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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 막혀버리면 계화도에서 살 수 없어"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7) - 다시 청와대 앞 1인시위 나선 이순덕 어머니

11월 19일, 청와대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청와대앞을 찾았다. 염정우 씨 전화로는 이순덕 어머니가 다시 올라오신단다. 아니 어제 ‘새만금 대화마당’에 참석하시고 늦게 내려가셨을 땐데 어찌 또 올라 오셨단 말인가. 대단하시다.

어제 이순덕 어머니는 대화마당에서 말씀을 하시던 도중 눈물을 보이며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하셨었다. 아무튼 발길을 제촉하여 청와대앞으로 이동했다. 11시가 되었는데도 쌀쌀하다. 근처를 지키는 경찰들도 재법 두터운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관광을 하러 많이 찾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몇 사람이 관심을 갖지만 말이 통하지 못해 얘기를 못했다. 옆에서는 창원에서 올라와 ‘산업장애를 받았다“며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1인 시위를 하시는 분과 ’한국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문제로 1인 시위를 하는 분이 있다.

이순덕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핏켓을 가져와 앞에 세우고 같이 서있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늦게 도착하셨을 터인데 어떻게 바로 올라오셨습니까?

어제 기차가 끝어져 밤9시에 임시 버스로 전주를 거쳐 계화도에 도착하니 1시반 정도 되었다. 어머니 4명이 내려가는데 힘들었다. 아침에 피곤해서 그런지 목구멍에서 피가 나오더라.

그런데 오늘 올라올 사람이 없어 고은식이가 올라 온다고 하더라. 그런데 선주회나 어선연합회 사람들을 만나서 11월 28일 새만금 소송 재판장에 참석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단다. 그래서 고은식이는 그 일을 하고 대신 내가 올라가겠다고 하고 올라온 것이다.

부안에서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3시간만에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로 이곳까지 왔지. 차타고 다시는 것도 별로 안좋아. 나이가 드니까 힘들어.

처음 청와대앞 1인 시위를 제안하셨다면서요

언젠가 염정우가 지나가면서 만났는데 누구한테는 말하지 말라면서 “고은식 씨가 삼보일배로 서울까지 가겠다고 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현재 삼보일배를 혼자랄 시기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라크에서 죽은 미국군인의 어머니가 백악관앞에서 1인 시위하는 것을.

방송으로 보았는데 청와대앞에서도 1인 시위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까, 할 수 있다고 하여 청와대앞 1인 시위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해서 1인 시위라도 하자고 하였다.

내년 3월 이면 방조제가 막힌다고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 괴로워. 꼭 살려야 하는데 문제야. 이렇게 해도 막지 못하게 하기가 어려워서 외통터져. (연신 춥다고 하신다)


요즘 생합잡이 좀 예기해 주세요

요즘 물때가 생합이 많이 잡혀. 다음 물때 때 추위가 오니까 생합이 갯벌에 들어가버려. 이맘때 생합이 많이 나오는데 하루에 10만원씩 버는데 이게 무슨 짖이여. 요즘 잡히는 양은 적지만 가격은 비싸다.

많이 안잡혀서 가격이 비싸니까 소득이 많다. 하루에 13-14만원, 9만7천원, 9만5천원 정도 번다. 집에 아직도 기름도 못 넣었어. 매트리스 하나 깔고 자는데 얼마나 힘든지. 이렇게 어려워도 바다와 갯벌만 그대로 놔둬도 살 수 있는데. (방조제 막으면) 우리는 어디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28일 재판 때 사람이라도 많이 올라 와야지. 웅성거리기라도 해야지. 모두 못살게 되니까, 다른 지역 사람들도 올라오게 해야 할 터인데 (군산, 김제, 계화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어민들도 올라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가능하시면 가족 얘기좀 해 주세요.

남편은 9년전에 돌아가셨고, 2남 2녀가 있지. 논, 밭 한퇴기 없어. 갯벌에 나가서 생합을 캐서 얘들 키웠어. 큰 아들은 ‘VJ특공대’에서 고발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몇 일전에 전화오기를 ‘SBS' PD가 되었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국방부에서 하사관으로 있는데 2007년 1월에 재대할 예정이다. 딸 하나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고, 넷째는 전주에서 간호학원을 나와 자기가 돈을 벌어 생활을 하고 있다. 얘들이 말을 잘 듣는다. 신경쓸 것이 없어 새만금만 안 막으면. 얘들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겄어. 갯벌이 우리를 살렸지.


큰 아들이 방송국에 있으면 새만금에 대한 작품하나 만들도록 얘기해 보시지요.

이제 들어갔으니, 조금 더 기다려야지. 어릴 때는 갯벌에 관심이 없었지. 그런데 몇 년전 아들하고 살금갯벌에 가니까, 이렇게 좋은데 그동안 몰랐다며 앞으로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하였다. 나에 대해서도 뮤직비디오를 찍겠다고 하더라.

큰 아들은 영화감독이 되겠데. 시나리오도 몇편 써 놓았더라고. 언젠가는 영화만들 것이여. 내가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좋은 바다를 막는다고 하니, 어머니를 이해하겠다고 하더라. 오늘 1인 시위도 큰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조금 후에 작은 아들이 올 예정이다.

계화도에서는 근래들어 형편이 좋아지니까 몇가정에서 얘들을 잘 가르키고 있다. 옛날에는 많이 안가리켰지. 그래서 나가서 흔히 말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없어. 이제는 많이 배우니까, 앞으로 사회에 많이 진출하겠지.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얘들 가리키는데 더욱 힘쓰겠다고 생각했어. 애들이 착하니까 살지. 그런데 방조제 막혀 버리면 계화도에서 살수 없어. 땅 한평도 없는데.


같이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같이 있다가, 나는 그 장소를 떠났다. 나중에 전화를 하니, 오후 5시까지 염정우씨와 같이 있다가, 6시40분 부안행 고속버스를 탓다고 하신다.

대화를 하면서 한 가정을 일으킨 고마운 갯벌이 바로 ‘새만금갯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한히 주는 갯벌, 언제라도 간단한 ‘갈쿠리’나 ‘그레’ 한 자루만 갯벌에 들고 가면 항상 그 댓가를 주는 고마운 갯벌, 그 갯벌에 살면서 많은 어머니들은 힘들었던 삶을 해치며 살았고, 가족을 일으키고 삶의 희망을 가졌다.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고 자궁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은 것처럼, 갯벌 또한 수많은 갯벌과 바다 생명들의 자궁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들은 갯벌에 대한 생각과 갯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이들의 갯벌, 우리들의 갯벌을 영원히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정성을 다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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