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 투쟁 제안①] 우리는 소망한다 진짜 주5일 근무제를

[편집자주] 오는 26일 오후1시 서울에서는 '공무원노조 탄압 분쇄와 공무원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전국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 3월 23일 출범대회를 가진 이후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으면서도 산하 12개 본부와 수백개의 지부를 건설하는 등 조직이 강화되고 확대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문화사회>에서는 이번 총력투쟁의 주요 과제이기도 한 주5일근무제 도입과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에 대한 두 개의 글을 싣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국 공무원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 일시 : 2002년 5월 26일(일) 13:00
- 장소 : 서울지역(추후공지)
- 주최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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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망한다 진짜 주5일 근무제를

지난 4월부터 공무원들의 월1회 토요휴무를 시작으로 주5일 근무제가 부분적이나마 시행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앞으로 월1회 토요휴무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후 점차 월2회 격주휴무를 거쳐 완전한 주5일제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토요휴무를 실시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이어 공공부문까지 부분적이나마 주5일제가 실시됨으로써 이제 주5일 근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주5일 근무제인가! 그러나 주5일 근무제의 법제화를 통해 모든 부문에서 동시에 주5일제를 실시하려는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공무원 주5일제 실시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주5일제를 원하고 있고 정부 또한 여러 차례 주5일 근무제의 도입을 약속했지만 주5일제의 법제화가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수년에 걸쳐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했다는데 거기서는 무엇을 했길래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5일제를 도입하겠다는데도 노동자들이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우리가 주5일제를 도입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시간단축의 필요성은 한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길어 '세계 최장 노동시간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고 있는데서 기인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통계연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노동시간은 1999년 현재 주 50.0시간으로 비교대상 75개국 중에서 5번째로 길며 OECD국 가운데는 단연 1위이다. 임금노동자를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2000년 현재 2,474시간으로, 1,300∼1,600시간대의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국이나, 일본(1,853시간), 미국(1,869시간)을 훨씬 상회하고 있고, 2위인 체코(2,018시간)보다 무려 450시간 이상이나 길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늘여 산업재해를 늘린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었다. 한국의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자의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99년 현재 한국의 중대재해율은 1.9로서 영국의 24배, 스웨덴의 11배, 독일의 6배, 미국·프랑스의 4배에 이르며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홍콩보다는 2배 높고, 멕시코, 태국 보다도 2배 높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더라도 지난해 산재로 인한 사망자수는 2,474명에 달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장시간 노동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전쟁 같은 노동을 계속해야만 한다.

더구나 IMF 시기를 거치면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매우 악화되었고, 비정규노동자의 급증으로 고용불안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로 진출하는 청년실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따라서 단기적이고 임시방편 위주의 고용정책을 넘어 중기적 고용유지·창출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사람자르기식 구조조정은 현재의 고용불안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여 실업의 구조화를 불러온다. 따라서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주5일제의 도입은 연간 2,500시간대에 달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줄여 노동자의 삶을 질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최근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내용을 들여다보면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를 나누는 주5일 근무제라는 기본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임금과 노동시간의 유연화에만 그 초점이 맞추어진 채 오히려 기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중소 영세 비정규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어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그 동안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공익위원안(2001.10)을 비롯하여 이른바 주5일제 합의대안(2001.12), 최근의 상임위원 조정안(2002.4)에 이르기까지 여러 안들을 내놓고 있으나 이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 안은 모두 미미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업종과 규모에 따른 단계적 도입 변형근로(탄력근로제) 확대 휴가일수 대폭 축소 생리휴가, 주휴 무급화 초과노동한도 확대 및 할증률 인하 등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내용들을 뼈대로 삼고 있어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기본정신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특히 도입시기와 관련해 노사정위원회의 조정안에 따르면 20인 이상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5백83만명은 2006년 안에 5단계에 걸쳐 도입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55%에 달하는 20인 미만 7백8만명의 주5일 근무 도입시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해 사실상 못박지 않고 있다. 차기 정권 임기가 2007년에 끝나는 점을 감안하면 빨라도 2010년이나, 아니면 자칫 언제 주5일 혜택을 볼지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5일 혜택을 언제 볼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주5일 도입 초기비용을 떠 안게 돼 노동조건의 후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과노동한도를 16시간으로 늘리고 최초 4시간에 대한 할증율을 25%로 낮추는 것은 실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주5일제 도입의 근본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휴가일수를 축소하고 휴가 미사용시 수당지급을 하지 않게 되면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큰 폭의 임금 삭감이 일어나게 된다. 변형근로시간제의 확대 또한 유통서비스업, 계절산업과 수출산업, 교대근무사업장을 중심으로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게 될 뿐 아니라 수당 없는 연장근로를 합법화하고, 생활주기를 파괴해 노동자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될 것이다.
주휴무급화,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을 법부칙에 선언적으로 명시하는 것 또한 무노조사업장,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조직노동자와 달리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없어 실질임금의 삭감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생리휴가 무급화도 사실상 생리휴가를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모성보호를 심각하게 후퇴시킬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대로 주5일근무제를 실시한다면 노동시간단축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매우 큰 폭의 임금삭감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며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은 그림의 떡에 불과할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은 세계최장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에 그 목표가 있는 것이지 다른 노동조건의 희생하에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기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적은 없다. 지금도 주5일제의 도입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늦은 만큼 지체없이 정부가 노동조건의 저하없는, 비정규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희생없는 주5일제의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

※ 이 글은 <공무원노조>(2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박강우 (민주노총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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