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이라 말하지 말라

[기자의눈] - 민주노총 제36차 대의원대회를 보며

지난 10일 민주노총 제36차 대의원대회는 상정된 안건을 한 가지도 처리하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밤 12시 30분까지 자리를 지킨 대의원은 473명, 이중 306명의 대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대의원대회 연기 제안이 가결됐다. 민주노총은 16일까지 논란이 된 대의원 및 선거인단 명부를 개선하고, 2월 2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보궐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대의원대회의 난항은 시작 전부터 예고되었다. 대의원대회가 시작되자 대의원의 안건 발의가 이어졌다. 대의원 88명 연명의 'KT노조 징계안' 발의를 시작으로,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영구 제명' '임원 선출 연기' '임원직선제추진위원회 구성' '대표자 구속 결단' 등의 안건이 줄을 이었다. 휴회와 속개를 거듭하는 가운데 새로 선출된 현차노조 대의원의 자격을 놓고 진통을 겪었고, 대의원대회의 규약과 규정을 둘러싼 논란을 벌이다 결국 한 개의 안건도 다루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여기까지가 사실 관계다.


안건 봇물, 민주노조운동의 난맥상 반영

이날 새로 올라온 안건은 모두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내부의 문제, 즉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어려움이 반영된 문제들이다. KT노조 문제는 사용자 집단이 민주노조의 외피를 둘러쓰고 민주노총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파생되는 문제이고, 임원직선제와 직선제추진위 등의 문제는 현장에 기반하지 않는, 아래로부터 통제되지 않는 망가진 대의제를 대체하기 위해 던져진 안이다. 강승규 영구 제명 문제는 관료주의에 휘둘리는 민주노조운동에 최소한의 선을 긋기 위해 제기된 안이고, 대표자 구속 결단 안건은 로드맵과 비정규직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을 호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고자 올라온 안이다. 대의원들이 제출한 안건의 면면은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겪고 있는 고통과 난맥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인단 명부 문제는 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만큼 민감하고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나선 각 후보 진영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 명의 대의원이라도 더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려는 활동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이 과정에서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펼치고, 규약과 규정의 적용에 있어 서로 유리한 유권해석을 내놓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이 경과하는 현재의 국면, 즉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이해의 실현 전망과 노동운동의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한 과도적 시기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보여지는 대의원간, 정파간 논란과 대립은 반자본이라는 큰 정치적 맥락을 전제하지 않고 있다. 반자본을 전제로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노선과 운동노선이 경쟁하는 상황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깊숙이 침투된 조건 아래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논란과 대립은 이미 민주노조운동만의, 민주노총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와 그 실현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고, 따라서 대의원대회에서 비롯되는 대부분의 문제가 계급투쟁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대의제냐 직접민주주의냐는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핵심

고픈 배를 움켜쥐고 투쟁과 연대를 통해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던 시기, 회의를 하다가도 투쟁 공간이 열리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종이 위의 규약보다 우선된 약속으로 삼던 때가 있었다. 그런 배경 위에서 대의제는 민주노조운동의 훌륭한 무기였다. 지난 날의 전노협이, 지난 시기 민주노총이 대의원의 결의만으로도 전국의 노동자의 투쟁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대의원대회의 결정으로도 생존권을 사수하고, 민주노조를 지키고,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위로부터 강조되는 직접민주주의보다 아래로부터 통제되는 대의제가 훨씬 민주적일 수 있으며, 그것은 수많은 역사적 경험에서 확인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대의원대회에서의 간선제 논란은 사태의 본질에서 비껴난 특정한 이데올로기성 주장일 수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직선제가 형식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깝긴 하나 직선제가 곧 조합원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하는 절대 수단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여러 가지 위험을 내포한다.

정치운동의 전망이 제시되지 않아 노동해방의 전략과 경로가 불투명한 지금 시기에 직선제를 도입한다 해서 관료주의가 혁파되고 조직의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이, 민주노총이 겪고 있는 어려움, 그 핵심 요인이 절차적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감출 수 없는 지배자의 논리와 피지배자의 논리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주역들이 자유주의자와 손을 잡거나 투항하는 가운데 정권의 실세 노릇에 나서는 현실을 목도한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층은 이 재생산 구조에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고, 타협과 투항이 무매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새 민주노조운동의 내로라 하는 활동가의 입에서 걸러지지 않는 자본의 발언이 쏟아지고, 노동자의 입으로 자본의 발언을 떠들면서도 낯 부끄러운 줄 모르는 활동가들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KT노조 문제를 놓고 규약과 규정을 들이밀거나, 강승규를 완전히 제명하자는 데 머뭇하는 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떠맡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정기대의원대회를 '파행'이라 규정짓고 '용납할 수 없는 폭력' 운운하는 것을 보며 실로 가소롭고 가소롭고 가소로워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주장이 주류를 형성하고 다수의 동의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 소름이 돋는다.

