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기 조절중? 아니면 또 위기 준비중?

환율변동을 통해 한국 경제 들여다보기

이정현(노동자의 힘 회원)

최근 원-달러 환율이 연일 하락하고 있다. 5월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
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달러당 1269.8원을 기록하여 1260원대로 떨어졌는
데, 이는 작년 12월6일 이후 처음이다. 올 들어서는 불과 한달 여 전까지 달러
당 1330원대를 유지하던 것에 비하면 급락추세다. 지난 4월25일 달러당 1297.6
원으로 1300원대 이하를 기록한 이래 5월 들어 1280원대로, 이어 정부가 금리
를 인상한 5월7일부터는 1270원대로, 그리고 5월16일 1260원대로 연일 하락기
록이 갱신되고 있다. 이게 의미하는 게 뭘까.

알다시피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원화의 가치가 달러 가치에 비해 상대
적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원화 강세, 달러 약세로 표현되기도 한다. 미 달
러 가치는 부시정권이 고달러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
제 외환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경제의 회복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
이라는 해석들이 덧붙여지면서 미국경제의 재침체론도 나왔다. 지수상으로는
회복되고 있지만 회복되던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른바 '더블 딥'이 우
려된다는 것이다. 미국경제는 작년 12월부터 지표상으로는 GDP 성장률과 산업
생산, 그리고 자동차 판매 등에서 호전 양상을 보인 반면 개인소비지출 증가율
이 둔화되는 등 소비자 지표들이 하락을 보이는 한편 주택경기가 둔화되고 있
고, 실업률이 02년 4월에 94년 8월 이후 최고치인 6.0%를 기록한 데다 경상수
지 적자가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낙관이 어려운 상태다. 미국의 주가는 지
난 3월 초순에 비해 7-17% 가량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 달러화는 2월 이후
부터 유로화에 대해, 4월 이후로는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여왔다.

