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도하 각료회의와 농업, 농민문제

초국적 자본에 의한 농업-농민 지배 구상, 농산물 독점과 농민의 노동자화가 핵심

채만수(노동자의 힘 회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지난해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카타르(중동의 걸프만에 위치한 이슬람 토후국
가)의 도하(Doha)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4차 각료회의는 그것이 개최
되기도 훨씬 전부터 전세계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신자유
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여 세계 각 국에서 모여든 십 수만 명의 노동자·민중
의 격렬한 항의 시위로 1999년 12월 초 미국 서북부의 씨애틀에서의 제3차 각
료회의가 실패로 끝난 후 처음 열리는 전체 각료회의였기 때문이다. WTO의 공
식 발표문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는 21개의 주제가 논의되어 50여 항목에 달하
는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 농업문제는 써비스 교역문제와 더불어 핵
심적인 의제의 하나였다.

1994년 '농업협정'에서 시작된
자본의 신자유주의 농업 전략

WTO의 전신인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에서 농업 혹은 농산물
의 교역문제는 대체로 다자간 교섭·합의 대상의 외부에 위치해 있었으나, 우
루과이 라운드(1986~94)를 통해서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 본래 GATT의 규정
들은 농산물 교역에도 적용되긴 했지만 구멍이 많아서 수입 할당제나 보조금,
수출 장려금 등 비관세 조치들이 성행하면서 과잉생산 등 농산물 교역이 심히
왜곡되었다는 것,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보다 강화된 엄격한 규칙을 적
용함으로써 "공정하고 시장 지향적인 교역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1994
년의 '농업협정'--우르과이 라운드의 결론을 총괄하여 WTO체제를 출범시킨 '마
라케시 협정(Marrakesh Agreement)'의 일부--의 정신이자 이번 도하에서 재확
인된 목표다.
그리고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WTO는 회원국들에게 ◇ 모든 비관세 장벽
의 관세로의 전환을 포함한 시장접근의 확대, ◇ 농업생산의 증대를 장려하는
지원금의 폐지, ◇ 수출 지원금 등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각종 보조금의 폐지를 새로운 규칙으로서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이
고 점진적인 이행 조치로서, 선진국만을 간단히 예를 들면, 1995년에서 2000년
까지 6년 간에 걸쳐서 대략 86~90년을 기준으로 볼 때, 농산물에 대한 수입관
세율은 평균 36%, 국내 보조금은 20%, 수출 보조금은 36%, 그리고 보조금 지
출 수출 품목 수는 21% 삭감하도록 강제하였다.
'농업협정'은 또한 이 이행기간이 끝나기 1년 전인 2000년 1월부터 새로운 협
의를 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실패로 끝난 1999년의 씨애틀 회의는, 당
시 '뉴 라운드' 혹은 '밀레니엄 라운드'로 불렸던 그 협의를 개시하기 위한 것
이었다. 그런데, 씨애틀 회의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협의는 '협정'의 규정에
따라서 2000년 1월부터 시작되었고, 11월의 도하 회의가 개시되기까지 121개
회원국에서 제안서가 제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2단계 협의가 비공식적이
고 사실상 비밀리에('off-the record') 진행되고 있다. 도하 회의의 결정에 따
라 내년 2003년 3월 31일 이전에 이후 각 국의 의무 내용의 틀이 결정되고,
2005년 1월 1일까지는 협의가 마무리될 것이다.