동서고금의 모든 계급투쟁의 현장에서 증명되는 바, 지배자의 논리와 피지배자의 논리는 모양과 색깔은 달리 하지만 본질에 있어 뚜렷이 나누어지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을 교란하는 어떠한 논리도 제 본질을 감추지 못한다.

제36차 대의원대회 현장에서 쏟아진 말, 발언, 주장은 누구의 이해를 우선하는 것인가. 단지 기호 1번 또는 2번 또는 3번의 특정한 정책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일 뿐인가. 진실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문제로 민주노조운동 당사자만의 이견과 차이가 불거진 문제일 뿐인가. 상식과 이성의 논리에 앞서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교란하고 왜곡하는 말, 발언,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 잣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눈과 귀를 틀어막는 보수와 신자유주의 미디어의 말, 발언, 주장과 어느만큼 닮았는가를 따져보면 된다. '합리화와 선진화' 또는 '대화와 타협'을 들먹거리며 절차 민주주의조차 지키지 못한다며 딴지를 거는 친자본 주구들의 말, 발언, 주장과 어느만큼 흡사한가를 하나씩 따져보면 된다.

13일 조준호-김태일 선대본의 성명, 어리석고 가소롭고

조준호-김태일 선대본은 13일 기자회견문에서 "폭력과 파행으로 얼룩지고 결국 연기되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법안 강행 처리를 앞둔 시점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지도부를 시급히 선출하는 투쟁과 결의의 장이어야 하는데,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폭력과 파행'으로 얼룩졌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다. 이 선대본은 "이 엄중한 순간에 의도적인 파행으로 몰고가는 세력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기조의 단호한 성명을 채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보수언론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비난하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파행은 이제 연례 행사가 됐다"고 쓰고 "대의원대회 때마다 정작 안건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무슨 파, 무슨 파로 갈려 멱살잡이만 하다 끝나기 일쑤다"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노총에서 '깽판'을 치는 집단이 문책을 당하기는커녕 도리어 큰 소리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며 공격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대의원대회는 최고의결기구이다. 최고의결기구의 주어진 규약과 규정은 중요하다. 그것을 지키지 않고 소수가 물리력을 동원해서 '정상적인' 대의원대회를 '파행'으로 몰고갔다. 폭력과 혼란으로부터 현 사태를 극복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조준호-김태일 선본의 성명과 조선일보의 주장이 오버랩 된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월 10일 경총이 조선호텔에서 주최한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한 발언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용득 위원장은 "오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있는데 오늘도 난리치면 판을 깨버리고 극좌파와 결별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극좌파들을 배제하고 내부 조직을 정비하면 양 노총 통합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이수호 전 위원장이 극좌파에 밀려 '깨진'(물러난)것이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깽판'칠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성사시켜 조직안정 하자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식 대로 대의원대회를 사수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노동운동에서 민주적이고 형식적인 절차는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 자유로움과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곤혹스러움을 겪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의원대회가 '무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고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이고' '뿔달린' 극좌파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민주노총 전체,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장면이다. 노동의 발언, 노동자의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지극히 자본의 말, 발언, 주장을 빼어닮았다. 보수언론에서 앞과 뒤를 짜르고 악의적으로 인용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앉아있어서 안 될 자리가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것이다. 잘못 뱉었을 때 응당 책임져야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시너지 효과 만끽하는 이상수 장관의 '마주보고 열리는 은행나무'

