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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리

들꽃 이야기 (20)

도랑을 따라 고마리 꽃이 피고 있다. 봄부터 자라면서 여러 번 베어지고 뜯겨졌지만 금세 다시 수북하게 자라나던 고마리가 찬바람을 맞고서야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느지막이 나타나서 찌이찌이찌이 울어대는 늦털매미 장단에 맞추려고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자글자글한 꽃이 송글송글 피고 있다.

고마리 꽃은 흰색 꽃이 있고, 연한 붉은 색 꽃도 있고, 흰색 바탕에 붉은 점이 있는 꽃도 있다. 흰색 꽃으로만 사태를 이룬 곳은 꼭 메밀꽃이 하얗게 핀 것 같다. 또 연한 붉은 색 꽃은 며느리밑씻개 꽃을 빼 닮았다. 하기는 고마리나 메밀, 며느리밑씻개는 모두 여뀌 무리에 속하니까 비슷한 풍경을 만드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고마리 꽃은 가지 끝에 열대 여섯 개씩 뭉쳐서 달리는데 비록 꽃잎은 없지만 희고 붉은 꽃받침 잎이 웬만한 꽃잎보다 아름답다. 고마리 잎은 생김새가 재미있다. 가운데가 잘록하게 생겨서 창검 모양이고 잎새에는 거무스름한 무늬도 있다.

고마리는 강이나 개울가처럼 물가에서 흔히 자라는 풀이다. 악취가 나는 도시 시궁창에서도 고마리는 자라난다. 그리고 그 시궁창을 푸르게 덮어 버리고 결국 분홍색 융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고마리 흰 뿌리는 오염 물질을 빨아들여 물을 깨끗하게 바꾸어낸다. 이렇게 고마리는 연꽃이 자라는 진흙탕보다 더 더러운 시궁창에서 자라나서 꽃을 피우지만 아무도 고마리를 연꽃처럼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새마을 취로 사업으로 깨끗하게(?) 베어내 버릴지도 모른다. 고마리는 다시 자라날 테지만 말이다.

고마리는 다른 풀에 견주어 볼 때 그 약효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민간에서 피를 멎게 하거나 허리앓이에 쓰였다는 정도 찾아볼 수 있다. 고마리는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된장국에 넣어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시궁창에서 자란 고마리는 먹을 수가 없고 오염되지 않은 도랑가 고마리도 이젠 먹는 사람이 없다. 그저 베어 버릴 쓸모 없는 잡초로 여겨질 따름이다. 하지만 '잡초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치를 지닌 식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마리는 시궁창 속에서 찾아낸 녹색 희망이고, 콘크리트 도시에서 찾아내야 할 또 하나의 미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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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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