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현 이라크 정부가 헌법 제정을 위한 절차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8월 15일로 헌법 초안 제출 시한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초안위원들이 합의를 하지 못해 연기 되었고 8월 28일에서야 수니파 위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시아와 쿠르드 위원들이 초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안 합의가 쉽지 않자 미국이 직접 나서서 초안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초안이 통과되자 휴가 중이던 부시는 신디 시핸의 시위가 계속 되고 있던 텍사스 크로포드에서 즉각 성명을 내고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며 초안 통과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헌법안이 10월로 예정되어 있는 국민투표에서 통과가 된다면 12월에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라크 의회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 결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쿠르드와 시아 가운데서도 미국에 협력하고 있는 세력들 그리고 수니 가운데서 과거 사담 정권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주로 현재의 의회를 구성하고 있고 이들이 헌법 초안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미국으로서는 그들이 제시해 둔 정치일정을 완수(?)해 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미군 사망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초기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 민중들의 무장, 비무장 저항이 장기간 강하게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제시해 둔 일정을 지켜가지 못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법 초안 통과를 강하게 요구했고 10월로 예정된 국민투표에서도 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통원할 것입니다.
2. 시아-수니 그리고 내전
시아-수니 그리고 내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전은 이라크의 시아-수니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희망하고 조장하고 하고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헌법초안이 통과 될 때도 그렇고, 8월 31일 티그리스 강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 했을 때도 그렇고 시아-수니 사이의 내전 가능성을 열심히 얘기 했습니다.
“이라크참사 내전으로 번지나” - 세계일보
“이라크 참사’ 종파내전 불지피나” - 경향신문
“바그다드 참사 ‘종파 내전’ 불댕기나” - 문화일보
“바그다드 참사 사상자 1200명 넘어…내전으로 비화?” - 프레시안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라크 사회가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시아-수니로 완전히 갈라져 있는 사회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언론들의 얘기와 달리 실제 이라크 민중들 사이에서는 시아냐 수니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구별이었습니다. 100% 갈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라크인들은 서로 이웃이기도 하고 친척이기도 합니다. 또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의 일부 시아들이 시아 정권인 이란에 맞서 시아가 아니라 ‘이라크인’으로써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사담이 수니이기 때문에 시아를 탄압했던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담 정권은 이슬람 정권이 아니라 세속, 독재 정권이었습니다. 다만 사담이 무슬림이 많은 이라크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이슬람을 일부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시아 중에서도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와 같이 미군과 협력하는 세력들도 있지만 또 많은 시아들은 점령에 대항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라크 사회가 무슬림이 많은 사회이기는 하지만 시아냐 수니냐 하는 것처럼 이슬람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첫 번째 요소냐 하는 것입니다.
알려진대로 이라크는 세속화가 많이 진행된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슬람을 중요한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민족주의자도 있고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무슬림이기는 하지만 이슬람을 정치적 판단으로까지 연결시키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이라크 사람들이 이슬람을 중심으로 시아냐 수니냐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내전은 제국주의가 흔히 그렇게 하듯이 미국이 이라크 지배를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이라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야 할 필요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희망대로 이라크 민중들 사이에 종파간 내전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다만 이라크인들 사이의 투쟁은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의 핵심은 친미냐 반미냐, 점령이나 반점령이냐가 될 것입니다.
3. 철군, 민주주의 그리고 생활 안정
현재 이라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점령군 철수입니다. 지난 1월 있었던 선거에서 시아 종교인들이 권력에 진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얘기 가운데 하나도 선거와 정부 구성을 통한 미군의 철수였습니다.
물론 점령군은 헌법이니 정치일정이니 또는 내전이니 하는 말들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무장, 비무장 반점령운동이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이 제시한 정치일정을 통해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것처럼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을 뿐입니다. 식민지 대리정권으로는 민주주의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점령군 철수와 함께 현재의 의회와 정부는 해산하고 새롭게, 말 그대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라크 민중들의 손으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라크인들에게 또 필요한 것은 생활 안정입니다. 높은 실업률, 불안정한 수도와 전기 공급, 납치나 살인과 같은 범죄들로부터 벗어나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군과 정부 관료들이 그린존안에 들어 앉아 점령 일정과 권력 분배만을 논의하고 있는 동안 이라크 민중들의 삶은 부서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진정으로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길 원한다면 지금 해야 할 것은 헌법이나 정부 구성이 아닌 단 하나, 철군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