이상수 신임 노동부 장관은 이 미묘한 시기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예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일부 언론은 '대화와 타협' 노선을 잘 견지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법과 원칙을 내세워 노동을 자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정 관계를 크게 악화시킨 전임 김대환 장관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발언이다. 일견 조선일보틱한 주장에서 벗어나 있어 호감을 부르기도 한다. 주지하듯이 불필요한 대결 대립을 피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일을 처리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해야 할 내용이 로드맵이나 비정규법안 따위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로드맵이나 비정규법안은 대화와 타협으로 만져가며 합의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원천 폐기되어야 할 독소적인 사안이다. 즉 노동자의 목숨을 내놓고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다루는 사생결단의 문제라는 점에서 대화와 타협 차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화와 타협'과 '법과 원칙'은 동전의 양면으로 결정하기에 따라 언제든지 동원 가능한 지배계급의 관리 매뉴얼이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후 인권변호사의 캐릭터를 내세워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다가 그해 화물노동자와 조흥은행 노동자의 투쟁이 이어되고, 경제자유구역 추진 등에 저항이 이어지자 급기야 8월 철도노동자의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며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법과 원칙', '대화와 타협'은 노동자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가 선택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방법 그 자체이다.

이상수 장관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폭력이 남발하는 구시대 낡은 현장으로 매도하는 미디어의 작동을 배경으로, 대화와 타협의 '온건한'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합리적인 선진노사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주 봐야 열리는 은행 열매라 했던가, 그것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은유하는 반동의 지배언어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이 자율적 제어능력을 상실했다고?

이런 즈음 민주노총의 진통을 한 걸음 밖에서 바라보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노동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속사정을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고, 노동전문가들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들 논자들은 대부분 민주노총의 분열 사태가 민주주의적 의식과 절차의 실종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가령 조돈문 교수는 "서로 뜻이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 다수가 결정하면 따르고, 또한 비록 상대가 소수라 하더라도 이를 배려하는 민주적 조직문화의 결여가 이런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의 세 차례에 걸친 대의원대회 무산에 이은 지난 10일 대의원대회 무산 사태 등은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냈다"고 짚었다.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이사장은 "이제 민주노총에는 자율적 제어능력이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러한 진단은 일면적이고 현상나열적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것은 민주주의 의식과 절차가 부족하거나 자율적 제어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무산'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경향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경향이 대립 투쟁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산' 자체가 도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지탄받아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은 대의원들이 발의하는 안건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현장으로부터 통제되지 않는 대의제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날을 세우고, 친자본노조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비정규법 개악에 맞서 구속을 결의하자는 주장 등은 노동자로서, 민주노조운동의 대의원으로서 제기하는 최소한의 요구들이다.

이러한 요구가 거꾸로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형식적인 의사결정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환기하는 것이며, 이른바 자율적 제어능력을 갖추어가는 시도와 노력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겪는 진통을 그저 부르기 쉽게 그저 말하기 쉽게 '파행'이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자율적 제어능력이 없다는 식의 쓰레기 같은 소리를 마구 지껄이면 안 된다.

자본과 정권, 민주노조운동 깊숙히 개입, 영토 확장

정권이 노동자의 자주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조합운동에 개입해서 왜곡하고 교란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오늘날과 같은 진통을 겪지도 않을 것이며, 노동자 자신만의 이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본의 노동유연화 프락션을 받아 노동조합운동 깊숙이 개입해서 활동하며, 계급투쟁을 관리한다. 자본의 논리를 수용하는 분파를 조직하고, 대의원을 포섭하고, 영토를 확장한다.

지배계급의 이 반동적 프로젝트는 일시적 계기적인 차원이 아니라 지속적 전략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정권의 가공할 정보력과 조직력 앞에 활동가들의 포섭과 투항이 노골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런 현실에서 대의원대회의 '파행'을 놓고 어찌 노동자 탓, 당사자 탓이라 몰아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민주노조운동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정권과 자본의 문제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즉각 주체세력의 부재에 눈을 돌려야 한다. 현실에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 실현의 방향을 제시하고,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성을 발전시킬 저항의 프로세스를 제시하고, 노동운동, 정치운동의 전망을 던져줄 주체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세력의 중심에 정파가 있기 마련이고, 정파의 정치적인 능력의 크기에 따라 운동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정파는 노동자계급의 이해 실현과 노동운동 정치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는 전략과 전술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호명되는 오늘날 계급투쟁의 현장에서 저항과 혁명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할 만한 정파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호사스런 계급적 언사와 혁명적 선동이 남발되는 경향이 줄어든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계급과 혁명을 이루기위해 실사구시하는 운동도 함께 줄어들거나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태가 이러할 진데, 보수와 신자유주의 미디어, 그리고 노동문제 전문가로 칭송받는 주구들은 특정한 계급적 담합을 이루어 정파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사회적 교섭을 다루던 2004-5년 대의원대회에서 안을 반대하던 조합원과 대의원의 물리적인 저지 때부터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을 다루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시점까지 강경파, 극좌파 거론은 노동조합운동을 공격하는 고정 매뉴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노동조합운동 내 특정세력은 표면상으로는 정권과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구체적인 사안 쟁점에 있어서는 정권의 대노동 관리 과정에서 이용당하거나 포섭당하는 사례가 빈번한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권과 보수, 신자유주의 미디어의 공격은 늘 강경파, 극좌파를 향했고, 예의 강경파, 극좌파는 이데올로기 지형상 고립되거나 수세적인 조건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정파 운동을 왜곡, 희화화 하지 말라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의 동원능력을 소유한 정파들, 가령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전진, 노동자의힘, 새흐름 등은 스스로 정파로 규정하든 그렇지 않든 노동운동을 움직이는 주체들이다. 정파는 정치전략을 제시하고 대중으로부터 정치적 신뢰를 획득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활동을 펼친다. 그런 점에서 반자본의 지평 위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모든 정파의 활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정파들이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정치전략의 전망을 자세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더욱이 크고작은 정파의 일부는 눈속임을 한 채 자본이 주는 편안한 자리로 투항하는 사례도 곧잘 발견되곤 한다.