농산물교역 자유화 추진의 핵심
미국의 거대 독점자본

케언즈 그룹(Cairns Group)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캐나다, 칠레,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 등 17개 농산물 수출국들도 물론 농
산물 교역 자유화의 주요 추진자다. 하지만 그 교역 자유화의 핵심에는 역시
미국,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거대 독점자본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예컨대
2000년도의 경우 세계 수출시장의 12.7%를 점하면서 708억7천만 달러의 농산물
을 수출하고 있다. (제2위인 프랑스의 수출 규모는 365억2천만 달러, 6.5%로
서 미국의 반을 겨우 넘어서고 있다.) 미국은 수입에서도 그 규모가 666억9천
만 달러, 점유율 11.0%로서 역시 제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42억 달러 가까운
수출초과를 기록하고 있다. 이 수지 흑자 자체가 연간 수천억 달러의 국제수
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으로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일 뿐만 아니
라, 그것이 수출이든 수입이든 농산물 교역의 확대는 일반적으로 농산물을 취
급하고 있는 독점자본의 이윤의 증대를 의미한다.

농산물 시장 개방과
한국 독점자본의 이해관계

한국은 농산물 순수입국으로서 2000년도의 경우 총수입액 129억9천만 달러, 세
계 수입시장의 2.1%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5억4천5백만 달
러로 일본(92억9천만 달러), 캐나다(76억4천만 달러), 멕시코(64억9백만 달러)
에 이어 미국의 4대 수출시장의 하나이다.
재벌을 위시한 한국의 독점자본 역시 농산물 시장의 개방과 확대에 절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 자신이 농산물의 수입과 가공·판매의 주체로
서 이들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이윤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해외로부터의 저렴
한 농산물의 수입은 저임금의, 따라서 고이윤의 주요한 물질적 기초가 되기 때
문이다. 따라서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표하여 지금 한국 정부는 WTO의 농산물
교역 자유화 정책을 구실로 삼아 농산물 시장의 개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
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가격 지지 정책 대신에 휴경 보상금제 같은 것이 도입되는
등, 식량, 특히 쌀의 감산정책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에 있다. 나아가 농지 소
유 정책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어서, 1996년에 농업진흥지역에서의 농
지 소유 상한이 폐지된 데 이어 지난 4월 초에는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합법화
하기 위해 주식회사 형태의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 등을 허용하는 것을 주 내용
으로 하는 '농지제도 개선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사실 한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도 '농민층 분해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왔
다. 자본의 축적과 자본주의의 확대·성장은 다름 아니라 자본-임금노동 관계
의 확대를 의미하는데, 이는 농민들을 거대하게 이농·탈농시켜 임금노동자로
만듦으로써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체 인구에서의 농업인구 비율은
1950년대 초의 70% 이상에서 지금은 10% 남짓으로 축소되었고, 그나마 고령자
층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농인구의 이러한 고령화도 정부
의 폐농(廢農) 유도나 대자본으로의 농지 소유의 집중, 농산물 수입시장 확대
의 주요 구실의 하나로 되어 있다.

정부의 쌀 감산과 농지 정책
농민경제에 날린 최후의 펀치

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가 "WTO 농업개방 체제에서 외국농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 운운하면서 이렇게 급격한 정책변화를 추진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은 더
이상 농민을 중요한 정책변수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 자본
은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방대한 양의 잉여농산물을 기초로 저곡가 = 저임금
정책, 농민층 분해정책을 펴면서, 한편에서는 물론 경찰 등 조직된 폭력을 통
한 억압적 수단을 동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나 급격한 농가의 몰락이
자본주의 사회체제 전반의 결정적인 위기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가격지지 정
책 등을 통해 그 속도를 관리해 왔는데, 이제 농민경제에 최후의 마무리 펀치
를 날려도 체제 안정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농민층의 분해의 이러한 완성은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 획득한, 말하
자면 개개의 독립적인 노동개체와 그의 노동조건들의 결합에 기초한 사적소유
가, 타인의 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에 의해서 구축되
는"(MEW 23, p. 790) 것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이
번에 수탈되는 것은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이다"(같은 곳). 그리
하여 자본의 독점이 발전하는데, "자본독점은, 그것과 함께 그 아래에서 개화
한 이 생산양식의 질곡으로 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것들
의 자본주의적 외피와는 조화할 수 없게 되는 어떤 한 점에 도달한다. 이 외피
는 분쇄된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조종이 울린다"(p.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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