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걸음은 들불이 될 것이다

[285리평화행진순례기](1-1) - 평화 걸음의 시작

청와대에서 대추리까지 285만평의 땅을 되찾는 평화의 걸음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한국정부는 군화발과 곤봉으로 285만평의 대지를 강탈하려 하지만, 우리는 285리의 평화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오전 10시 청와대 앞 행진을 시작하는 ‘길트기’ 기자회견. 아침 일찍부터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대추리, 도두리 주민 30여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과 민가협 어머니들, 양윤모 영화평론가, 임순례 영화감독 그리고 이 행진에 함께하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 250여명이 첫출발의 마음을 모았다.

문정현 신부님은 “생명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 미군기지 확장이전과 한미FTA 등 모든 것을 저지하는 것인 평화”임을 강조하며 “기쁜마음으로 285리를 걸어 285만평을 살리자!”는 힘찬 말씀을 하셨다.


팽성 주민대책위 신종원 조직국장은 “땅에서 일해야 하는 주민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함께하겠다.”며 평화행진의 굳은 의지를 밝혔다. 박영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불법시위을 운운하는 소환장 따윈 무섭지 않다.”며 “우리는 평화롭고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는 것들과 싸운는 것이다. 한발로 걷는 사람, 휠체어로 함께 하는 사람도 있다. 기쁘고 즐겁게 걷자! ”고 말하며평화를 향한 285리의 먼 길을 더욱 힘차게 출발할 것을 다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행진단은 드디어 285리 평화행진의 첫 발자욱을 내딛었다. 청와대를 출발해 외교통상부 건물을 지날 때 자국민의 평화와 생존의 권리를 미제국주의에게 팔아먹는 정부를 규탄하는 행진단의 함성이 하늘에 울려퍼졌다.


오후 12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삼각산 재미난 학교 어린이 30여명이 함께 행진에 동참하였다. 작은 책가방을 메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에 동참한 어린이들의 함박웃음에서 ‘평화’가 새록 느껴진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평화의 깃발을 들고 걸으며 <천리길>과 <평화는>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행진은 서울역까지 이어졌다.

서울역을 지나 용산 미군기지 USO(United Service Organizations 미군 위문 협회)앞에서 행진단은 힘찬 구호와 함성, 호루라기를 불며 미군기지와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한국경찰에 대한 규탄의 의지를 높였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행진대오는 국방부 앞에 도착했다. 약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부 규탄 집회가 시작되었다. 팽성주민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은 국방부가 기만적으로 주민들과의 대화국면을 활용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음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김택균 사무국장은 “4월 30일과 5월 1일 국방부는 대화를 시작하고 뜻대로 조율이 안되자 바로 대추초등학교 강제 집행을 자행하였다. 이미 정부의 대화국면은 진실성은 상실하였다.”고 규탄하며 “정부는 입만 열면 이주단지 등 보상을 운운하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지금까지 국가가 자행한 폭력(일제시대부터)에 대한 사과와 구속자 전원 석방과 주민이 일궈온 땅에서 농사짓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국방부와 정부의 기만성을 규탄하였다.

이어 서울청년단체 협의회 송현석 의장과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 의원의 발언이 이어졌고 집회 마지막 순서로 참가자들은 소원지에 자신의 요구와 평화의 메시지를 적어 국방부 담벼락에 걸었다.

“평화를 택하라!”라는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를 경찰들이 집회대오를 상대로 세워놓은 바리케이트에 붙여 평화를 말살하는 국방부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점심시간, 준비한 도시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였고 모자라는 밥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함께할 긴 여정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식사 후 평화행진의 전일 참가자를 중심으로 행진단은 총 3개의 소조로 나누어졌다. 박래군, 송태경, 변역식 이렇게 세명의 단장은 각 조의 조장이 되었다. 그리고 멀리 지역에서부터 이 행진에 함께하고자 달려온 시민, 대학생 등 참가자들의 소회와 결의를 듣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함께 같은 길을 걷고자 한다. 각기 다른 삶을 선택하며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4박5일이라는 시간동안 만큼은 같은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평화가 하나의 길로 모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기쁘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이제는 동작대교를 건너는 코스다. 동작대교에 진입하기까지 용산미군기지는 국방부앞에서부터 강의 북단 끝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행진단은 미군기지 옆을 지나며 구호와 호루라기 시위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서울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미군기지의 철조망이 흉물스럽다. 용산미군기지의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에서부터 황새울 들판을 검게 물들인 그 철조망까지 우리는 반드시 걷어내야만 한다.

동작대교를 건너는 길에는 전인권의 “행진”이 마치 풍경처럼 들려왔다. 함께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얼굴들이 밝기만 하다. 강을 건너서 만나게 된 서울 시민들에게 행진단은 더욱 열심히 우리의 요구와 투쟁의 정당함을 알려냈다. 평택의 평화가 왜 서울시민들의 평화인 것인지, 한미FTA가 몰고올 재앙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내야 하는지 숨이 차도록 뛰어다니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건네고 또 이야기도 건넸다.


저녁 7시, 평화행진의 첫 번째 촛불집회가 사당역 13번 출구 앞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시간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67차 서울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문화연대 김완씨의 사회로 진행된 행진 첫째날 촛불집회는 무더운 여름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세 개의 조가 조별 이름과 구호,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동안 지나가는 서울 시민들은 의아하고 신기하지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걸음을 멈춰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세 개의 조의 이름을 각각 선봉, 평지, 황새울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민중가요를 ”서울에서 평택까지“로 개사해 부르기고 하며 행진단의 새로운 개사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조약골의 노래공연과 민애청의 풍물공연, 그리고 일명 ’평클‘의 공연이 이어졌다. 행진단이 오늘 묵어가는 곳인 과천지역 사회단체들도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행진단은 과천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해만큼 긴 하루였지만, 함께하는 행진의 첫발걸음은 경쾌하기만하다. 4일간의 길고 험한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285리를 채우는 작고 꾸준한 발걸음들, 그것만이 평화를 만드는 길인 것을.

오늘 오후, 불쑥 건넨 유인물을 찬찬히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여주던 한 시민의 모습이 마음 한켠을 채운다.
덧붙이는 말

이소형 님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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