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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11] 전쟁과 액션 영화

국제 전쟁 문제에 좀 더 지긋이 다가서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전쟁을 액션 영화처럼 즐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길을 걷다 자동차가 뒤에서 조금 빵빵거리기만 해도 시끄럽다며 욕을 하던 사람이 테레비 뉴스에서 방송되는 폭격과 신음 소리가 가득한 장면을 마치 액션 영화 보듯이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것 때문에 더 흥미를 느끼다가도 액션 영화와 같은 속도감이나 스타의 화려한 싸움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흥미를 잃어버리죠.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자극이 될만한 끔찍한 사건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몇만명이 죽고 어떻게 수천채의 집들이 부셔졌는지를 알아야 그나마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니깐요. 내 월급 몇 만원 줄면 아주 발끈하지만 다른 사람 몇 천명 죽는 거야 늘 영화에서 봐오던 거라 익숙해져 있지요.

하지만 전쟁은 액션 영화와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1. 주인공

액션 영화에는 주로 1명 또는 소수의 주인공-대부분 싸움 잘하는 남성-이 나타나지만 무력분쟁은 수백만, 수천만 사람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심지어 방관하는 것처럼 꾸미는 이들까지 보이지 않는 주인공입니다.

예를 들어 르완다 학살의 경우 그 뿌리가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챙길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는 유럽 국가들(주1)은 해당 전투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발뺌 할지 몰라도 학살의 씨를 뿌리고 키운 가해자이자 주인공 입니다.



2. 동기

많은 액션 영화가 주로 개인적인 이익, 복수, 희생, 구출 등이 동기가 되어 싸움질을 하고 관객들은 영웅들의 화려한 행동에 환호를 보내지만 전쟁은 주로 사회적 동기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물론 지배하는 이들은 자신의 뜻대로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 이라크, 팔레스타인, 체첸, 쿠르드 등에서 벌어지는 해방 투쟁에다 심리적이고 종교적인 이유-그것조차 사회적임에도 불구하고-를 덧씌워 투쟁의 동기를 개인화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류 언론들은 점령, 침략, 학살, 강간 등의 사회적 동기는 스쳐가면서 저항의 뿌리를 개인에게 맞추고 그들의 비정상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거죠. 이런 노력들이 성공하면 학살과 침략, 점령의 얼굴은 가려지고 저항하는 이들의 무모함과 폭력성만 드러나게 됩니다.

3. 상영 시간

액션 영화는 주로 1시간 30분정도의 시간 안에 모든 일이 시작되고 전개되고 끝이 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전쟁은 몇 년 또는 수십년 동안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1시간 30분짜리 액션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은-스스로를 좌파나 진보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사건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쉽게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액션 영화처럼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해결되고 거기에 자신도 한다리 걸쳐서 주인공이 되어 멋지게 끝이 나야 되는데 실제 상황은 그렇게 되질 않거든요. 그러면 또 자신이 주인공이 될 법하고, 사건 진행 속도가 빠른 일을 향해 관심을 돌립니다. 지리한 사건은 지루한 사건이며, 지루한 것은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리죠.



4. 비용과 노력

액션 영화는 6~7천원을 내거나 아니면 비디오와 인터넷으로 쉽고 싸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아닌 실제의 전쟁 문제에 다가가서 이해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공부 등이 필요합니다. 돈이 들어도 훨씬 더 많이 들겠지요.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액션영화를 싼 값에 보려 하듯이 전쟁의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쉽게 행동하고, 쉽게 마치려고 합니다. 영화는 비용과 시간을 적게 들여도 영화가 만들어내는 진실과 해결 방안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관객은 보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마치 당사자와 같이 문제를 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실제 상황에 대해서도 몇 시간의 독서와 약간의 돈으로 해결을 보려고 하는 거지요. 실제 당사자가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해도 수십년 동안 얻지 못했던 것을 책 몇 권으로, 말 몇 마디로, 돈 몇 푼으로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월드컵이나 탄핵 집회에는 수만명씩 모여 들어도 체첸에서 학살이 벌어져 봐야 신문에 몇 줄 나고 마는 것이 한국 사회입니다. 통일 행사와 노동자 대회 때는 수백, 수천 만원까지 써도 아체에서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가도 무관심 한 것이 한국의 진보운동입니다. 잠깐 관심을 가지다가도 조금 세월이 흐르면 마음 속의 추억처럼 지나가 버리죠

하지만 과연 체첸의 학살이 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보다 가치 없는 일일까요? 아체의 죽임이 통일 행사 한번 치르는 것보다 못한 일일까요? 전쟁으로 학살 당하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노동자대회의 무대 높이만큼 높아지고 있나요? 진보와 연대의 정신이 국경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세계화는 전쟁과 자본의 세계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연대의 세계화를 뜻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군사점령과 전쟁의 영향으로 내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될지 아닐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반짝이는 성명서와 캠페인 한번이 아니라 지긋한 관심과 실천이 지금 필요합니다.

주 1) 유럽의 학살, 유럽의 식민지배, 유럽의 인종차별은 가린 채 유럽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내세워 자신을 꾸미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

[전쟁의 풍경]을 읽어 보셨나요?


실천문학사 / 후안 고이티솔로 지음 / 고인경 옮김


스페인 작가 고이티솔로가 사라예보, 알제리, 팔레스타인, 체첸을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글입니다.
배경이 되는 시간이 몇년 흘렀지만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희미하거나 때로는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이기에 시간 되시는 분들은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차례]
Ⅰ.사라예보 노트
Ⅱ.폭풍 속의 알제리
Ⅲ.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다
Ⅳ.체첸 전쟁의 내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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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 연대 , 전쟁 , 학살 ,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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