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에서의 빛나는 불복종의 순간

[질문들]

광화문광장이 다시 열렸다. 서울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광화문광장의 변화에 대한 홍보를 이어가고 있다. 변화와 함께 내세우는 주요 메시지는 ‘공원과 같은 광장’에서 ‘쉼과 문화’를 즐기라는 것이다. 공연과 전시, 탐방 프로그램이 열리고, 광장 재개장 이벤트의 일환으로 ‘광화문광장에서의 빛나는 순간’을 주제로 한 짧은 영상과 사진 공모전 또한 진행되고 있다. 5천 그루의 나무 그늘이 주는 도심의 휴식이, 발굴된 육조거리 유구를 통해 알게 된 역사가, 시원한 물줄기의 분수 터널이 보여주는 청량함이 ‘빛나는 순간’일 수 있겠다. 이 이벤트는 나에게 변모한 광장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만을 보여달라는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그 순간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빛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광장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재개장 전부터 광장에서 정치적인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시의 방침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시끄럽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집회는 공원 같은 광장이 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다. 집회는 왜 ‘광화문광장에서의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없는가?

  영화 <애프터 양> 스틸컷

나는 그 ‘빛나는 순간’이라는 문구에서 영화 〈애프터 양〉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양’은 안드로이드 인간으로, 제이크 가족의 구성원처럼 지내는데, 어느 날 전원이 켜지지 않아 가족들은 양의 저장공간을 들여다본다. 양의 기억은 우주의 은하계처럼 빛나고 있다. 별처럼 빛나는 그곳은 하루 중 단 몇 초만 저장할 수 있는, 양의 특별한 순간이 기록돼 있다. 짧은 영상을 따라가면 사랑과 슬픔, 기쁨과 그리움의 감정을 만들었을 양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 영화에 상상을 보태 나의 기억도 양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본다. 기억의 우주에서 어떤 기억은 더 밝고 또 어떤 기억은 옅지만 깊은 빛을 가지고 있다. 슬픈 푸르스름한 빛을 가진 기억도 있고, 다른 기억은 따뜻한 노란빛을 띤다. 기억이 품고 있는 감정이 다양한 만큼 다른 모습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이 기억의 우주에 광화문광장의 기억도 많이 있다.

빛나는 광장의 기억

덕분에 한동안 꺼내 보지 않았던 기억까지 떠올려봤다. 2008년, 아직 광화문광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세종로는 저항의 거리이자 민주주의의 광장이었다. 2008년 5월 31일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물대포에 흠뻑 젖었을 때, 온라인으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옷과 담요를 보내줘 추위에 떨지 않고 새벽까지 있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아준 옷들을 오토바이로 거리 곳곳에 나르는 모습은 상상하지 못한 연대의 힘이었다. 연대의 밤을 보내고 맞이한 새벽엔 경찰의 폭력을 맞닥뜨렸다. 경찰이 내리치는 곤봉과 휘두르는 방패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쓰러졌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민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은 매주 거리로 나섰다. 그 거리의 힘은 집시법의 야간집회 금지조항을 바꿔냈다.

