 생산능력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 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고치인 16.4%였다는 사실은 어째 찜찜함을 남긴다. 둘째, 장애인고용촉진기금으로 비장애인 근로 지원인을 제공받아 노동하는, 다시 말해 장애인 당사자의 노동을 조력하는 이와의 협업을 통해 생산성이 기존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장애인 2,200여 명조차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다. 셋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신청 대상자의 작업 능력 평가는 이틀에 걸쳐 이뤄지는데, 기준 노동자와 장애인 노동자가 언제나 평가일 기준에 일치하는 생산성을 갖추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위조차 최저임금 미지급 사업장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호작업장 등 직업재활시설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인 만큼, 그 사정을 고려하여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작업 능력 평가가 ‘객관적 기준’이 아님을 이미 국가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만약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폐지되면, 장애인들을 낮 동안 ‘보호하는’ 사업장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질 것이라 변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보호작업장 경영이 힘들다면서도, ‘생산성 낮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보호작업장 개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호작업장은 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흔히 정당화되지만, 실상 장애인 노동자를 경쟁 노동시장으로 이전하는 데에도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렇다면 기존의 ‘직업재활’을 넘어선 대안을 마련하고, 그 사업장에 투입되고 있는 사회적 자원을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억지로 ‘정상적 노동력’이 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현존재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이상의 사회적 가치 창출 일자리를 마련하는 게 더 적실한 대안은 아닐까?

장애인에 대한 가족의 돌봄을 대신하기 위해 보호작업장이 존속해야 한다는 변명은 더 구차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장애인 돌봄에 대한 가족들의 부담 문제는 활동지원서비스 등 각종 돌봄 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노동 현장’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가짜 폐지안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는 국정감사에서도 끊이지 않고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 사안이 충분히 문제적이라는 사실이 그만큼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최저임금법 제7조의 완전 폐지에 동의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들이 몇 개 발의돼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가짜 폐지안’일 뿐이다.

단적으로 2020년 9월, 맹성규 민주당 의원 등 10인은 최저임금법 제5조 ③을 신설해 ‘최저임금 감액 제도’, 다시 말해 ‘장애인 별도의 최저임금 기준’을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정신장애나 신체장애 등으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근로자에 대하여는 (…) 최저임금액과 다른 금액으로 최저임금액을 정하”자는 것이다. 더 논할 것도 없이 이 법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제의 본 취지에 부합할 리 없으며, 그 자체로 이미 차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최저임금과 다른 최저임금’이 어떻게 최저임금일 수 있단 말인가?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등 37인은 2020년 7월,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1.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 2. 그 밖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제7조를 유지하면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승인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즉 이 법안은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생산능력에 따라, 심지어 다른 이유에서라도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계속 승인돼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김예지 의원 등 37인은 이 법안과 동시에 ‘보충 급여제’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얼핏 대안을 마련해 둔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법)’ 제21조(장애인 고용 사업주에 대한 지원) ③을 신설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을 채용한 사업주에게 최저임금의 한도 내에서 그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이원택 민주당 의원 등 10인도 지난 8월 10일, 이와 거의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원택 의원 등은 장애인고용법 제12조의2(저임금의 보조)를 신설,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을 것을 제안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장애인 근로자 또는 (…)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훈련 중인 장애인에게 임금과 최저임금과의 차액의 일부 또는 전부를 (…) 보조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51주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자본주의적 생산성, 직업재활·보호’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물론 ‘보충 급여제’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을 지금보다 나은 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는 안이기에,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를 통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결국 최저임금 적용 제외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이 만에 하나 시행되더라도 기껏해야 최저임금 미지급분의 ‘일부’만이 장애인들에게 지원될 것이기에 ‘최저임금 적용 제외’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장애인 노동자가 그 자체로 모멸감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작업 능력 평가’를 앞으로도 계속 감내해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최저임금 미지급분의 일부를 사업주 대신 지급해 주는 만큼, 직업재활시설이건 아니건 더 많은 사용자가 이 법을 악용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신청을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이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무엇이 대안일까?

윤 대통령이 알면 참으로 기뻐할 만한 사실이 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노동자 상당수는 실제로 현재의 노동조건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노동함으로써 사회적 참여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를 향유하는 이들이 이 사회에는 현존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기존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 노동자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상기할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해 6월 16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민주노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럼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사실 예산만 적정하게 마련하고 투입할 수 있다면, 이 문제는 지금 당장도 다음의 단계를 거쳐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1. 사업주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 내야 하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지금과 달리 사업주가 ‘실제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한다. 2. 이렇게 확대된 장애인고용촉진기금을 2004년 장애인고용촉진기금 고갈을 명목으로 대폭 축소한 바 있는 장애인고용장려금을 대폭 인상하는 데 사용한다. 3. 단, 고용장려금 제도를 악용할 수 없도록 최저임금 미지급 사업장에는 장애인 고용장려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고용장려금을 ‘인건비 등 장애인 노동자의 처우개선’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최저임금법 제7조를 삭제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사실은 미봉책일 뿐이다. 근본적인 대안은 자본이 요구하는 생산성에 따라 노동자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 생산시스템에 도전할 때만이 마련된다. 앞서도 언급했듯,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는 ‘이윤 창출과 무관한 사회적 가치 생산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이 도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생산성이 가장 낮은 장애인을 최우선으로 고용해, 이 노동자들에게 각종 장애인 권리 실현 노동을 수행할 기회를 제공하는 최저임금 일자리인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이런 차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미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도 일할 권리’를 누리는 이들이 9천여 명이나 현존한다는 사실은 언제든 모든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문제는 비장애인 노동자들에게도 결코 남 일이 아니다. 장애인-비장애인 노동자들의 연대가 분쇄할 논리는, 그리고 그 논리에 의존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적이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현행법상으로도 시행할 수 있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막아내고, 모든 저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제로 최소한의 생활 안정이라도 보장받기 위해, 최저임금제 전면 개편 투쟁에 장애계-노동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최저임금을 받지 않고 일할 권리’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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