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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풀, 중대가리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39) - 중대가리풀


추적추적 내리는 비만큼 무거워진 마음을 조금 비워 보려고 절에 갔다.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곳, 절이 절이 아니다. 절은 온갖 욕망들이 모여 들끓었다. 그걸 노리고 복을 파는 호객 행위로 절이 시끌시끌하다.

절 집 안 한 편엔 커다란 독재자의 영정이 걸려 있고, 그 맞은편엔 왕 회장의 영정도 그 만한 크기로 걸려 있다. 사람들은 무얼 빌면서 그 사진들 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까?

일엽초가 자라던 축대는 헐리고 대신 그 자리엔 십이 지신을 새겨 넣은 돌로 꾸며져 복을 바라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중대가리풀이 자라던 절 가장자리도 파헤쳐져서 동전을 던져 넣는 연못 따위로 바뀌어 버렸다. 한 치 틈도 없이 여러 가지 맞춤형 '복' 상품들이 빼곡히 들어찬 절은 백화점과 다를 바 없었다. 마음이 더 무거워져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길가에 중대가리풀이 소복소복 자라고 있다. 중대가리풀은 길가에서 자라나 사람들 발에 밟히며 살아왔다. 전엔 중대가리풀이 절 둘레에도 많이 자랐다. 들이나 길가에 자라던 것들이 사람 발길에 묻어서 절 마당에 들어가 자라났던 것일 게다. 이제 깨끗하게 정리된 절 둘레엔 중대가리풀이 자랄 여유가 없다.

중대가리풀 잎 겨드랑에 스님 머리 같은 꽃이 한 개 두 개 피어나고 있다. 그걸 보니 이제 확실히 여름인가 보다. 중대가리풀 꽃은 말이 좋아서 꽃이지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볼 수조차 없다. 지름이 3∼4㎜쯤 되니까 정말 코딱지 뭉쳐 논 크기다. 그런데 이것도 여러 개 꽃이 뭉쳐서 이루어진 꽃송이다.

중대가리풀은 국화과에 속하는 꽃이다. 국화과 식물은 작은 꽃들이 뭉쳐서 한 송이 꽃처럼 핀다(두상꽃차례). 대개 가운데 피는 꽃에는 꽃잎이 없고 둘레에 피는 꽃에 혓바닥 같은 꽃잎을 한 장씩 달고 있다. 하지만 중대가리풀은 둘레에 피는 꽃에도 꽃잎이 없다. 중대가리풀 하나하나 낱낱 꽃은 거의 먼지만한 것이다.

어떤 이가 하는 이야기다. 절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중대가리풀을 보고 있는데 스님이 다가와 그게 무슨 풀이냐고 물어서 대답을 못하고 당황했었단다. 중대가리풀은 '너 중대가리 풀이지?' 하고 놀려도 '나를 알아줘서 고마워!' 하며 소박하게 웃을 거 같은 꽃이다.

중대가리풀은 가난한 풀이다. 그렇지만 궁색하지 않다. 한여름 더위에 커다란 가로수 잎사귀가 축축 늘어져 있지만 그 아래 중대가리풀 싱싱한 잎사귀는 당당하기만 하다. 세상엔 하찮은 것이란 없다. 단지 서로 다를 뿐이다.

절에서 중대가리풀 찾기가 어려운 만큼 절에서 중 찾기가 어렵다. 되레 길에서 만나는 노숙자가 중 모습이다. 중대가리풀을 보고 있자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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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 중대가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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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암매암

    이파리가 뒤에서 보는 중머리 같사옵니다......

  • 매암매암

    이파리가 뒤에서 보는 중머리 같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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