최근 총회를 치르고 앞으로 2년간의 사업방향을 결정한 노동자의힘의 경우를 보아도 그러하다. 노동자의힘은 반자본의 정치적 지향을 뚜렷이 하고 있으나, 계급정치와 계급정당의 선명한 구호는 강조하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경로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을 담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본다면 6년 전 계급적, 정치적 주체의 결집을 제기하던 당시 문제의식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 있고, 노동조합운동의 꽁무니를 쫓는다는 내외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노동자의힘이라는 한 정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반자본의 지평 위에 있는 대부분의 정치세력, 정파들이 겪는 고통의 공통분모다.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정파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특정 정파의 활동을 비판, 비난하며 반정립을 시도하는 불특정한 정파적 경향이 활개를 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의원대회가 친자본노조의 대의원이 규약과 규정을 등에 업고 엉덩이를 들이밀고, 비계급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작자들이 동원되고, 상식과 이성이 마비된 성폭력적 발언이 등장하고, 따라서 대결 대립이 계속되는 배경에는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펼칠 정치주체의 부재라는 아픈 현실이 맞물려 있다.

말하자면 절차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는 미성숙한 조직문화나 내부 의시결정시스템의 문제가 사태의 핵심 원인이 아닌 것이다. 정치적 전망을 한껏 열지 못하는 정파와 노동운동 주체의 한계,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자주성과 계급성 구현의 어려움이 맞물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당사자는 강경파, 극좌파를 지칭하며 퍼붓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정파의 고유한 활동을 지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해서는 아니 되며, 적전분열을 조장하는 보수, 신자유주의 미디어의 파상적인 공격을 방어하고 역공을 펼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운동의 모든 당사자는 스스로 정파운동을 희화화하거나 왜곡하지 않아야 하며, 보다 급진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치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대하는 가운데 경쟁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상호 정치적 상승을 꾀해야 한다.


당신은 '파행'을 입에 담지 말라

대의원대회를 보며 '무산', '파행'을 선동하는 보수, 신자유주의 미디어의 공격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길 바란다. 조직문화의 미성숙, 자율적 의사결정 능력의 한계를 떠벌리며 측면에서 노동을 공격하는 어중이 노동전문가의 평론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길 바란다. 그 대신 교란용 선동과 왜곡된 진단과 발언을 통해 지배계급이 챙겨가는 실익이 무엇인지 예의주시하고, 그에 맞장구치는 말, 발언, 주장을 가려내는 일에 소홀하지 않길 당부한다.

이 모든 게 포괄적으로는 노동유연화를 강화하는 노동자 관리의 맥락이며, 로드맵과 비정규법안을 무리하지 않고 관철시키기 위한 과정이며,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될 노동의 저항을 사전 관리하는 방책의 일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의원대회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논의되고 결정되는 곳이어야 한다.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논쟁과 토론의 정치적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모든 당사자가 바라는 바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부당하고 불편하고 억울하지만, 지금의 이 고통과 혼란조차 반자본의 지평 위에서 해방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주체들이 모든 걸 감내하고 가야 한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유영주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초록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것은 홍길동 이야기고~~~

    파행을 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당신은 도대체 뭐요?

