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여성노동자의 70.5%가 임시일용직,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3%에 불과하다는 것. 빈곤가구 중 여성가구주의 비율은 45.8%. 이는 전체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율 18.5%의 2.5배에 이르며, 여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21.0%로 남성가구주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 7%의 3배에 이를 정도로 심각함”
그래서? 그 다음은? 통계지표들은 장황하게 쏟아지고 있지만, 다음에 나오는 정부의 여성빈곤 대책들은 과연 가난한 여성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있는가? 2005년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 그 A B C를 살펴본다.
▲ 간병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
세 여자 이야기
노무현 정부의 “여성빈곤종합대책” 덕분으로 동네 자활후견기관에서 “사회적 일자리 및 자활근로 간병인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A씨,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가난한가?
43세, 6년 전 남편과 사별한 A씨는 웬만한 식당에서도 채용하기를 꺼려한다고 했다. 조선족 미혼 여성들은 훨씬 더 싼 값에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다는 이유이다. 제조업 생산직의 경우 취업 연령은 35세 이하이며, 빈번한 잔업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할 수는 없다. 간병 일자리는 월 60만원선 이어서 굶지는 않겠지만 근근히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어떻게 하면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그녀는 되묻는다. 그래서 그녀는 간병인을 한다.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고, 두 아이의 엄마인 B씨는 남편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양육비와 약값을 감당하는 것도 빠듯했다. 몸이 세 개로 나뉘어도 모자랄 지경인 엄청난 강도의 가사노동은 B씨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일당 4만 5천원의 A씨를 간병인으로 고용하면서 그나마 친정어머니 C씨에게 맡긴 둘째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오늘 간병인 소개소에서 곧 일당을 올려야 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세 여자의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그녀들의 연결고리를 살펴보자. 수많은 A씨들이 허리를 조금이나마 펴기 위해 자활급여를 올린다면, 그 돈을 부담해야 하는 수많은 B씨들의 부담은 늘어나고 그녀들의 가사노동부담의 일부는 또다시 그녀들의 늙은 친정어머니 C씨의 몫이 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아이를 허리가 아픈 어머니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수많은 B씨들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수많은 A씨가 되고, 그녀들은 다시 수많은 C씨가 되고...
여성이 처한 열악한 조건은 A=>B=>C의 순서로 악순환되고 있다. 또한 이 부담은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의 고유한 역할”이라는 범위를 넘어선 적이 없다. A씨의 가난과 B씨의 말 못할 고단함, 그리고 C씨의 안타까운 배려심은 결국 온전히 해결된 적이 없으며 이는 여성들 사이에서 열악한 조건이 서로에게 전가되는 방식으로 악화되기만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녀들에게 엉뚱한 해결책만을 제시한다. "좀 더 많이 일하라!”, "세째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지원하겠다!”, “소중한 가정을 지켜야 한다!”라면서..
그녀들은 가난했었고, 가난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이 처한 삶의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빈곤의 여성화’란 단지 가난한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진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남성가장의 임금에만 의존했던 과거에도 여성들은 가난했다. 그리고 현재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가계의 파탄으로 인해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구한 여성들은 더 가난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은 교육, 의료와 같은 공공복지에 대한 가족의 부담은 더욱 가중시키고 있어 추가적인 가계지출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누구나 예상하듯 가사, 육아, 간병의 일차적인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는 여성들은 앞으로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건강가족기본법,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 여성빈곤 종합대책으로 이어지는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시종일관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이라는 전제 하에 여성노동의 출혈판매를 강요하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극복방안으로서 보육 및 양육서비스 지원, 사회적 일자리 창출방안을 통한 ‘여성빈곤문제 해결방안’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지만, 그 정책의 적용범위는 매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정작 극빈층의 여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이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의 여성가족부 등을 통한 여성인력활용정책은 대다수 여성들의 일자리를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한정짓는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일 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주겠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던 가사, 육아, 간병 등과 같은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의 고유한 역할'로 규정되어 있는 이러한 재생산 노동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더욱이 문제는 가부장제 속에서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재생산 노동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일을 통한 빈곤 탈출이라는 말은 앞에서 살펴본 악순환 속에서 여성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10월 17일 '세계빈곤철폐의 날', 여성들의 연대를
10월 17일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세계여성들의 릴레이 행진이 서아프리카에서 마무리되는 날이자 세계빈곤철폐의 날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여성을 정점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여성행진은 빈곤의 문제를 여성들 모두의 문제로 제기하고자 하다. 빈곤은 각기 다른 요구들로 저항하고 있는 여성들 모두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가난한 여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투쟁과 연대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 땅 모든 민중들의 빈곤에 맞서기 위해,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