금리가 일국적인 경기조절 수단이라면 환율은 각국간의 조절수단이다. 물론 환
율과 금리는 쌍방에 영향을 미치고, 또 타국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영향을 주
기도 한다. 현실 경제에서 만일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환율이 급등한
다면, 특히 대외거래에 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자본의 수익률이 악화되고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경제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수입할 때는 환율이 낮은
것이 유리하다. 1달러를 사들이기 위해 1200원만 내도 되는 상황과 1300원을
내야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외국돈을 빌려쓸 때도 빛 상환을
위해서는 환율이 낮은 게 유리하다. 그런데, 수출할 때는 환율이 높은 것이 유
리하다. 1달러 치 물건을 해외에 팔았을 때 1200원이 들어오는 것과 1300원이
들어오는 것의 차이 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떨어져 원화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한국경
제, 다시 말하면 한국 자본의 수익률이 높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정부측에
서 급격한 원절상에도 외환시장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으면서 "현실 경제를
반영한 것"(재경장관)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은 한국 자본의 수익률과 채산성
이 환율하락을 감당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표상으로는
4월말을 경과하면서 경제호전 지표들이 연달아 발표되고 논란은 있었고 여전
히 있지만 5월7일 금리 인상책을 쓴 것은 정부측이 경제호전 쪽으로 무게중심
을 이동하고 경기부양이 아니라 조절책으로 나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최근 자본측의 움직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리인상 직후인 5월9일
전경련은 회장단회의를 열어 금리인상은 시기상조이며 저금리 정책기조를 계
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기업의 수출과 투자 회복이 미약한 데 찬물
을 끼얹은 처사라는 불만의 표현이다. 한편 환율 하락이 계속되자 무역협회는
수출업체 중 10%가 적자로 돌아서는 등 총 74%가 채산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
고 있다면서 적극적인 환율관리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한국자본은 지금까지
저금리와 고환율 아래서 채산성을 맞추어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럼 환율은 어떻게 결정될까. 금리도 마찬가지지만 환율도 다른 많은 교란요
인들을 일단 고정적인 것으로 놓고 보자면, 금융적인 현상이 아니라 실물경제
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기업측의 채산
성, 즉 자본의 이윤율과 이윤량 여하에 의하여 결정된다. 한국 자본의 이윤율
이 붕괴 당시보다는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97년 일거에 붕괴를 경험하였던 한국자본의 수익률과 채산성은 어떻
게 02년 4월말부터 정책당국이 대내적 조절수단과 대외적 조절수단을 동시에
변경할 만큼 호전되었다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는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력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상장기
업 시가비중을 기준으로 볼 때 96년말 시점에서는 외국인의 주식비중이 13%,
국내기관 주식비중이 30.6%였던 데서 97년을 거치면서 98년에는 외국인 비중
이 18% 국내기관 비중이 13.6%로 역전되었으며, 이후 외국인 비중은 99년
21.7%, 2000년 27%, 2001년 36.6%로 대폭 증대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주가상승
으로 인하여 이들 외국인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몇 배 장사를 했다느니
하며 배를 두드린 것은 외자들이다. 그리고 외자가 투자한 곳들은 어김없이 국
내 독과점 기업들 혹은 우량기업들이다.
그리고 외자와 연합한 국내 독점자본들은 정부의 민영화와 가차없는 '경쟁력주
의'에 의한 구조조정의 과실을 독점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수탈구조를 정리해
고-변형시간제-불법파견노동 등의 고용유연화 수단을 통해 정립하면서, 수익기
반을 확충해 왔다.
최근 전면적 민영화 대상으로 떨어진 KT와 한전발전자회사들 그리고 가스공사
등에 대해 삼성, LG, SK, 롯데 등 재벌그룹들이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무노조주의 혹은 회사주의노조양성을 축으로 하여 철저하게 자본
측에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배격하는 경영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곳들이다.
반면 자본측 내부에서도 외자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중소 자본들은 그
들이 자본이기를 희망하는 한 대자본의 그늘 밑으로 편재되거나 아니면 자본이
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본에 의한 자본
의 수탈'이 가속화되는 가운데서, 중소 자본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 그리
고 '유연한 고용형태'로 고용되어 있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 더욱더 극악하게 수탈해야만 자신을 자본으로서 유지할 수 있는 중소자본
에 의하여 층층이 수탈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자본의 현재의 채산성 호
전 내지는 이윤율 회복, 혹은 경기회복 국면의 실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 속에서 환율 하락은 앞으로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까. 정부는 현재 급락 중인 환율이 125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으며, 금리도 8월쯤 추가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
정부가 환율하락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원화강세를 지속시킨다면, 그리
고 금리를 추가 상승한다면, 그것은 외자와 국내 독점자본에 의한 자력조절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가 외자와 국내 독점자본
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착취-수탈 구조의 지속적인 강화를 최대한 지원하겠다
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정부의 정책은 어차피 자본측의 각 분파
의 이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표적 분파의 이해관계를 축으로 하여 짜여지게
되고, 즉 거꾸로 말하면 지배적인 자본분파에 의하여 정부의 정책이 지배되고
있고, 그렇다면 어차피 그들이 소위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율절하에 대해 감당할 수 있음을 자신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정책들은 그러
나 어차피 단기적 경기조절성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
이 새로운 위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5월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데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재무구조는 개선되었으나 채산성은 악화되었다. '1000
원 어치를 팔아서 4원을 남겼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가 낙관하고 있는 정책기
조의 근거인 채산성 혹은 경기회복세의 기초가 여전히 97년 경제위기를 불러
온 자본의 과잉축적 상황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환율하락으로 인해 실제 직접적으로 채산성 악화에 부닥치지는 않는다고 하더
라도 자본측은 '환율하락=수출여건에 불리' 등식을 최대한 이용하여 노동자-민
중에게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의 아니 그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희생해줄 것을
또 다시 고통분담의 이름으로 강제하게 될 것이다. 특히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의 업종에서 그러한 자본측의 공세는 더 심할 것이다. 현재 달러-엔이
달러당 128엔대를 기록함으로써 자본측이 엔-원의 적정수준으로 계산하고 있
는 10:1 수준이 깨지게 됨에 따라 일본자본과 품목으로 경쟁하고 있는 자동
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의 경우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속에
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비정규직화와 빈곤화 등 노동자-민중에 대한 끝없는
공격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노동자-민중이 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와 미
래 사회에 대한 전망을 준비하고 즉시 실천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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