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농민회 홍콩투쟁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허남혁이라고 합니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의 통역으로 참여했습니다.
저는 홍콩 최북단 중국 국경지역에 자리한 불법체류자 수용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수용된 곳은 San Uk Ling Holding Centre (新屋嶺 拘留中心)였습니다. (여기가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더군요.. 약 200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홍콩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불법체류자나 난민들이 수용되는 곳이라 하더군요)
저희가 그곳에 들어간 것은 18일 밤 12시 경이었습니다. 풀려난 것은 19일 밤 9시였구요..
저희 방에는 가농 회원 17분과 전농회원 14분 해서 31명이 수용되었습니다. 담요 5장이 제공되었구요. 수용소는 A B C D 해서 4동이었고, 각 동마다 방이 4개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한 쪽 끝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방이 C-4였는데, 가장 구석에 있는 곳이었고, 맨 처음으로 구금된 탓에 멋도 모르고 31명이나 수용되었습니다. 다음 방 3곳들은 강력히 저항해서 20-25명 정도만 수용되었습니다.
밤 12시 경에 수용되었는데, 31명이 들어있으니 아무리 바닥에 칼잠을 자려해도 공간이 모자라는 상황이었습니다. 담요도 바닥만 겨우 덮을 수 있는 정도였구요. 나머지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가장자리의 콘크리트 침상에서 담요도 없이 그냥 앉아서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담요를 추가로 요청해도 수용소에 인원이 너무 많아서 담요가 부족하다고만 이야기 했구요.
한 가지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저희 일원 중에 당뇨병이 있어서 약을 상복해야 하는 분이 있었는데.. 17일 오전 숙소에서 나오면서부터 그 때까지 바깥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던지라 약이 다 떨어져서 점차 혼수상태에 들어가는 분이 있었습니다. 1시 경에 저희가 의사 또는 의료처치를 요구했습니다. 중간에 계속 독촉을 했는데도 여기가 너무 먼 곳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만 답을 했구요. 결국엔 새벽 5시가 넘는 시간이 되어야 앰블란스가 와서 병원에 가실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 수용되고나서 전화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겨우 새벽 2시 반이 되어야 저희 일원 중에 계셨던 가톨릭 신부님을 통해서 본대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홍콩경찰은 무척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뭐 화장실은 뺑기통으로 어떻게 해결했다 치고, 저희는 나갈 때까지 씻을 수 조차 없는 열악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수용된 시간은 이미 여성 회원들의 가혹한 인권유린이 있고 그에 대한 항의가 있어서였는지, 저희는 수갑을 차지 않았고, 소지품도 그대로 들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환경은 경찰서나 법원 유치장에 비해서 훨씬 열악했습니다. 홍콩 경찰로부터 통보받은 기본적인 권리들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구요..
그나마 다음날 오전이 되고나서야 경찰들의 태도가 좀 누그러지더군요.. 담배도 피울 수 있었구요.. 식사에 고추장과 김치도 제공되었습니다. 한국인 통역도 그날 오전에야 볼 수 있었습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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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혁 님은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비상임 정책기획연구원으로, 대구대학교 사회교육과 지리교육전공 박사과정을 거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