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만난 대추리 주민 이민강 할아버지는 식사 후 후식으로 받은 박하사탕 2개를 기자의 입에 입막음 하듯 쑤셔 넣고 다짜고짜 월드컵으로 정신 잃은 언론 보도에 대해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입 안에 든 박하사탕 처리하느라 말 한마디 못하고 있던 차에 소위 ‘요즘 언론사’, ‘요즘 방송사’를 총망라해 대표로 꾸지람까지 받고 나니 억울함이 솟구치지만, “억울해서 올라왔어..요즘 피 뽑느라 정신없어..노인네들은 거기서 쫓겨나면 죽는거야”라며 단숨에 털어놓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는 개인적 억울함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박하사탕이나 열심히, 성심성의껏 먹어 드리는 것, 그것이 평화다.
제3차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회가 있던 날이자 2006독일월드컵 예선전 한국 대 프랑스전이 있기 하루 전날이던 18일, 이날 각 방송3사의 메인 뉴스에는 50% 이상 월드컵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범국민대회 소식은 ‘무사히 치러져’라는 식으로 면피 수준에 그쳤는데,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움직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감사원 발언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 역시 월드컵 보도에 묻힌 것으로 보면 체면은 차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데 어디 기자야? SBS? KBS?”라는 이민강 할아버지의 물음, 결국 ‘미워도 다시 한번’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언론이며 방송이다. ㅠ-ㅠ “미중어로 참셰샹이요”
▲ 참세상 자료사진 |
“그렇게 카메라를 들이대더니 왜 한 컷도 안 나와. 그럼 찍지를 말던가”라며 취재를 거부하던 황필순 할머니도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면 구구절절이다. 손부터 내젖고 “인터뷰 안해”라며 우선 거부하는 것이 일종의 수사라면 이후 줄줄이 이어지는 하소연이라면 하소연은 주류 언론사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 속에서도 ‘소통만이 힘’이라는 학습효과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일단 방송국이면 못이기는 척 인터뷰에 응해주는 것은 대추리 주민들에겐 소통의 방식이자 일종의 정치다.
소통, 그것이 문제로다
철조망이 쳐진 이후 소일거리를 잃고 동네 안 밖으로 경찰들의 검문도 어느 때보다 심해졌지만 대추리 주민들에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통의 부재, 바깥 세상과의 단절이다. 최근에는 월드컵으로 언론의 관심도 이곳(대추리)을 떠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농촌봉사활동(농활)을 위해 대추리를 찾는 대학생들도 까닭 없이 돌려보내며 “농활와도 할 것 없으니, 돌아가서 이 곳 사정이나 알려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 것은 시청 앞 광장에 월드컵으로 모인 이들만 이곳 사정을 알아도 평생 농사 지을 수 있다는 믿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외부 활동가 및 사회에 대한 신뢰 그 모두다.
대추리로 주말마다 농활을 오던 이하연 성공회대학교 학생이 ‘들소리’라는 인터넷방송국을 꾸리게 된 사연도 이 때문이다.
“4월말부터 대추리로 농활을 왔었어요. 농활의 느낌은 당연 너무 좋았고요. 대추리 도두리 하면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농활을 갔다 온 후에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5월 4일 이후에는 주민분들이 무기력해 보이는 상태였어요. 사실상 철조망 때문에 논일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했지요. 그러다보니 주말에 대추리에 와도 할 일은 없고..뭔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있었지요. 그때 송태경 대추리 주민분이자 지금은 ‘들소리’ 기획부장님이 대추리에 오지 말고 밖에서 알리고 다니라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때 광화문에서 촛불집회 동시생중계를 진행하던 노동넷, 동소심 미디어활동가, 그리고 저까지 대추리에서 방송 한번 해보자! 하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곳에 사람과 평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하여
▲ 인터넷 방송국 '들소리' 편성표 |
“철조망 밖으로 농사를 짓는 주민들 모습, 한숨소리, 어려움 등 그리고 2,3주 사이에 결혼식과 장례식이 한꺼번에 있었는데, 이러한 주민들 대소사 등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방송을 한다기 보다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이곳은 잊혀 지는 곳이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방송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인터넷방송국이라도 기술력, 재정력, 노동력 등 여느 방송사 못지 않은 소비(?)를 요할 뿐더러, 쉬울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지만 매번 경찰의 검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오죽하면 ‘위기의 들소리’에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사담이지만 내리에 대추리까지 총 3여km를 최소 세차례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경찰은 기자증을 내보이면 이내 신분증까지 제시하기를 요구하는데 이도 귀찮은 일이지만 이제 알때도 되었겠구만 “민중언론? 거 뭐하는 곳입니까?”라고 매번 이죽대는 꼴을 당해야 하는 것도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얼굴 붉히지 않고 착하게 말해주는 센스!! 그것이...또 그 놈의 평화^^
▲ 이하연 인터넷방송국 '들소리' 활동가 |
“그냥 우리들 이야기”
어렵게 시작하는 인터넷방송국 ‘들소리’에는 대학생들 및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활동가, 대추리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 못해”하며 빼던 주민들도 우선 마이크 잡으면 “아!아! 대추리에서 알립니다” 제법 솜씨들을 발휘한단다.
현재 고정 엠씨로 나선 주민만 3명. 하연씨는 이를 대추리 내의 ‘들소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까닭이라고 설명하는데, 매일 저녁 대추리 평화동산에서 진행하는 촛불집회 때마다 홍보했던 탓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우리 들소리’로 통한다는 후문도 있다. 물론 모두 하연씨의 이야기지만.
인터넷에 접근이 어려운 대추리에서는 촛불행사 때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노인정에서 티비로 시청할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그 밖에 평택범대위 홈페이지나 민중언론참세상, 미디어문화행동 홈페이지에서 시청 가능하다.
“‘들소리’라는 인터넷 방송국에 어떤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우리들 이야기. 이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