2009년 8월 1일 광화문광장을 개장하면서 서울시는 시민들의 공간으로 돌려주겠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는데 그 ‘시민’은 시민 모두가 아니다. 8월 3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사회는 광화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는데, 불법집회라며 경찰이 10명의 활동가를 연행했다. 촛불집회의 호된 교훈 때문인지 그해 권력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공권력을 동원했다. 용산참사와 쌍용차 파업 강제진압뿐만 아니라 기자회견만 해도 연행했다. 컨테이너로 만든 ‘명박산성’만큼 괴이한 경찰버스 차벽으로 뺑 둘러싸인 서울광장도 목격할 수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날이 갈수록 억압받았다. 집회건 기자회견이건 삼보일배건 거리에 서는 사람들을 계속 연행하고 소환했다. 2011년 4월, 인권 단체들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한 경찰의 강제해산과 연행에 맞서 비폭력 직접행동을 선언하고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그러자, 경찰이 상황을 기록하고 주변에 머물렀다. 광장 관리인이 와서 외국인 관광객도 오는 곳에서 왜 이러냐고 했다.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내 모습이 국가적 부끄러움이라는 건가? 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가 부끄러웠다. 5월 10일 나와 두 명의 인권 활동가가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함께 피켓을 들었다. 우리는 30분 만에 연행됐다. 경찰서에서 48시간을 보내고 재판까지 한 결과, 미신고 집회를 한 죄와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 30만 원을 내야 했다. 나는 분하지만 당당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그해 여름, 진상조사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농성과 단식을 했다. 세월호 천막은 늘 시민과 유가족과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슬픔을 위로하고 애도하며 진실을 찾는 길을 만드는 그 공간을 우리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라고 불렀다. 2015년 세월호참사 1주기에 시민들은 차벽에 가로막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4월 18일 다시 모였다. 우리에게는 함께 애도하고 기억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액에도 사람들은 거리를 지켰다. 2014년부터 2015년 나는 몇몇 사람들과 토요일 4시 16분 세월호 광장에 모여 함께 책을 낭독했다. 세월호 광장의 공간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슬퍼하며 곁에 선 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행동하는 기억416’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토요일의 친구들을 기다렸다. 그곳에는 우리처럼 광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광장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서명을 받고 선전물을 나눠주는 이들이 있어 진실, 존엄, 안전의 가치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2015년, 10만이 모이는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경찰은 갑호비상 명령을 발동하고 전국 19대의 살수차를 총동원했다. 광화문광장은 이중의 차벽을 세워 진입을 막았고, 청계광장, 안국동까지 차벽을 설치했다. 박근혜 정권은 광화문광장을 넘어설 수 없는 권력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권력의 공간으로 들어오려는 시민을 막기 위해 차벽 뒤의 살수차는 지치는 기색도 없이 쉴 새 없이 물포를 쏘고 또 쏘아댔다. 이날 조준 사격하듯 쏘아대는 살수에 백남기 농민이 쓰려졌다. 분노와 비통함의 시간 속에도 끊임없이 권력과 싸움을 쌓아가던 중 2016년 11월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함성이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촛불은 광장을 가로막던 차벽을 사라지게 하고, 권력이 독점하던 공간을 채웠다. 권력자를 끌어내린 촛불의 경험은 저마다의 기억의 우주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출처: 서울시]

다시 광장에 서겠다

나는 광장에 있었다. 그곳엔 당신이, 우리가 있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세우기 위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분노를 모으기 위해 광장에 섰다. 그러나 국가는 내 기억의 우주 속에서 빛나는 그 광장에 다시 그런 모습으로 서지 말라고 한다. 그 광장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 활동 등’을 위한 공간이어야만 한다고.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로 번질 가능성이 높거나 정치적 목적을 가진 행사를 여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허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교통·법률·소음·경찰·행사 등 5개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광화문광장 자문단’을 꾸리고, 광화문광장 조성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엄격하게 심사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대체 어떤 자격과 권한으로 나의 저항과 민주주의의 요구를 심사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내 자신의 집회의 권리를 실천하는데 허락을 요청한 바 없다. 정치적인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서울시야말로 너무나 정치적이지 않은가!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며 시민의 휴식과 집회를 대립시키지 말라. 사용이 제한된 광장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서울시장의 손아귀에 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역사 문화 중심 공간’이라고 광장을 소개하고 있다. 서울시가 전하는 광장의 역사에는 조선시대의 역사 복원은 있어도 광장 민주주의의 역사는 없다. 축제와 공연의 문화만을 보여주려는 광장에 시민의 정치적 실천은 없다. 광장에 선 우리의 빛나는 순간을 지우는 것은 광장의 의미를 쌓아왔던 시민들의 집단적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고, 저항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모욕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서울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만 소비하는 시민으로 머무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시 불복종으로 광화문광장에 서려고 한다. 나의 ‘광화문광장에서의 빛나는 순간’을 불복종 행동으로 내 기억의 우주에 새겨 넣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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