  • -_-

    새롭지도, 영양가 있지도 않은 말을 길게, 아주 지루하게 늘어놓더니 하나마나한 멋진 말로 글을 끝내는군요.적어도 참세상이라면, 논의의 단초라도 될 수 있는 작은 부분의 제언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나름의 해법이라도 있을 듯, 노동해방, 계급투쟁을 반복하더니 유야무야 끝나는 것은 결국 읽는 이의 시간만 잡아먹는 것이다. 이런 글, 전혀 진보적이지도, 대안적이지도 않다. 불쾌하고 답답할 뿐.

  • ...

    파행은 파행이죠...배워야 할 것들을 소흘히 하지 않아야 하는데...그러려면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죠. 사실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눈들에 대해 기자님의 눈대로 재단해서 말하고, 해설을 해댄것은 지나친것 같군요...

  • 관심이

    그럼에도 유영주기자님이 제기하고자하는 바는 신자유주의 공세의 또 다른 모습인 민주노총을 향한 보수자본의 공격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민주노조운동진영에 대한 또 다른 일침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대의원대회가 무사히 치루어졌다는 말이 우리는 단지 형식적인 대의원대회 절차가 아니라 대의원대회를 이루는 우리의 고민과 관심 그리고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조합원들의 문제제기와 요구를 얼마만큼 제대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 글쎄

    고통과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물리적 충돌도 있었고 안건도 처리하지 못했다고 본문에서 이미 말해놓고 파행이라고 말하지 마라니요? 외부의 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파행을 파행이라 말하면 안된다? 조선일보가 파행이라고 쓴다고, 이상수가 그걸 즐긴다고 파행이 파행이 안되는건 아닙니다. KT, 조준호류에 대해 기자만큼 분노하는 사람이지만 이 기사는 우리의 반공태세가 흐트러지면 김일성 도당에 당할 염려가 있으니 일단 입 다물라는 박정희 식 논리와 그리 멀어보이지 않군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파행'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였던 현자 대의원 논란에 대한 책임소재를 뭉개고 가고자 하는것 아닌가 하는 혐의도 드는군요.

  • 초딩

    파행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파행이라고 말하지말라는 이야기같은데요 ㅋㅋㅋ

  • 초딩2

    글이 너무 길어서 그런가? 덧글 단 이들 보니 독해하기가 꽤나 어려운가 보군요.

  • 바보

    지나가는 일반사람들 한테 물어봐라.
    그리고 조합원들한테 물어봐라.
    자신의 틀안에서 자신의 이념에만 갖혀 모든것을 정당화하지 말라..
    이제 지겹고 역겹다.

  • 좋은글

    민주노총 대대관련된 최근 글중에서 단연 압권입니다. 감정에 앞서 악악대다보니 당연히 중심을 잡고 고민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했는데...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투쟁!

  • 좋긴한데

    정신버쩍나게 만침(일침으론 부족할테니)을 가하는 글 좀 연재해주세요

  • 노동자

    애정없는 결혼을 더 이상 무리하게 지탱하지 말고 이제 갈라 서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 아닌가

  • 나그네

    민주노총 정대 무산의 형식적 단면이 아니라 우리운동의 문제를 짚어줬다고 생각합니다. 13일 민주노총 중앙위는 내용없는 형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확인하지 않았나요? 그야말로 패권적 진행, 몰계급적 이해. 냉정하게 읽고 토론됐으면 합니다. -열성독자-

  • 에고

    더 큰 '권력'을 놓치는 멍청이들이라니.... 노동운동을 무슨 동네반장하는 수준에서만 할 건가. 제발 좀 큰 그림들 좀 보고들 하시지. 이 기사가 절절히 말하는 핵심은 이거 아닌가요...파이팅 유영주기자!

  • 지나가다

    참세상 수준을 떨어뜨리는 소리.. 유영주 기자님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군요.

  • 진정성

    진실은 더디더라도 반드시 승리한다.

  • 고미경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먹구름낀 하늘에서.. 한줄기 햇살이 내리쬐이는 듯 합니다. 하고싶은 말도 떳떳히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써 내려갈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요즘. 너무도 선명한 기자님의 글에서 민주노총의 우리 변혁운동의 파아란 새싹이 보입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 민주주의

    대체 글을 읽긴 읽었나? 언어영역 몇점 받았수?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