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국의 종합주가지수가 48포인트(5.73%) 폭락하면서 800선이 무너지고 코스닥 증시도 28.84 포인트가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이며 '금융시장 패닉 상황'을 운운하며, 각종 분석과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를 쏟아냈다.
그 이틀 후인 12일 주가는 26.07포인트가 급등하며 안정세를 찾는 것처럼 보였지만, 13일 다시 27포인트 폭락, 14일 21.67 포인트 폭락하는 등 주식시장은 계속해서 큰 폭으로 요동치고 있다. 주가뿐만 아니라 환율도 급등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지난 15일자 <사회화와 노동> 223호 앞부분에 실린 통계치이다.
최근 경제뉴스는 연일 주가폭락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그리고 주가폭락은 경제의 파산선고인 것처럼 불안분위기를 함께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주가는 정말 우리 경제의 지표인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돈은 돈을 먹을뿐, 생산물은 만들어내지 못하지 않나.
15일자 <사회화와 노동>을 쓴 사회진보연대의 정지영 정책부장을 만나 초보적인 이야기부터 들어 보았다.
"우리나라는 IMF를 겪으며 금융세계화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전세계는 이미 과잉생산체제로 넘어가 지속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금융이라는 거품경제로 이 위기를 관리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자본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겪으며 위기를 돌파하고자 세계 금융경제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는 셈이죠."
이미 자본주의 경제는 수요-공급으로 유지되는 경제가 아니라고 했다. 전세계는 큰돈이 작은돈을 먹는 금융경제로 넘어갔고 제3세계의 천연자원 약탈로 이윤의 새로운 한 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IMF는 금융자본화를 위한 수순이었다는 말일까.
연기금 투자제한 철폐,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할 것
"IMF 당시 과감한 외자유치를 통해 금융시장을 최대한 팽창시켜놓았죠. 지금 지나친 대외의존도 때문에 우리나라 증시가 외부요인에 민감히 반응한다고 하지만 사실 자본은 이윤율을 창출하기 위해 대외의존도를 더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죠."
DJ정권의 증시부양책은 실질적으로 금융의 영역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었다. IMF 구조조정 협약체결 이후 외국인의 상장주식에 대한 총 투자한도는 일반법인 100%, 공공법인 40%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비중 역시 96년 13%에서 2004년 10월 40.1%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외국인 지분은 곧 한국경제 자체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력 하에 놓여 있다는 말이 된다.
초민족적 자본은 초국적 자본과는 다른 말이다. 예를 들어 삼성이라는 회사이름은 있지만 그 회사를 구성하는 자본의 국적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을 때 초민족적 자본이 되는 것이다. 삼성은 외국인 투자지분이 일정정도를 넘어 초민족적 자본에 속하고 있다. 금융세계화 안에서 자본은 고도의 조직화, 구조화를 통해 민족이나 국가단위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경제는 온갖 금융기법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세계 투기자본의 움직임에 그대로 좌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현 지배계층은 이러한 위기의 타개책을 더욱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풀어가려 하고 있다.
"재계는 주가폭락 이후 기업의 투자요건 개선과 주식시장 수요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요개선 방법으로 연기금의 주식투자 제한 철폐, 고액 개인투자자들을 활성화하는 사모펀드 확대를 위한 간접자산 운용법 개정, 퇴직연금 조기 도입 등 금융화 심화방안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죠. 연기금 제한철폐는 그동안 선거를 거치며 다소 지연되었을 뿐 6월 국회가 열리면 반드시 통과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재계의 증시부양책, 국민세금으로 투기자본 배 불리려는 것
현재 운영중인 연기금의 규모는 사학연금, 국민연금, 석유비축기금 등 57개 19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의 위험도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평상시 근로소득자로부터 강제로 걷는 연기금은 원금까지 다 날릴 위험이 언제나 상존한다. 자본의 빠른 이동을 원하는 자본측은 주가상승으로 국가의 신용도를 살려낼 수 있게 연기금 제한 철폐법 등 증시부양책을 서두르겠지만 이러한 증시부양책은 금융의 세계화와 삶의 불안정성을 더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결국 노동유연화와 공공부문의 축소, 강제적인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금까지 모두 거덜내려는 정책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노동이론연구소의 이은숙 연구교육위원장은 "자본은 파이를 키워 나누면 된다는 논리를 여태껏 펼쳐왔지만 전쟁 이후 그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누기 전에 파이가 커질수록 위기는 더 심화되어온 역사를 밟아왔다"고 전했다.
따라서 세계자본의 흐름에 한국경제가 민감하게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는 "투기자본인 세계금융자본, 초민족적 자본과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식밖에는 없다"고 전했다. "이미 초민족적자본의 형태를 갖춘 국내자본은 자신의 손목과 목아지까지 자르는 금융세계화에 반하는 정책을 정권이 망하는 정책이라고 맹비난하고 나서겠지만 노동자, 민중이 자기가 존재하는 곳의 작은 사안 하나하나에서부터 투기자본이 원하는 조건과의 연계를 끊는 방법 이외 경제의 불안정화를 타개할 다른 방법은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