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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들꽃이야기(27)

……
한여름내 땀으로 가꾼
무 배추가 서푼에 팔리나니
배부른 자여 은진미륵처럼 커서
코끼리 같은
壁이 되거라
나는 엄나무 마냥 야위어 산다
가시가 돋친……
<1971. 김관식>


가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자리에 붙박여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가시를 만든다. 이 가시라는 게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잎이나 턱잎 또는 줄기를 가시로 바꾼다. 낫과 망치가 그대로 민중의 무기로 바뀌듯이. 잎이나 턱잎이 바뀌어 된 가시는 그 잎이나 턱잎이 있던 자리에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줄기에 있는 코르크층을 밀어 올려 가시가 된 것은 줄기 어느 곳이든 멋대로 나타난다. 줄기가 바뀌어 된 가시는 잎이 바뀌어 된 가시에 견주어 쉽게 떨어진다.

'가시' 하면 떠오르는 나무들이 있다. 나무 이름에서도 가시를 드러내고 있는 아까시나무와 찔레나무가 있고, 푸른 가시로 온몸을 싸고 있어서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 탱자나무가 있다. 나무줄기에도 가지처럼 삐죽삐죽 가시를 뻗는 주엽나무 가시는 사뭇 위협적이다. 그렇지만 가시가 무섭기로 치자면 엄나무를 따를 게 없다. 가시 생김새가 하도 엄하게 보여 이름도 엄나무라 하지 않았다는가. 엄나무는 음나무로 불리기도 하는데 엄나무가 음나무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엄나무 가시는 줄기 껍질이 바뀐 것이라 불규칙하게 자라나는데 특히 어린 가지는 온통 가시로 빽빽하다. 대부분 새 가지나 어린 나무에 돋친 가시는 날카롭고 무성하지만 커가면서 가시는 차츰 없어진다. 그렇지만 천적들한테 시달림이 많은 나무는 가시투성이로 자라난다.

엄나무는 신경통, 관절염, 간염이나 위궤양 따위에 효과가 좋다. 그래서 수난을 많이 당하는 나무이다. 아예 뿌리째 뽑혀지기도 한다. 무서운 가시로 무장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련이 많고 약하다는 것이다. 가시 돋친 엄나무 가지를 문설주에 걸어 놓은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다. 그 거친 모양새가 귀신도 쫓을 만해서일 게다. 나뭇가지로라도 액운을 물리쳐 보려는 행동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약한 나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밀어 올린 가시를 보면 어떤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리주의를 찾고 사회적 합의와 교섭, 대화와 타협을 말할 만큼 우리에겐 우람한 나무의 힘과 여유가 없다. 잎과 줄기를 가시로 바꾸듯 우리 모든 것은 투쟁의 무기로 별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른봄에 돋아나는 엄나무 새싹은 대단히 맛있기 때문에 가시로 보호하지 않으면 온갖 산짐승의 밥이 되고 만다." <나무백과2, 임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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