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그리기가 두려웠다.
먼저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몰랐고, 그 표현기술도 미숙하여 제대로 된 멋진 그림이 나올것을 기대할 수 가 없었다. 노동자그림반을 꾸려나가고 있었지만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 잠자는 모습, 남편 공부하는 모습, 친구 밥먹는 모습, 야외스케치, 정물화 등을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기술 습득과정이어서 불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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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장 : 냉장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 해냈다. |
그래서 깨달았다. 그림이 무엇인지, 왜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었는지를 .. 그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자신의 안을 깊이 깊이 성찰하지 하지 않으면 끌어낼수 없는, 충분한 내면의 고뇌를 거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고도의 추상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우리 노동자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쉽게 접근해야 됨을 또한 깨달았다. 먼저 자신의 기대 수준을 낮출 것. 당연히 숙련이 덜 되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미숙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기술에 연연해 하지 않아야한다. 중요한 것은 세련된 기술이 없는 대신 자신만이 그려낼 수 개성이 있고, 자신의 생각, 내용을 가진 장점이 있다. 해서 얼설픈 제도교육의 습득으로 그려내는 그림보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남아있는 순진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자신의 공장생활을 그려내고, 자신의 투쟁을 형상화한 그림은 비록 표현에서는 서툴렀지만 얼마나 정감있고, 그 노동자가 그 속에 있고, 그 자체로서 작품으로의 완성감이 있었는지 내가 느낀 그 환희는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 단점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는 우리 노동자들 만의 위대한 장점을 극대화 하는 것이 우리 노동자가 그려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